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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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한줄]

이대로 돌아가 집 현관문을 연다는 건, 그곳에 내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난감한 가게에서 방을 사 가지고 나온 거잖아. 빵 한 입에 우유 한 모금 물고서, 건조하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오늘분의 감정을 꼭꼭 씹어, 마음속 깊숙이 담아 둔 밀폐용기에 가두기 위해.

-13p.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

-184p.


처음 위저드베이커리를 접한건 무대위에서였다. 작은 무대 위에서 최소한의 소품으로 그려진 이야기가 단순히 아동극이라고 하기엔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날로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려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Y도 X도 아닌 결말을 보고온 터라 두가지의 결말은 충격 그 자체였고, 한동안 멍했었더랬다.

위저드베이커리는 제2회 창비문학상과 제2회 창비청수년문학상을 받았고, 2009년 출간 이후 멕시코 프랑스 태국 등 9개국에 번역 수출되며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다. 그리고 오랫만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읽은 위저드 베이커리는 여전히 마음이 아리다.

엄마에게 상처받은 아이는 말더듬이가 되었고, 아이를 위한다는 이유로 번지르르한 가정을 위해 재혼을 선택한 하지만 가정에는 관심이 없던 아버지와 새로운 가족이 된 배선생, 그리고 그녀의 딸 무희와의 관계는 여전히 경계 속에 있다. 부모의 관심 속에 자라야 할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뒀고, 그 방어기제가 도리어 부서진 쉼터가 되었을 때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특별한 공간이 열렸다.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

늘 지루한 일상에 작은 재미가 되었고, 갈 곳 없는 아이의 쉼터가 되어주었고, 기꺼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단골에 대한 의리를 지킨 마법사 점장과 그를 지켜주는 파랑새까지. 이 책은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위트있는 전개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마법의 요소가 등장하지만 그 안에서 아동성추행, 자살방조, 가정폭력과 같이 무거운 이야기를 함께 담아낸다. 마치 끔찍한 현실이 일어나지 않을 마법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괴기스럽고 서글프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내면엔 따뜻한 그들만의 위로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집이 안식처가 되어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작은 안식처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었으니까. 그 어떤 결말을 선택하더라도 그 따뜻한 마음은 전달되지 않았을까.

갓구운 빵의 달큰한 향과 쿠키의 파삭한 식감은 외로운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 달콤한 설탕의 향은 지친 마음을 감싸주고 고소한 버터의 내음은 든든하게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다. 폭신한 식감은 또 다른 든든함을 준다. 따뜻한 빵집의 내음은 이렇게 마법처럼 우리를 감싼다. 아마도 그건 우리는 항상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마법같은 순간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모든 빵이 달콤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것처럼 인생이란 늘 우리가 원하는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딱딱한 삶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씁쓸한 맛에 눈물짓기도 하겠지.

결국 삶이란 내가 선택한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그 결과가 어떠한 결말을 만들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도 나의 것이다. 부디 그 결말이 어떠한 맛이더라도 조금은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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