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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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제니, 그녀가 돌아왔다. 60억의 유산을 들고.



독립투사인 남편을 배신하고 어린 쌍둥이 자식을 버리고 일본 순사와 붙어먹은 나쁜년. 세상은 다시 돌아온 할머니를 그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꿋꿋했고, 당당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상에 60억의 유산은 할머니의 자리를 만들어줬다.



서른 다섯. 4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와 결혼한 친구에게 여전히 빌붙어먹는 삶. 그리고 그런 친구에게 묘한 경쟁심을 갖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두 친구.



결국,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삶의 가치 중 가장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찌질해지고 사랑하기에 싸우고 사랑하기에 허세를 부렸으며 사랑했기에 때리고 괴롭히고 그사람을 병들게 한다. 반면 사랑을 했기에 결혼을 하고 상대의 허물을 덮어 보듬어 살아가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어간다. 참 아이어리나하지만 이 두가지의 맥락은 결국 사랑하기 때문이다.



서른다섯의 철없는 주인공의 눈으로 그려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할머니, 고모, 엄마, 동생의 서사가 깃들어있다. 삶의 헛물만 켜는 남자들을 사살상 먹여살리는 것은 억척스레 살았던 여자들. 그녀들의 삶이 억척스럽다고, 지독하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사실상 그녀들의 뒤에 올라타 그녀들의 지갑을 털어먹으며 산다.



웃기게도 삶의 최전선에 설 때 남자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여성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일까. 폭력의 시작은 미미하다. 뺨을 한대 때리기 시작하고 다음날엔 사과를 한다. 그 한대는 또 다른 폭력을 불러 마침내는 겉잡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찌질한 남자들의 사랑방식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이 땅의 모든 제니할머니들이여, 힘을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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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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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의 나라 조선,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인사의 당사자였던 장영실과 유럽 최고의 자랑인 그림 최후의 만찬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는 상상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임금이 아닌 존재를 믿는다는 이유로 조선시대에 처음 유입된 천주교는 박해의 대상이었다. 17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해박해로 윤지충과 권상현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이들의 유품에서 하나의 그림을 발견하고 이 그림에 대해 추적을 시작한다.



예수와 그의 12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그린 '최후의 만찬'이 왜 이들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일까? 이 책은 그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그린다. 그리고 그 끝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담아 발명을 한 장영실이 나왔다. 천한 신분으로 역사 속에 제대로 된 출생과 사망의 기록이 없는, 홀연히 사라져버린 장영실. 그의 정체가 사실은 외국인이었다면? 예수의 뜻을 기려 희생을 했던 삶을 살았다면?



역사는 이미 지나간 시간과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장영실이란 인물은 정말 안타깝게도 그의 마지막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마지막엔 결국 물음표만이 남았다. 정말 뜻하지 않은 만남과 뜻하지 않은 결말이다.



역사소설에 미스테리를 접목했던 것과 동서양의 문화를 이렇게 엮었다는 부분이 새로웠지만,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허구의 인물들이 섞이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에서 중간중간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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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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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영감을 풀어내는 가장 보편적 방법은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노랫말을 만드는 사람의 뒷이야기는 늘 미지의 세계였다.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물론 보컬의 음색이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몽환적인듯 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해 자신만의 색깔을 담뿍 담은 가사가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간질인다.



그리고 이 책이 악동뮤지션의 노랫말이 나오는 근원적인 바다라고 생각한다. 뚜렷한 결말은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둔 공간. 이 안에서 누군가는 아름다운 산호초를 볼 것이고, 누군가는 화려한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만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전설 속의 인어를 만나 자신의 목소리를 건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번 '항해'라는 앨범의 곡들과 같은 소제목의 에피소드들이 옴니버스 형식처럼 이어진다. 다른 듯 크게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따라 노래를 함께 듣는 것도 색다른 재미. 노랫말이 단순히 텍스트로만 남겨져 있을때와 또 다르게 음율을 만나면 또 다른 느낌이 생겨난다.



과연, 당신은 바다 속에서 찾아 헤매던 누군가를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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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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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만큼 보인다. 이 말은 어느 분야에서나 정말 딱 맞는 말인 듯 싶다. 좋아하면 알고싶어지고, 알면 새로운 것들이 다시 보인다.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을 오래도록 관찰한 에세이다. 사실 처음엔 그림이 많은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텍스트에 놀랐다. 그만큼 오래도록 바라보고 관찰한 이야기들이고, 좋아하는 만큼 모두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음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살면서 예술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에 스며든다. 예체능을 직접 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지만 그래도 음악을 감상하거나 그림을 보는 것은 살면서 포기 못할 즐거움 중 하나다. 대신 공연을 보거나 음반을 듣거나 전시회를 시간을 내서 다니곤 한다. 보았던 작품이어도 한번 보았을 때와 다시 보았을 때 보이는 폭이나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다. 그 당시 나의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시 보았을 때 처음엔 미쳐 다 보지 못한 영역까지 넓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도 마찮가지다. 어느 순간 좋아하는 그림이 생기게 됐고,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 작품을 직접 보고싶어졌다. 미술 작품이나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도 이와 비슷했다. 좋아하는 작품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싶어서.

17명의 작가들 중에 익숙한 이름이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드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세잔, 드가, 마그리트 정도가 교과서 속에서 이름을 들어본 작가들이었다. 프랑스에 갔을 때, 그나마 다녔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한번쯤 더 유심히 보았던 작가들이었다. 사실 이들의 작품도 교과서 속에서만 보았던 내용이 아는 내용의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생소했던 작가의 생애부터 그 당시 유행하던 그림의 유형, 그리고 작품 속의 이야기들을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림은 어렵고 읽을 수록 나는 배울 것이 아직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 이들의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제는 아는 폭이 늘어난 만큼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고 읽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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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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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셰미술관의 한 층을 다 차지할만큼 유명한 작가 고흐지만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못했고, 네덜란드의 고흐뮤지엄에서 봤던 가장 가슴아픈 작품은 아파트였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조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고흐. 그의 삶은 늘 현실이 그의 재능을 따라잡지 못했고, 그랫기에 그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삶과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림을 그리고싶었지만 결국 미쳐버린 고흐와 미친사람으로 불렸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유럽의 곳곳에는 음악, 미술, 철학, 문학 등 많은 예술가들의 숨결이 남겨져있다. 그 작품들이 만들어진 공간의 배경과 과정을 보니 왜 이런 작품들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견자가 되고 싶었던 바람구두의 사나이 랭보. 그의 인생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경험을 바탕으로 견자가 되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을까. 베들렌느와의 마지막을 정말 그가 몰랐을까 싶기도 하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너무 빠르게 절필해버린 작가. 그 이후 너무 오랫동안 걸어버린 탓에 다리를 절단하고 결국 후유증으로 죽어버린 랭보.



이 책을 읽다보니 그 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유럽의 예술가들의 삶은 왜이리 다들 하나같이 평탄하지 못할까. 그랫기에 이런 작품들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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