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틀리에 - 나를 열고 들어가는 열쇠
천지수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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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과 무의식속에 느껴지는 감정을 글과 페인팅(그림) 통해 투영해 본다.

그것이 나 자신을 알고 나의 감정에 집중해주게 하는 매개체 <책 읽는 아틀리에> 이다.

 

그림은 보는 사람의 인식과 각도에 의해 해석이 달라진다. 각각의 고유의 의미가 다른 감정을 통해 본다면 어떻게 해석되는걸까. 저자는 화가의 눈으로가 아닌 사람의 글과 감정을 통해 그림을 본다. (다른 생각의 탄생-장동석 p.73) 우리가 읽는 다는 행위는 일종의 카타르시즘과 닮아 있다. 혼자 읽는다는 그 감정, 즐거움이 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행위가 독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진실과 가치를 추구하고 그 알아가는 과정이 읽기와 쓰기에서 비롯된다면 저자는 본다는 행위에서 그 감각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왜냐면 논리를 추구하고 직관적이며 감성적인 행위가 사람의 내면을 알아가는 것이라면 그림을 통해 본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새하얀 캔버스에 어떤 지침도 규약도 없이 그려나가는 것은 자신의 서평을 쓰는것과 그리는 행위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을 알아가는 비밀스런 즐거움, 저자는 그림을 통해 투영해 보는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평소에 글로 느끼고 사소한 감정, 행위, 일상을 그림에 접목하여 표현해 본다. 수려하고 서정적인 어체가 친근하며 공감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감성적으로 느끼고 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그림에 투영하여 표현하는 작가의 말한마디에 감정을 곰씹어 보며 나자신을 돌아보며 더 깊은 몰두를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을 하면 단말마와 같은 단편적인 감상만을 해왔다. 하지만 큐레이터와 같은 해설을 듣고 타인의 작품속 문구와 자신을 감정을 블렌딩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성은 단말마가 아닌 문장으로 자연스레 나타난다. 53권의 감상기와 적절한 감성과 미술작품의 승화 그것이 글과 그림의 이해와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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