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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ㅣ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인간에게는 예로부터 신이 꼭 필요한 존재이다. 어떤 형태로 존재하던지에 관계없이.
이 책에서 신은 초라한 중년 남성이다. 그리고 화자인 나에게서 정신병자 또는 인격장애자 취급을 받는다.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거룩하고 장엄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평범하다못해 불쌍해보이기까지 하는 안쓰러운 존재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중에도,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가슴 한 켠이 따뜻해져오는 기분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중 화자인 나는 심리치료사이다. 그러나 이혼한 뒤 경제상태도 파탄지경이고, 직업적으로도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한 채 빌빌거리고 있는 별볼일 없는 인생이다. 그렇다면 신의 사정은 어떠한가? 그 역시 서커스 광대로, 의사로, 비행기 조종사로, 그 외 여러가지 직업으로 인간들을 위해 허덕이고 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중년의 남성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신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하고 넓게 접근한다면 나같은 무종교인들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약간씩 부족해보이고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임으로 인해 마치 나의 이야기인듯 빠져들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 형제지간이라도 느낄 수 밖에 없는 경쟁심과 자괴감,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마음으로는 믿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존심 상하게 전처에게 얹혀살 수 밖에 없는 무능력함 등등.
신은 또 어떠한가? 마리아와의 혼외관계로 얻은 자식이 내 맘 같지 않게 속을 썩이고, 책임감으로부터 달아나고 싶고,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자신에게서 점차 멀어져가며 더이상 신을 믿지 않은 채 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신은 인간의 불행에 눈을 감지 못하고 작게나마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나"에게 나타난 이유도 표면적으로는 심리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엔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나중에 화자 스스로 말하듯이, 아벨이 정말로 신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삶에 잠깐이나마 있어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로인해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책의 결말에 나오듯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묘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아주 미묘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신을 만나기 이전과는 획기적으로 변할 것임을 굳이 구구절절 설명해 놓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신은 야콥에게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세상이 돌아갔었을지를 보여준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의 아버지는 더 오래 살았을 것이고, 동생은 범죄자가 되지 않은 채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그러한 모습들에 충격을 받지만 역시 현재 나의 삶이 초라하고 구질해도 다시 원래 세상에 내가 존재함에 안도한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전처가 결혼한 남자를 찾아내어 연결시켜주는 장면에서는 코미디처럼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이러한 유쾌하고도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속에 인생이란 무엇이며, 신은 또 무엇인지에 대한 무게감있는 주제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이 소설 속에서도 신은 죽는다. 어처구니 없게도 미카엘 대천사의 칼에 심장을 찔려서.
신이 어이없게 죽는 장면에서도 또 생각하게 된다. 이 세상에 신이 없어도 되는가, 그래도 되는가??? 평소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들을 많이도 쏟아내게 되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