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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성장이라는 과도기에 깊이 있는 문학적 이해는
없지만 누구나 한 번 쯤은 듣고 접하는 소설 <데미안>.
고뇌와 방황이라는 이름의 청춘에 지극히 사소하지만 공감 있는 상황과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그 근원에 대한
해소를 해주어 많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하지만 상황과 설정,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신드롬이 불 붙을 정도로 열광은 했지만 해를 지나며 읽을수록 그 매력은 떨어져 갔다. 왜냐 상황과 경험의 이해는 공감은 되는데 가슴을 울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문학 번역으로 <데미안> 열풍을 일으킨 번역가
있었으니 바로 “전혜린’이라는 작가였다. 요절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녀는 독일인이 쓰는 원역과 같은 완벽한 직역으로 데미안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헤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당시에
자아의 정립이 안되고 방황하는 젊음이 읽기에는 헤세만의 문장은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유년시절에 삼키고
싶었던 기억들이 들어나는 것 같았고 그 혼란을 직시하여 이해해주는 같았기 때문이다. 많은 방황을 한
우리였지만 책을 통해 나를 감싸는 두 개의 세상, 선과 악 서로 자기만의 아브락사스를 인지하고 나아갈
때 우리는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많은 이들의 논평과 방송으로 익히들 알 것이다. 평범한 소년인 싱클레어는 가족속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면서 자라지만 밖으로 나가면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호기심에 모든 것을 바라본다. 밝음과
어둠 두 세계에 마음을 품지만 불안정하듯 정착하지 못하는 그다. 그러다 크로머라는 친구에게 약점을 잡혀
돈을 훔쳐다 바치는 범죄를 저지르고 죄책감과 우울, 불안함을 가지며 성장한다. 그러다 전학 온 데미안을 만나고 세계를 이분하는 선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듣는다. 오히려 신념과 가치를 지닌 것이 무목적의 사회적 빛과 평균을 맹신하며 살아가는 이들 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크로머에게 벗어나고 세상은 달라졌으며 자신을 찾기 위해 싱클레어는 부모의 세계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허울뿐인 사회의 향락에 취하다 베아트리제라는 이성을 만나 빛으로 나가고자 하고 자신 내면의 확신을 데미안에게
알리고자 한다. 알을 뚫고 날아오르는 새의 그림으로. 하지만
데미안에 돌아온 것은 알을 뚫은 새는 신에게 날아가는데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고 한다.
다시 싱클레어는 내적 자아를 확립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아브락사스를 찾아 다양한 이들의 욕망과 운명속에서 싱클레어는
방황하게 된다. 많은 욕망과 만족, 갈구, 허무 등이 있었지만 종국엔 그 결과가 전쟁을 통해 부상을 당한 자신이었다. 하지만
용기내어 운명을 마주한 결과라고 말한다.
지식인의
고뇌, 젊음의 방황을 노래한 <데미안>. 기존의 책들이 타인의 관점에서 누군가 무엇을 하려고 표현했다. 하지만
본 도서는 지극히 일인칭 관점에서 사소한 표현 하나도 원초적이며 무엇을 갈구하게 만드는 욕마의 뇌쇄적인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단순 배열도 한국식으로 어법에 맞게 늘어놓아 부자연 스럽기 보단 원문 직역으로 감정의 깊이와 호흡을 표혔했기에
그 강약이 느껴질 정도로 문구는 가슴을 때린다. 헤세를 관통하는
<전혜린>작가의 가식 없는 깊이 있는 통찰의 번역들과 그 감정의 이해가 <데미안>과 우리를 겹쳐보이게 만들어 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