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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 - 불안과 기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숙의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평점 :
우리는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의 내면적 의도를 엿보려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끌어올린 자신의 아픔을 달래면서 얻은 성찰과 자신의 상처를 보다듬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학적 의미에서 자신의 의지되로 나아가지 않고 상황에 휘둘려 자신이란 존재가 형성되는 과정을 저자는 미술작품에 담아내는데 이를 우리는 ‘숭고(the sublime)’ 라고 부른다.
숭고는 예술학적으로 많이 회자되는 단어이다. ‘숭고한 죽음’ ‘숭고한 영혼’ ‘숭고한 희생’ 미학적이긴 보단 도덕적인 윤리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미학적 인본주의를 벗어나 숭고에 대한 미술적 접근이 활발해졌고 근데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의 의미로 떠올랐다. 하지만 숭고라는 의미를 담아내기엔 그 주제의 접근이 틀려졌고 지금은 희생이란 의미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삶은 풍족하고 부러울게 없어 보이지만 현대인은 무한한 경쟁에 쉴새없이 달려야 하고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 결과 불안과 같은 심리로 고통받고 치유할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조각가인 저자도 그런 현대인중의 하나로 상처와 치유할수 없는 아픔을 작품을 통해 극복해보자 한다. 이는 자신의 직업이 주는 일환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내면속 불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 그 원인을 알아야 하고 그녀가 조형하는 과정은 세상과의 접점을 통한 그 근원을 받아들이고 회복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저자는 작품을 시작할 때 인생에 관한 질문으로부터 모티브를 얻는다고 한다. 우리가 외면할수 없는 문제를 회피하고 간과한다면 불안은 인간의 실존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작품을 통해 그 이유를 마주하고 승화시킨다고 한다. 이것이 저자만의 내면으로부터 이끌어 올린 숭고의 미학이다.
“노이로제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민을 회피한 결과다” -칼 융-
20세기가 들어 과학적으로는 비약한 발전을 이루지만 정서적으로는 더욱 불안이 짙어져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것이 그런 심리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 같다. 저자의 작업과 순간 순간에 느끼었던 감정들이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면 불안했던 감정의 이유를 조금씩 생각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