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347p><별점 : 4>

씨발새끼가 사과도 않고 죽어버렸어.

잘못했다고 한마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나요? 입도 있는 새끼가!


대학생 선후배로 만나 가정을 이룬 석구와 나. 가정 경제의 책임을 지고 흔히 말하는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살았다. 혜준의 곁에서 친구로 다정한 부모의 역할을 석구가 맡았다. 석구와 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석구가 성추행범이자 스토커로 고소당하자 학원을 그만두고 쌩하니 집을 나갔다. 나에겐 사과 한마디 없이 자신은 사랑이었다는 말만 남겼다. 그 일의 여파로 학원 문을 닫고,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작은 오피스텔을 얻었다. 딸은 이미 성인이 되어 독립한 상황이라 혼자만 수습하면 되는 문제였다. 공항 증상이 찾아오고 정신과 치료와 걷기 우연히 눈에 띈 일기 쓰기 교실에 참석한다.

우산이란 주제어가 정해졌다. 나는 어쩐지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처럼 생긴 ‘시옷’을 주인공 이름으로 선택했다.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꾸민 이름처럼 예쁜 애나의 옆집인 온양집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아빠는 늘 나를 품었고, 엄마도 웃음을 띤 얼굴을 하던 곳. 나는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구분되지 않게 생겼지만, 합창단 지휘자의 마음을 쏙 빼앗는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비록 그가 나를 ‘소년’으로 인식했고, 소년이 갖기엔 맑고 고운 목소리기에 좋아한 것이지만,
거리에 군인들이 깔리던 시절. 나라뿐 아니라 우리집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 어수선 끝에 아버지가 사라지고, 엄마는 폭폭 하다를 남발하고, 제비 다방의 아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 아빠의 공간을 차지했다. 다행스러운 건지 합창단 연습을 계속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5천 원이란 단복의 구입이 문제였다. 옆집 애니와 함께 하게 된 합창단 연습 후 데모하는 무리에 섞여 애니가 다치는 일이 발생하고, 시옷은 솔로로 지명되는데 ..

나에게 잠깐의 휴식이 되던 제비 다방의 아들이 사라지고 아빠가 돌아왔다. 엄마의 배는 터지기 직전이다. 철둑 너머 보다 더 먼 응달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 동네엔 교탁 위에 올려져 옷이 들춰지는 치욕을 겪은 눈이 예쁜 아이 윤수가 살고 있다. 파전과 막걸리를 파느라 늘 술에 절어있는 모와 향긋한 향기를 품고 꼼꼼하게 세수를 하는, 일을 마친 후 미용을 배우러 다니는 누나 윤심과 함께 사는 윤수. 챙겨줄 사람이 없어 늘 꾸중의 중심에 있고, 집에서도 많은 시간 혼자인 아이 윤수와 시옷은 친하게 지내게 된다. 서로에게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윤수는 수호에게 약했다. 이제 막 태어난 수호의 존재는 미치도록 하기 싫은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서일까? 사람들은 ‘일기’인가? ‘소설’인가? 의심한다. 거칠다 표현이 적절한 시대의 배경에 남자아이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의 일기를 딸도 남편도 직장도 잃은 한 50대 여성이 기록하고 있다. 공항의 증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딸은 곁을 떠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독일에 가 있다. 그런 딸은 선거 전에 갑자기 단톡방을 만들어 의견을 묻고
아빠가 연락되지 않는다며 아빠의 죽음을 예견하는 두려움에 연락한다.

상처가 가득하지만,
사과하는 자는 한 명도 없고
자신의 삶을 잃고 헤매는 여성은
혐오와 차별을 관통한 과거의 삶도
가족이 다 떠난 현재의 삶도
하지만 걷고 상담하고 일기를 쓰며
나아지려 노력하는 그녀의 미래는
조금은 편안할 것이라고

그녀의 일기는 일기인가 소설인가
그 경계가 모호하더라도
우린 시옷의 엄마, 할머니, 애니, 윤심, 윤수, 그의 엄마 등의 삶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분 말을 종합하면 성찰이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평가하고 반성하는 일이네요. 일단 보는 행위가 먼저겠고요. 보고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것이죠. 보고 생각해보고 그걸 글로 쓰면 일기입니다. 20p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결혼을 시키고 손주를 얻어야 자식이 성장의 마침표를 찍는다고 믿는 어른들의 이야기. 그런 기대에서 벗어난 자식은 부끄러워 한사코 감추려 들고 그런 기대에 못 미친 남의 자식은 열심히 욕하고 비꼬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듣고 있으면 화가 나는 이야기. 그게 내 이야기가 되면 한없이 슬퍼지는 이야기 - P316

할머니는 끝내 의연했다. 집안 대대로 살아왔던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빚을 진 아빠의 실패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자신 앞에 떨어진 불행을 묵묵히 헤쳐나갔다. 그때는 할머니가 큰 사람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할머니는 처음부터 큰 어른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내가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다. 처음부터 완성된 사람은 없다고.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다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겉보기와 달리 속은 무척 시끄러웠을 거라고. 여러 번 무너지고 또 무너졌을 거라고. 그래도 매 순간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그렇게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갔을 거라고. 사는 게 원래 그렇다고. 이제야 겨우 알겠다. - P3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온(on) 시리즈 5
안온 지음 / 마티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인칭 가난> 안온

수급자여서 경험한 ‘배려’와 ‘낙인’을 경험한 저자는 이 책의 주어가 ‘가난’이 아니라 ‘나’라고 규정한다.

2019년부터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고, 몇 년 전에 ‘자발적 탈피’를 한 저자의 이야기다. 자발적 탈피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 글로 따라가기도 버겁고 힘들었다. 번 아웃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저자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낸 저자의 행보가 너무도 멋지다.

방학식에 멸균우유 두 상자 (24팩/1box)를 들고 언덕에 오르는 아이. 멸균우유는 빈곤 가정의 인증 마크라고..10살 11살 아이가 우유 두 상자를 들고 긴 하교가 가능하다고요? 😮‍💨

지독하게 힘든 대학 생활은 돈벌이 + 장학금을 받기 위한 학점 유지가 병행되어야 했다. 문학과 시가 좋아 대학원을 선택한 저자는 대학원 수료를 위해 더 치열한 삶에 자신을 던진다. 하지만 그가 듣는 말은 논문을 쓰지 않고 수료만 한 일에 대한 충고? 😡

눈이 안 보이고,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 외상값을 여기저기 만들고 술값으로 집의 전세비까지 헐어내게 만드는 아버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무릎이 아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못하는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고 아껴 저자를 학원을 보내줬다. 그에게 공부는 가성비 좋은 행위였기에. 적어도 공부하는 동안은 가난한 나와 가난하지 않은 남들 사이에 놓였던 벽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뼈대 있는 주공 가문. 3대째 주공에서 사는 삶을 이어가는 저자. 가난은 왜 대물림되는가?에 누구도 답할 수 있는 한국 사회.

가난한 자의 문법이 따로 있는 것처럼 위로의 말이랍시고 건네는 비난.
가만이라도 있음 중간은 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숱한 제도적 실천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결핍이란 지워내야 할 불운, 수치, 숙명”으로 통용된다. 가난한 이들은 불운과 수치, 숙명에 묶인다. 66p
열음 : 그니까. 근데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잖아. 내가 너무 가난해서 남들의 아픔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닐까.
나 : 안 그래야지.
열음 :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통장을 보면 내가 제일 아픈 건 어떡해?
나 : 어쩌긴. 좆됐다 생각해야지.
열음 : 우린 좆도 없는데 늘 좆되는구나. 내일 언니 일 몇 시라고?
나 : 아침 10시부터 애들 수업
열음 : 지금 새벽 2신데? 니 뭐해?
나 : 대학원 과제.
열음 : 좆됐네.

언젠가 열음이 말했다. 언니,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마치 전쟁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난을 수군거리며 서로를 껴안는다. 87p

한번 맛보면 가난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그 정도 수입이면 넉넉한 편이라고 주위에서 날 추어올려도 내 기분은 전혀 넉넉하지 않다.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 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137p

한국의 복지는 신청주의이기에 해당 복지제도를 잘 알고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 책의 마무리는 복지 제도에 대한 안내가 있다. 저자가 남긴 부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록했구나 싶은 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품절


#오로라 #최진영
#위픽시리즈

<88p><별점 : 4>

12월의 셋째 날 오후, 제주에 3번째 방문하는 세정.
1년여쯤 만나던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5년여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세무사 시험에 도전하던 그는 힘겨운 시험 터널을 지나 제주에서 두 달여간의 휴식을 주려 숙소를 예약했으나, 1차 시험의 낙방은 한 번만 더 도전하는 걸로 이끌었기에 잊고 있던 제주도 숙소의 예약 문자를 받고, 취소하기엔 위약금을 물로 돌려받는 돈이 적게에 두 달간 제주도 살기를 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떠오른 세정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그는 세정에게 호의를 베푼다 생각했고,
세정은 그가 아깝게 날리게 된 기회를 자신이 대신했기에 자신의 배려라 생각하는 일.

제주에 도착한 그는 숙소의 호스트에게 세정이 아닌 예약자 최유진으로 불렸다.
그리고 우연히 방문한 바에서 제주도 방문에 대한 질문에 누군가를 찾으러 왔다는 거짓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정도 유진도 아닌 자신이 갖고 싶어 했던 이름 오로라가 되기로 한다.

서울에선 누가 뭐라 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 오로라로 살기로 결정한 제주에선 규칙에 벗어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여행자의 행보가 아닌 평범한 하루를 사는 사람과 같이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유명 관광지를 가지 않고, 그곳에서도 하루의 루틴을 만들며 살아간다.

베란다에 죽은 새를 발견했다.
자신의 손을 치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호스트에 전화를 걸었고,
그 새를 치워줄 관리인이 찾아온다.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는 새의 사체.
그 새를 땅에 묻겠다고 제안하자, 그 행위는 불법이라 관리인이 알려준다.
다만, 어두운 밤 마땅한 곳에 사체를 묻는 일에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어두운 밤
적당한 크기의 땅을 파고 헝겊에 쌓인 새의 사체를 묻고 돌아온다.

그러던 중간중간
세정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꾸준히 보내고,
누군가에게서 오는 전화와 문자를 꾸준히 보지 않는다.

불법. 잘못된 일.
처음부터 몰랐으면 멈출 수 있었을까?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세정에게
이미 깊어진 마음을 걷어내야만 하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사랑과 믿음
믿음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믿는 게 과연 가능한가?
얼마나, 어디까지 믿어야 믿음이라고 할 수 있나?
이기적은 믿음은?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면 믿음은 3번째인가?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북스타그램 #신간도서추천 #한국문학추천 #단편소설추천

당신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은 오직 나를 위한 마음. 당신을 끝까지 믿는다는 말은 나를 절대 배반하지 말라는 요구. 그러므로 믿는 마음에는 이기심보다 더 큰 외로움이 숨어있다. 23p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 외면했다. 귀찮아했다. 거만하게 굴었다. 가장 큰 잘못은 네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 순전히 상대의 잘못만을 따져 물었다. 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취약해지니까. 상대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오직 네 사과만을 요구하니까. 결국 너만 잘못한 사람이 되니까.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41p

속속들이 알고 싶진 않았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닌 것은 모른 척하고. 비밀이 필요했어요. 사람들이 내 모든 것을 안다는거, 끔찍하잖아. 하지만 알고 보니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밀이었어. 당신은 누군가의 비밀이 되어본 적 있나요? 5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앳(at) 시리즈 3
신성아 지음 / 마티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따라온의혹들
#신성아
#마티
<197p><별점 : 4.4>

이 책의 좋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책은 아픈 아이를 돌보는 간병인의 주체가 된 엄마가 기록한 글이라는 것으로 아마도 그런 소개만 들었을 때는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이 아닌 그런 소재의 에세이는 깊은 슬픔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기에 기피하는 책이기 때문인데 인스타 피드를 통해 내가 상상하는 종류의 글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국어 국문과 영상이론을 공부하고 광고, 마케팅 업계에서 일하다가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던 중 딸의 암 간병을 위해 휴직했다가 현재는 사직한 상태.인 저자.

일을 사랑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저자는 새벽부터 출근해서 일하던 중 (2022년 6월 3일) 딸이 심각한 병이 예상되니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조퇴를 한다. 딸은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게 되었고, 힐에 깔끔한 출근 복장 그대로 아이와 함께 병원 생활의 서막을 연다.

B세포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

병원 생활을 하며 아이와
사람은 왜 사는지?
인생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주한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늘 기다리던 것에 관대하던 아이는 참았던 애정을 갈구하기 시작했고,
힘든 치료로 짜증과 투정이 늘어났다.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고, 어디에선 훈육을 해야 하나?
아픈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딸과 같은 병으로 고생하던 아이의 치료 일기를 따라 읽으며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따라가다가 마지막 글과 함께 아이의 부고를 본 저자는 그 일도 그만두게 된다. 일을 사랑하던 저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누구도 간병은 누가 할 것인지 상의하지 않았다. 아이의 병에 간병의 자리는 ‘엄마’라고 세상에 법으로 규정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마치 법보다 더 강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이도 잠깐도 엄마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정량적 수치로 환산해도 남편보다 적게 버는 것이 아니지만, 아픈 아이 곁은 엄마 이는 공식과 같았다.
그리고 둘러 본 병원엔 돌봄의 위치에 선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이 보인다.

코로나가 여전했던 시기의 간병. 무균실. 방호복을 입고 간병인으로 지내야 하는 상황.
열악한 보호자를 위한 편의시설(샤워장, 화장실) 2-3시간 이상의 잠이 허용되지 않는 조건.
항암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딸의 고통을 옆에서 내내 지켜봐야 하고, 그 괴로움과 동반되는 온갖 짜증을 받아내야 하며, 잠깐의 휴식도, 신선한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상황.

저자는 이런 병원에서의 사생활 보호, 인간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상황들, 돌봄, 여성, 의료계, 아픈 아이의 교육 현실, 일하는 여성에 대한 문제들을 아주 세련되고 유려한 글로 풀어낸다. 두껍지 않은 책에 언급된 책이 무려 3페이지에 달한다. 밀란 쿤데라의 키치가 철학적 용어들이 적절한 비유로 활용되어 기술된다.

이렇게 밀도 높고 세련된 글을 진정 간병하며 쓰신 것인가?😳😳 👍👍

세상은 이렇게 유능한 인력을 간병 담당자로 전략시킨 것.
아픈 자식을 돌보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냐고? 물론 그렇다. 백번 옳다. 그렇기에 저자도 지금 그 좋아하던 일을 하지 못하고 사직한 상태니까. 하지만, 그러나, 가 뒤에 붙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의료계의 문제들이 신문 1면에 계속 오르내리는데, 이 책엔 그에 관한 의견도 있다. 저자의 글이 나의 의견과 비슷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누가 옳고 그름의 힘 싸움이 아닌 앞날에 이로운 결정들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은 언제쯤 일어날까?

부디 힘겨운 싸움이 끝나고, 아이도 저자도 교육의 자리로, 일터로 돌아갈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갑작스레 닥친 큰 시련이 안타깝지만, 한 가지 그중에 다행이라 여겨지는 것은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점. 한 권으로 그치기에 작가님의 글이 너무 좋다.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인문에세이추천 #북스타그램 #신간도서추천 #내돈내산 #알리고싶은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보니, 지능 - 챗GPT와 글쓰기부터 뇌와 마음의 관계까지, 지능에 관한 특별한 대화 33한 프로젝트
이권우 외 지음, 강양구 기획 / 어크로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보니, 지능>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 유명한 지식인 3인의 환갑 기념 대담 프로젝트. 사실 이 세 분은 최근 내가 사는 동네 과학 카페에 오셨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직접 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쉬운 마음에 책으로 접한다.

이 책은 총 3권의 대담집 시리즈 중 하나. 지능, 시간, 진화
도서관에 입고되면 나머지 두 권도 다 읽을 예정.

알쓸신잡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권우 : 인문학 담당이라고 해야 할까? 국문학을 전공한 분. 여전히 다양한 직책을 맡고 계시다고 함.
이명현 : 천문학자이고 과학 책방 대표.
이정모 : 다양한 과학관장을 역임.

나이가 들면 손주를 봐야 한다는 유명한 자의 말에 따라 손주를 봐야 하는데 진짜 내 손주는 없으니 남의 손주들을 보자!는 일념?으로 도서관과 독립서점 등에서 강연회를 하고 계시는데 아마도 그 강연회의 엑기스를 압축한 것이라 봐야 할까?
인터뷰어가 각 주제의 전문가들이기에 아마도 그 질문의 퀄리티가 좋을 테니.
지능은 뇌과학자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가, 시간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진화는 진화학자 장대익 교수가 인터뷰를 진행한다. 세 분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오래된 관계 덕분인지 반대되는 의견도 과감하게, 유머도 적절하게 섞여있다.

대단한 독서가로 살아온 이들의 60대의 뇌 상태는?
인생의 2/3를 지난 지점에서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이 지식인들이 ai 시대에 얼마나 적응하고 앞을 어떻게 예측하는가? 등을 청년 과학자라는 이미지가 짙어 여전히 자신을 어리게 보는 사람이 많다는 정재승 박사의 질문으로 대답을 듣는다.

여기 셋이 손주한테 책 읽으라고 하면 잔소리로 들릴 수가 있겠죠. 그래서 서로 손주를 교환해서 돌본다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어린아이를 책 좋아하는 동네 노인 여럿이 돌보면 정말 멋진 일일 것 같아요. 72p
🎈그 동네 어딘가요? 동네 노인님 수준이 어마어마합니다. ㅎㅎ

모든 드라마를 1회만 쭉, 2회만 쭉 보신다는 변태 소리를 듣는 이명현 님
검색 결과와 챗봇 대답을 함께 보는 것을 좋아해서 bing으로 검색하신다는 이권우님
이제 35인치 대형 티브이를 사셨다는 이정모 관장님! PC 모니터는 40인치 챗 GPT 유료 사용자

인공지능이 쌓는 빅테이터에 대한 염려
번역가가 없어지리라는 예상에 다 그렇게 되진 않으리라는 예상 등

지식인들은 수다를 떨어도 깊이가 있군요!

지식인들이 농담도 잘하네.

지금 Ai가 빅테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AI 활용이 대세가 되면, 결국 모든 데이터가 AI가 생산한 것으로 수렴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원본 데이터의 황폐화! 128p

네안데르탈인이 왜 멸종했겠어요? 개체 수가 적어서 짝짓기를 못했기 때문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동물 가운데 수컷의 95퍼센트는 암컷 옆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어요. 인간 수컷은 정말 복받을 줄 알아야 해요. 어쨌든 대부분 짝짓기를 해봤으니까요. 144p
😞 짝짓기를 하면 개체 수가 늘어야 하는데…. 개체 수 늘리기를 포기한 이 세대. 그걸 선택하게 만든 이 사회 어쩌나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