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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 성공한 근대화, 실패한 근대화 ㅣ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총서 99
김석균 지음 / 예미 / 2022년 11월
평점 :
해금
( 자기 나라 해안에 외국 선박이 들어오거나 그곳에서 고기잡이하는 것을 금지시킴 )
우리는 쇄국 정책이라고 했으며 조선 성리학의 고루한 사대부들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이라 말했는데 바다 건너 오는 사람은 오랑캐라고 했으며 오랑캐와 소통하는 것을 금한다’ 라고 주창하였다. 하지만 서양은 척박한 땅에 한정된 농산자원으로 대양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결과 고기의 잡내를 없애주고 향을 더해주는 후추와 향신료를 알게 되어 무역을 하기 시작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향신료를 헐값에 수탈하기 위해 식민지화를 시작했고 강제로 개방을 시켜 이익을 극대화 하였다. 반대로 고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해금(海禁)을 했던 동양은 근대화의 물결에서 멀어졌고 개방과 동시에 낙후된 경쟁력으로 도태되기에 이른다. 해금(海禁)은 과연 이로운 것인가 독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중국, 한국, 일본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 보면 천혜의 자연보고 해양자원 바다에 대한 개해(開海)의 필요성을 달리 할 수 있을 것이다.
1500년 이후 유럽은 로마제국 멸망이후 분열로 패권을 차지하려 시끄러웠으며 아시아는 지리적 이점을 통해 높은 생산성의 경제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은 생존에 대한 열망과 부에 대한 갈굼으로 바다로 향했고 우연찮게 새로운 항로를 개척 아시아로 향하게 되었다. 새로운 향신로, 차등의 산물은 몇 십배가 넘는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교류를 할수록 그들의 문화와 달리 아시아의 근대화는 진행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네덜란드는 수로보다 낮은 지리적 요건에 해상관련 기술이 발달했고 영국같은 경우는 석탄 생산국으로 관련 산업 증기기관이 발달했다. 새로운 자원과 부에 대한 열망으로 이들은 강력한 해상국가로 발돋움 했고 한, 중, 일은 원치않은 강제 개항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의 수용자세는 판이하게 달랐다. 중화민족주의를 우선으로 치는 중국은 대륙의 방대함을 과시하려 사절단은 국내로 들이지만 국가의 생산성과 군의 취약함을 알고 수탈과 아편으로 자원을 갈취해가고 식민지화 해간다. 아편전쟁이후 중국은 개혁을 시도하지만 일본은 쇄국을 표방하는 듯 했다. 하지만 늘 중국의 소식에 촉각을 기울였으며 개항요구를 받았을 때 메이지유신과 같은 개혁으로 근대화체계를 갖추며 동아시아의 패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러 개혁운동이 일어남음에도 불구하고 개방을 시도하려 했으나 보수적인 권력자들의 무지함으로 제일 늦게 근대화를 이루게 된다. 결과 우리는 자국력 약화에 일본의 식민지라는 굴종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내게 된다. 과연 근대화에 관심이 있고 명분과 허식보단 실리를 추구했으면 치욕없이 오늘날의 모습을 빨리 이루지 않았나 안타까움이 든다.
나라안의 시끄러운 상황들을 보면 과거의 실수를 똑같이 답습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서로가 올바른 소신이라 믿겠지만 경기가 힘든 상황에 이념의 대립으로 실리를 추구하지 못하는게 미래에의 후손들에게 해금과 같은 영향을 미치지 않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