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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수업
백혜선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인생에서 좌절을 맞이하는 순간은 언제고 얼마나 지속될까.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남들과 주어진 것이 평등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괴리감을 느낄 때? 다양한 원인에서 기인하겠지만 당시의 좌절은 말 그대로 한 순간의 찰나일뿐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시도할 때 마다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벽과 싸워 가야 하는데 정해진 기준이 없고 타인에게 기준에 평가되는 사람들. 스포츠와 문화 전반에 종사하는 사람들일텐데 그중에서도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들이 좌절을 제일 많이 마주하지 않을까 싶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러시아인외에는 냉대받는 콩쿠르에서 정명훈지휘자이래로 3위에 입상한 동양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백혜선(58). 아직도 교수이자 현역 연주자인 그녀는 1위가 없는 콩쿠르에서 공동 3위를 해냈는데 사람들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동하고 오케스트라 역시 열광했다. 이런 성취의 그녀는 장밋빛, 꽃길만을 걸어온 아티스트가 아닌 좌절과 불안이라는 고통으로 흔들리고 피아노마저 놓고 싶은 현실만이 가득했다.
네 살 때 할머니 권유로 시작한 피아노지만 피아노가 아닌듯하여 수영을 시작했고 거기서 규격이상의 수영선수 최윤희를 만나 압도당하고 수영을 그만 두게 된다. 다시 피아노로 돌아오지만 이비인후과의사 아버지의 부침은 심했고 늘 취미에서 끝나길 바랬다. 대구에서 서울로 예원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때 선생의 권유로 미국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그 와중에 강력한 아버지의 반대에 좌절하였으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강하게 의지를 세우고 건너가 ‘건반위의 철학자’ 러셀 셔먼, 변화경 부부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정석 연주외에 감정을 피아노에 담길 원했고 난해한 요구에 문학적 감수성이 모자름이 심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추구는 그녀를 늘 좌절이란 골목으로 몰아 넣었고 길에 대한 선택에 후회와 절망만 가져다 줬다. 여러 콩쿠르에 입상하지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본선 1차 탈락에 깊은 후회로 음악을 접겠다 마음먹고 영업사원으로 일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변화경 선생님의 마지막 권유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출전하게되고 한국인으로써 본선입상이라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언제라도 세계 대회에 나가는 조건에 서울음대교수라는 직책이 생겼고 서울대 교수 남편에 두 자녀까지 얻었다. 모든걸 다 얻은 그녀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회의가 들었고 아이엄마, 교수, 연주가라는 불분명한 정체성에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 했다. 좌절과 고통속에서 자신이 추구한 열정이 답해준 이르는 길에 다시금 나가고 싶어 교수직을 내려놓고 이혼과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한다. 현업 연주가로 부단히 연습을 하고 자유직과 같은 교수로로 두 아이는 하버드에 진학시킨다. 그녀는 그렇게 타인에게 감동을 전하는 연주자겸 두 아이를 올바르게 키운 엄마로 러셀 셔먼, 변화경 같이 후학을 위한 교수로써 늘 새로운 상황, 좌절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고 있다.
자기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스스로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이것을 ‘성숙’이라고 부른다. (p.136)
분노, 방황으로 이르케 하는 좌절속에서 그녀를 세운 동기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가슴을 울리고 싶은 열망, 그 과정을 좋아하는 열정. 정확성의 길을 보여줘야 할 그녀는 완벽을 넘은 즉흥성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도 지겨운 반복 연습을 한다고 한다. 정확한 건반 눌림위에서 가슴을 울릴 것을 자유로이 나오게 할 것인가 고민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