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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영국에선 이례적인 더운 여름을 맞이한 한 저택에 가족들이 모인다. 막내인 브라이어니는 곧 도착할 오빠를 위해 희극 대본을 작성하는데 몰입되어 있고, 졸업 시험을 마치고 집에 머물고 있는 세실리아는 이 무료함에 다급해져 있는 상태다.
늘 바쁜 아빠는 집에 오실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집을 떠나 지내고 있는 오빠 리언이 초콜릿 공장을 운영하는 부자 친구와 함께 방문할 예정이기에 집안은 분주하다.
거기에 최근 부모의 이혼으로 상황이 나빠진 이모의 자녀들 롤라(15)와 9살이 된 쌍둥이 남자 형제까지 합류해 평소에 비해 다양한 소음이 발생하고 있다.
세실은 엄마의 요청으로 삼촌이 남긴 집안에서 아주 귀중하게 여기는 화병에 꽃을 꽂아 손님방에 두는 일을 하던 중 분수대에서 로비와 부딪친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지만, 어느 순간 멀이진 두 사람. 캠브릿지에서 함께 수학하면서도 종종 부딪쳤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로 제대로 아는 척 한 번을 하지 않고 지냈던 둘이다.
하지만, 분수대에서의 부딪침으로 로비는 세실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세실에게 편지를 쓰기로 한다. 골동품인 화병을 깬 것과 자신의 오해할 만한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한 편지를…
편지를 들고 리언의 초대에 응하기 위해 저택으로 향하던 중 브라이어니를 목격한 로비는 편지를 세실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편지가 먼저 도착해서 세실이 오해를 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그 편지는 자신의 전달하려던 편지가 아닌 적나라한 글이 적힌 편지였는데…
늦은 저녁 식사가 지속되던 중 쌍둥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모두 집 근처를 찾으러 다니는데! 그 사이 사촌 롤라가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밤에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았던 남자는 딱 두 명. 계속 음흉한 행동을 했던 대니와 쌍둥이를 홀로 찾아 나타난 로비. 하지만 대니는 아버지와 내내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있었고, 로비를 변론해 줄 사람은 없는 상태. 그 와중에 브라이어니는 성폭행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는데…
여기까지가 1부의 이야기.
2부는 로비가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프랑스에서 전쟁 중에 지내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3부는 브라이어니가 캠브리지 행을 포기하고 간호사로 지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끝나기 직전의 두어 장! 꼭 읽어보셔서 확인하시길..
“기다릴게. 돌아와”
내 삶의 이유. 생활의 이유가 아니라 삶의 이유. 바로 그거였다. 그녀는 그의 삶의 이유였고, 그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였다.
이곳에서 보면, 죽은 여자의 팔을 밟지 않으려고 보폭을 조정할 마음조차 사라진 이곳에서 보면, 사죄나 존경 따위는 받지 않아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330p
소설은 한 개인의 잘못과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큰 흐름을 잡고 있지만, 그것은 작은 이야기로 읽혔다. 아주 긴 부분 전쟁과 전쟁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장면을 서술하면서 전쟁이 벌이는 잘못들에 대해 길게 서술한다. 책의 반 이상이 이 부분임에도 전쟁의 참혹함의 아주 적은 부분만 알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 적은 분량마저 우린 차마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선명하게 상상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피하고 싶은 장면이다.
브라이어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잘못. 자신이 오해한 상황을 끝까지 사실이라고 증언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에 이르게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가족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의사가 됐다면? 그래서 그 사람의 손에 기적을 맞봤을 많은 생명들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속죄로 대학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간호사로 지내면서 자신을 혹독한 삶에 넣은 것으로 그 이야기를 소설로 적어 냄으로 과연 속죄가 가능한 것인가? 그 소설마저 자신의 변명이 배제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기록하였나?
브라이어니의 증언을 바로잡겠다는 편지를 받은 세실의 말로, 부상당한 로비를 치료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브라이어니는 스스로에게 용서의 순간을 선사한다. 자기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범죄를 저지른 자와 당한 자 모두 공범이었다고 죄를 나누면 그 잘못이 적어지는 걸까?
과연 작가의 역작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