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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 공포 편 - 검은 고양이 외,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평점 :
"위험 따위는 두렵지 않아. 그 뒤에 남은 공포가 두려운 것이지. 이 무기력하고, 이 비참한 상황!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싸우고 싸우다 내 목숨과 이성을 모두 포기해야만 할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내가 싸워야 하는 놈은 무자비한 망령, 그것은 바로 공포라네."
-- 33 p
공포를 정의하자면 위와 같은 문장이 아닐까? 저 문장을 말하고 있는 어셔는 작중 화자에게가 아니라 마치 독자들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공포편이다. 왜 사람들은 공포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난 사실 겁이 많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밤이면 깜깜한 창밖을 보기가 두려웠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흠칫흠칫 잘 놀라는 성격인데 너무나 소름돋고 오싹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읽는 내내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내가 알기로는, 공포가 더 큰 공포를 부르는 것은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감정의 역설적인 법칙이다."
-- 28 p
또한 나는 훌륭한 문장들에 쉽게 감동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밑줄긋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두려움을 무릎쓰고 그러한 문장들을 읽는 즐거움에 책장을 한장한장 넘길 수 있었다. 1권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이 작가 내 스타일인 것 같다. 난 공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당연히 새롭고도 먼 느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오히려 현대 소설을 읽을 때보다도 더욱 읽기에 어려움이 없었고 뒤틀리게 꼬아서 어려운 느낌을 내지 않으면서도 심오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아~ 너무나도 좋다.
"털끝만 한 욕심도 없이 무조건 주기만 하는 동물의 사랑은 하찮은 우정이나 미세한 충성심을 수시로 저울질해대는 인간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 10 p
"사악함은 철학으로도 풀어낼 수 없는 영혼이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충동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본성 혹은 감정으로 인간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소임을 나는 확신한다."
-- 12 p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여 눈에 보이는 자연을 고문한대도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은 황량함.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 26 p
"결국 단순해 보이는 자연에게는 인간을 이토록 충격에 빠트릴 만한 힘이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힘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론만을 내리고 물러서야 했다."
-- 26 p
이러한 문장들이다. 1권에서는 미스터리를 추리해가는 내용에 빠져드느라 책장이 휙휙 넘어가느라 좋은 문장들을 음미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반면, 2권은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내딛는 기분으로 좋은 문장들을 곱씹어 보는 기쁨이 있었다. 물론 내용은 너무나도 무섭고 소름끼쳤지만.
문장예찬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책 내용으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검은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책을 읽지 않고서도 그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양이, 특히 검은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아왔다. 그런데 정확한 내용을 읽고보니 고양이는 그저 사악한 인간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정말 무서운 건 사람, "나"였다. "나"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을 술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왜 힘없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틀어잡고 한쪽 눈을 도려내고, 왜 죄없는 고양이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인가. 어찌하여 힘없는 아내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치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벽에 매장하는 것인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 더욱 공포의 대상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난 검은 고양이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공포의 글감들을 가지고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고 있는 포. 그는 거장이다. 내가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세상이 다 알아주고 있다. 그러한 대작가를 만난 기쁨과 결코 잊히지 않을 공포스러운 내요을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다. 다음 권들도 너무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