터키 박물관 산책 -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이희수 지음 / 푸른숲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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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 이리도 이슬람이나 오스만 제국같은 세계사에 유독 약한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 역사든 세계사든 자신있는 부분은 없다만 유독 이슬람쪽에 대해선 심하다. 내가 잘못인건가, 아님 학교 교육이 잘못된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들던 의문점이다. 그만큼 우리의 인식과 교육은 유럽 중심인 것을 방증하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생소하던 오스만 제국이나 튀르크, 이슬람같은 용어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 속에 내가 모르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속속 숨어있고 풍부한 사진까지 첨부되어 생생한 역사 교육이 되어준다. 이 책만큼 재미있게 학교에서 역사공부를 시켜준다면 학생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터키에 오스만 제국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석기 시대 유물에서 시작하여 히타이트,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여러 시대를 거쳤기에 국가전체가 박물관인 것이다. 1995년부터 발굴작업을 시작하여 향후 60년 정도를 더 조사해 인류사의 새로운 획을 그을 신석기 시대의 신전터가 터키에 존재한다. 그리스, 로마사의 중요한 인물들, 예를 들어 히포크라테스난 호메로스 같은 사람들은 태생이 터키가 존재하는 아나톨리아 반도이다. 그리스 문명의 유물들이 그리스보다 터키에 더많이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문득 <그리스인 조르바>생각도 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터키는 그리스를 괴롭히는 우리로 치면 일본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이단의 종교세력으로 선량한 그리스인들을 괴롭히는 터번 쓴 튀르크인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 편중된 지식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 새삼스럽게 놀랍다. 600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던 오스만 제국은 타종교인 기독교인들 또한 용인해줄 정도로 관용과 포용있는 제국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이스탄불로 변했을 때 성 소피아 성당 역시 모스크로 변화되어 사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거기에 그려져 있던 성화들을 파괴하지 않고 예술로써 인류의 유산으로써 인정하고 보호해준 이슬람교의 포용심에 감탄했다. 그로인해 지금도 성 소피아 성당은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터키는 지리학적 특성상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에 자리잡은 중요지역으로 무궁무진한 문화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터키를 120번 넘게 왕래하며 연구해왔다는 저자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자리에 앉아 그 놀랍고도 아름다운 유산들을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웠다. 또한 재미있고 흥미있게 터키의 문화 유산을, 터키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해주어 그 동안의 무지를 조금이나마 씼어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야말로 별 다섯개, 최고로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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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맛 : 영어성경편 - 자꾸만 쓰고 싶어지는 잉글리시 핸드-라이팅 북
김경진.최나리.Ellie Oh 지음 / NEWRUN(뉴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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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읽는 것 보다 한번 쓰는 게 낫다"라고 책표지에 크게 씌어있다. 쓰다보니 느끼게 된다. 한번 쓰는 동안 몇번이나 속으로 읽게 된다는 것을. 그러면서 계속 곱씹고 있다. 그러니 공부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노력이 많이 들지만. 그러니 쉽고도 간편하게 영어를 배우는 지름길이라고 하기 보다는 정도를 걷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전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최고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그러므로 종교여부와는 상관이 없이 한번쯤 읽어두면 좋으리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서양의 여러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성경이다보니 그 내용을 알고 있으면 다른 것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사전만큼이나 두꺼운 그 책을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맛이라도 볼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겠는가. 참 좋은 경험이었다. 성경의 주요부분들을 영어로 읽고 직접 써보고 모르는 단어나 숙어들은 따로 사전을 찾을 필요도 없이 친절하게 해석이 달려있다. 또한 영어 공부는 평생을 해야하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영어에서 손을 뗄 수도 없다. 이왕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데 게다가 성경까지 알아가며 하는 영어공부이니 일석이조다.


마치 중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처럼 그때의 기분을 느끼며 써내려갔다. 난 원래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큰 거부감없이 책에다 직접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참 좋았다. 어떤 것이든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야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잡기에도 안성맞춤인 좋은 책이다. 또 이렇게 좋은 컨텐츠를 가진 필사책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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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꿈결 클래식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민수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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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난 아들녀석이 자전거를 타며 놀다가 큰 벌레가 나왔다고 기겁을 하며 엄마에게로 달려온다. 문득 읽고 있던 책이 생각난 나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가 만약에 다리많이 달린 벌레로 변해버리면 어떡할꺼야?" 

기독교계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녀석의 대답

"하느님한테 다시 돌아오라고 기도할꺼야."

"그래도 하느님이 안들어주면?"

"왜애, 꼭 들어주셔."

벌레로 변한 엄마를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진 엄마는 끈질기게 다시 안돌아오고 계속 벌레로 있으면 어떡할꺼냐고 물어대고, 아이는 결국 짜증을 낸다.

"들어준다니까!"


그만큼 벌레로 변한 엄마는 상상할 수도, 어떻게 대해야할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런 일인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카프카의 <변신>. 책을 읽지는 않았어도 이미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예전의 대학에서는 카프카를 논하고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요즘은 오로지 취업얘기 뿐이다. 이런 말을 듣기도 했고 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싶은 나는 카프카를 꼭 접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벌레로 변한 아들을, 오빠를 대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읽어야 할 것인가, 벌레로 변한 한 인간의 고독과 황망함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 실존주의 같은 말은 어려워서 싫다. 피부에 와 닿는 말이 좋다. 얼마전 읽은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어떤 작가가 말했다. 카프카를 해석하려는데 너무 의미를 두지 말고 단순히 상상력하나로만 봐도 좋을 것이라고. 그렇다. 누군들 벌레로 변신하는 인간을 상상했을 것인가. 그 상상력 하나만으로도 카프카가 이렇게 유명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요즘의 나태해진 독서생활에 전환점이 되었다. 밤을 세워서라도 훌륭한 책들을 읽고 머리에 자극을 주고 싶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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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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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1년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한문장 한문장이 이해하기 어렵고 뭔소리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같이 일하는 분이 <테스>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들었고, 나의 기억과 상충되는 그말에 언젠가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학생 필독서로 독후감 숙제로 흔히 나오는 <데미안>이나 <테스>같은 작품들은 그 나이대에는 솔직히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어렵다는 고정관념으로 굳히지 말고 후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한번씩 더 읽어주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아직 테스를 다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토마스 하디의 다른 책을 이번에 만나게 되었다. 어렵고 지루했다는 고정관념을 이번 책이 깨줄수 있으련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열었다. 첫장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역시 대가이다라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주변 풍경을 묘사하는 데 한문장 한문장들이 철학자와 같은 성찰을 품고 있었다. 꽤 두꺼운 책이었으나 그러한 문장들을 만나는 기쁨이 컸다. 물론 죽기전에 꼭 읽어봐야 할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책이니러브스토리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운행의 시는 자주 쓰이는 문구지만, 그 아름다움을 서사시 형태로 즐기려면 자정이 넘은 밤중에 언덕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잠에 빠져 이 시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모르고 넘어가는 문명인 무리와는 다르다는 자각이 들어 의식은 점점 확대되고, 별들을 지나 위풍당당하게 전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오랫동안 조용히 지켜보게 된다. 그처럼 생각과 시각이 습관적으로 머무는 곳에서 높이 떨어진 채 천체 사이를 야간 정찰한 뒤에는 영생의 능력이라도 얻은 듯 고양된 기분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p26~27


"사람은 어떤 대상을 정면에서 또렷하게 관찰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내면의 바람에 따라 대상에 색깔을 입히고 형체를 만들어낸다."

                                       -- p35


"천제의 어조에 이례적으로 실리는 강한 음색과 같이 평범한 사람을 우스꽝스러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이미 인정받은 장점을 스스로 강조하는 것이다."

                                       -- p39


이러한 문장들을 읽고 있자니 작가라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새삼스럽게 돋아났다. 도대체 인간을, 자연을 얼마나 오랫동안 주의깊게 관찰하면 위와같은 문장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1800년대 후반에 태어난 작가임에도 지금 읽어도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 인간에 관한 통찰들이다.


주인공 여자들은 외모가 뛰어나고 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하나같이 남자보는 눈은 없는 것인지. 읽다보면 참 답답하고 한심한 마음이 든다. 그냥봐도 농부 오크가 사람됨이 올바르고 진짜배기란 걸 알 수 있는데, 어찌하여 저러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면 작가들은 참 짖굿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세지는 명확해지는 것 같다. 위대한 사랑이야기는 남녀를 뛰어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 이 소설. 참으로 매력적이다. 영화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꼭 챙겨받아야 겠고, 중학교때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테스>역시 다시 읽어보고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다. 할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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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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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하얗고 날카롭게 생긴 얼굴에 하얗고 고운 손. 그러나 이 책의 한창훈 작가는 달랐다. 얼굴 생김도 기골장대함도 또한 뱃일에서 시작하여 공장생활에 공사판 인부까지 두루두루 거친 삶의 이력 또한 내가 갖고 있는 작가의 이미지와는 아주 달랐다. 책상에 앉아서 사색에만 빠져 지내는 백면서생이 아니었고, 삶에 온몸을 부딪쳐 궁리하는 소설가, 문단의 인맥이나 학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우면서 독립적인 영혼이었다. 그냥 멋있다. 그 동안 알던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이 작가만의 새로운 매력에 푹 빠졌다.


작가의 고향은 거문도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바다인, 그림을 그려도 파란색 크레용만 닳아버리게 되는 섬에서의 생활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외로움을, 그 적막함을 나는 알지 못하고 지냈다. 생각해보면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섬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어떨지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그 파아란 바다를 눈 뜨면 바라보기 시작하여 그 속에서 놀고, 그 속으로 나아가 고기를 낚아오고, 물질을 하고, 떠나는 이를 쳐다보고, 오지않을 이를 기다리고...... 더디가는 시간을 버텨내고, 삶의 지난함을 깨닫게 되고...


소설가가 되는 일은 또 어떠한 것인가?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겪게되는 이야기들.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작가수업을 받는 것이 정도인가? 삶의 요모조모를 이바닥 저바닥 굴러다니며 배우고 익혀 자신만의 언어로 뱉어내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낮에는 직업인으로서 살아가고 밤에는 글을 쓰며 주경야독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돈이 떨어져도 온몸을 던져 글쓰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더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 동안 알던 작가들과 너무도 다른 스타일의 소설가 한창훈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소설가들 사이에서 튀는 존재. 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이다. 더 알고 싶다. 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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