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가난> 안온수급자여서 경험한 ‘배려’와 ‘낙인’을 경험한 저자는 이 책의 주어가 ‘가난’이 아니라 ‘나’라고 규정한다. 2019년부터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고, 몇 년 전에 ‘자발적 탈피’를 한 저자의 이야기다. 자발적 탈피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 글로 따라가기도 버겁고 힘들었다. 번 아웃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저자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낸 저자의 행보가 너무도 멋지다.방학식에 멸균우유 두 상자 (24팩/1box)를 들고 언덕에 오르는 아이. 멸균우유는 빈곤 가정의 인증 마크라고..10살 11살 아이가 우유 두 상자를 들고 긴 하교가 가능하다고요? 😮💨 지독하게 힘든 대학 생활은 돈벌이 + 장학금을 받기 위한 학점 유지가 병행되어야 했다. 문학과 시가 좋아 대학원을 선택한 저자는 대학원 수료를 위해 더 치열한 삶에 자신을 던진다. 하지만 그가 듣는 말은 논문을 쓰지 않고 수료만 한 일에 대한 충고? 😡 눈이 안 보이고,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 외상값을 여기저기 만들고 술값으로 집의 전세비까지 헐어내게 만드는 아버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무릎이 아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못하는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끼고 아껴 저자를 학원을 보내줬다. 그에게 공부는 가성비 좋은 행위였기에. 적어도 공부하는 동안은 가난한 나와 가난하지 않은 남들 사이에 놓였던 벽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뼈대 있는 주공 가문. 3대째 주공에서 사는 삶을 이어가는 저자. 가난은 왜 대물림되는가?에 누구도 답할 수 있는 한국 사회. 가난한 자의 문법이 따로 있는 것처럼 위로의 말이랍시고 건네는 비난.가만이라도 있음 중간은 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숱한 제도적 실천적 개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결핍이란 지워내야 할 불운, 수치, 숙명”으로 통용된다. 가난한 이들은 불운과 수치, 숙명에 묶인다. 66p열음 : 그니까. 근데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잖아. 내가 너무 가난해서 남들의 아픔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닐까.나 : 안 그래야지.열음 :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통장을 보면 내가 제일 아픈 건 어떡해?나 : 어쩌긴. 좆됐다 생각해야지.열음 : 우린 좆도 없는데 늘 좆되는구나. 내일 언니 일 몇 시라고?나 : 아침 10시부터 애들 수업열음 : 지금 새벽 2신데? 니 뭐해?나 : 대학원 과제.열음 : 좆됐네.언젠가 열음이 말했다. 언니,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마치 전쟁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난을 수군거리며 서로를 껴안는다. 87p한번 맛보면 가난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그 정도 수입이면 넉넉한 편이라고 주위에서 날 추어올려도 내 기분은 전혀 넉넉하지 않다.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 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137p한국의 복지는 신청주의이기에 해당 복지제도를 잘 알고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다. 책의 마무리는 복지 제도에 대한 안내가 있다. 저자가 남긴 부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록했구나 싶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