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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평점 :

[책속한줄]
"나 사십 대잖아. 적당히 타협해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걸 깨우쳤지."
"세상이랑?"
"아니. 나랑. 너, 스스로를 달래면서 잘 데리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가끔 말이야. 내가 나한테 이유로 모른 채 끌려다닐 때가 있었거든. 그걸 잠시 스톱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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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인간의 마음도 정확한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뭔가 알 것 같고 어렴풋이 잡히기는 하는데 가장 정확한 마음은 보이지 않거든. 대충 이런가보다 넘겨짚을 때가 많아.(중략)시간을 더 흘려보낸 뒤에야 인생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어. 나라는 인간을 해석할 수 있는 어휘들이 많이 늘어났다고나 할까. 그 덕분에 사랑의 정의도 훨씬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어.
후회? 후회는 회전목마와 같은 거야. 끊임없이 되돌아오거든. 어떤 날은 '그래, 내 선택이 옳았어.'라고 자신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 바림아, 어른이 된다는 건 마리야.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후회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것 역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그 순간을 결정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한 일에 후회가 남을까 두려워하지 마. 그것마저 받아들여. 그리고 잊지 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중략)원래 무너지고 다시 쌓아 올리고 이 지난한 일을 반복하는 게 인생이야. 멈춰 서는 게 아니라 잠시 쉬어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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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도 가끔 길치가 있어. 아닌데 싶으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바림의 목소리가 허공에 힘없이 흩어졌다. 동시에 이레의 미소도 빠르게 지워졌다.
"길치는 길을 헤매는 사람이지. 길을 아예 못 찾는 사람은 아니잖아."
"........."
"인생에 길치 아닌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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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의 말처럼 모든 것은 변할 것이다. 계절이 순환하듯 소원도 계속해서 변해 가고 계속해서 좌절할 것이며 또 계속해서 후회할 것이다. 어른이란 후회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 자체에 익숙해지고 그것 또한 삶의 한 부분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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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도 늘 고민되는 것은 으레 있기 마련이다. 늘 나는 10년 뒤의 나를 궁금해했다. 누군가가 마법의 거울로 10년 후의 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써 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내가 갈 길을 찾아갈 수 있을 테니까. 여전히 나는 10년 후 내 모습을 궁금해한다. 그 시간쯤엔 난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반면, 그러면서도 많은 시간을 나는 과거의 시간을 후회하면서도 살았다. 여전히 나는 갈림길을 걷고 있고,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며 여전히 후회와 두려움 속에 인생이란 길 위를 헤매며 살아간다.
19살, 마치 인생의 모든 갈림길의 끝인 것만 같은 시간. 지금 이 길을 포기하면 마치 끝일 것 같지만, 그 길이 유일한 길이 아님을 그때는 미처 몰랐지. 그랬기에 바림은 어려서부터 설레게 했던 물감의 냄새와 캔버스의 질감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을 때 그런 선택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지 않았을까. 사실 여전히 나는 바림처럼 투정 부리고 싶고, 여전히 도망치고 싶은 어린아이다. 하지만 여울의 말처럼 후회에 익숙해지고, 그 시간을 인정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리라.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의 나와 너무도 닮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닮은 우리의 이야기다.
바림에겐 많은 존재가 그녀가 스스로 물길을 틀 수 있게 돕는다. 미대 입시를 같이 하는 친구 해미는 때론 질투의 대상이자 나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하는 동시에 나의 현실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소중한 친구다. 이모인 여울은 그녀의 물감이 여울처럼 흐르게 돕는다. 인생을 오랜 기간 먼저 살아온 선배이자, 사랑스러운 조카를 위한 마음 가득한 이모로써. 그리고 엄마 너울은 그녀의 삶을 커다란 너울처럼 든든히 받쳐주는 존재다. 그리고 '수'는 그런 그녀의 삶에 챌린지 블루처럼 떠오르는 존재다.
'수'와의 몽환적인 만남은 다소 통상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레와 바림의 이야기는 현실성 있어 좋았다. 올제에서 자신들의 다가올 내일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느 나이대의 '내'가 되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언제든 나의 미래는 흐르는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고, 길을 헤맨다고 길을 잃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위로됐다.
이희영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지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파란 색의 풍경도 세세히 그리고 따뜻하게 나눠 그 안에서 삶의 희망을 그린다. 시린 겨울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체온을 담아낸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많은 것들을 포용하려는 의지가 그녀의 단어 하나하나에 담겨있다. 한 번쯤 위로받고 싶은 날, 그대의 하늘은 어떤 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