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쾌변 - 생계형 변호사의 서초동 활극 에세이
박준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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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한줄]
온 몸이 새빨개지도록 뜨거워도 '어허 시원'하고, 입천장이 다 까지도록 뜨거워도 '어허 시원'한 건, 세상 사람 모두가 거짓말쟁이여서 도대체 믿을 놈 하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되지만, 때가 되기 전엔 아무래도 알 수 없는 것들. 막내의 점심시간은 가끔 이렇게 사소한 깨달음을 준다.
-195p

아등바등 간신히 오늘을 보내봤자 오늘을 쏙 빼닮은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쩐지 이번 생에는 갑갑한 현실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고, 사실 다음 생이라고 이보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생업으로 심신을 하얗게 태운 보통 직장인이 하루를 반추한 결과가 고작 이 모양일 때, 어느덧 '나만 이렇게 사나'싶은 짜증과 불만이 밀려올 때, 똑같은 소릴 읊조리며 옆에 쪼그려 투덜거리는 생명부지의 동명상련이 되고 싶다. '그래도 오늘까지 별 탈 없이 수습해서 다행이야'를 되뇌며 마법 같은 정신 승리로 한 줌의 안도감을 얻고 싶다.
-257~258p


전문직종의 직업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차원의 사람인 줄 알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은거다. 누구든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할 생각에 어깨가 축 쳐지고,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내 가슴 속 사표를 만지작거리게 할까 고민하게 하는. 아, 나와 작가가 다른 유일한 것은 나는 사표를 던질 근로자지만 변호사는 사표를 던질 곳 없는 1인기업, 개인사업자라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도 결국 내가 잘하지 않으면 짤없는 전쟁터 속의 외로운 섬.



평범한 10대를 지나 방황하는 20대를 넘어 어쩌다보니 변호사가 되어보니 세상에는 열명의 사람이 있으면 열명의 사연이 있고, 그 안에서 생기는 크고작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다보니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은 흘러갔고, 오늘과 또 다를 것 없을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는 마무리가 어째 내얘기와 다를 것이 없다.



어렵게 쓰여진 책은 아닌데, 너무 현실적이라서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이 나라의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없고 한 일에 비해 턱없이 성에 안차는 월급을 받으며 다음달에 나올 카드값을 걱정하고, 오늘 아침엔 연가를 내고 쉬어볼까를 고민하면서도 습관처럼 옷에 몸을 꿰어낸 후 출근시간의 만원버스에 넋놓고 몸을 실은채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세요'를 비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며, 퇴근 후엔 철저히 집에만 붙어있으면서 금요일엔 웬지 약속이나 잡아볼까 싶어지는 들뜬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은 칼같이 지키고 점심시간에 편한 이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런거.



결국 우리는 다시 아침이 오면 어제와 같이 생존을 위해 이불 밖을 나설 것이다. 마음 한켠엔 격렬히 아무것도 하기싫은 본능을 숨긴채로. 한달의 수고를 월급이란 이름으로 보상받고 정말 힘들고 고달픈 날엔 술한잔으로 하루를 흘려보내는 그런 하루들이 또 쌓이겠지.



그래, 나만 힘든게 아니야. 내 옆에 당신도 그리고 나도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은 모두 같은 것이지.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출근을 한다. 삶의 쾌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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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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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나로써 살게하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하는 존재. 그 것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으면서 동시에 두려워 뒷걸음치게 하는 것. 맹목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안다. 사불은 결국 스스로를 불덩이로 이끌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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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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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한줄]
사람들은 자연과 시간을 향해서는 어째서 살인마라 칭하지 않을까. 그들의 살인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일가. 지나치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이다. 곧 검은 구멍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도로변에 뒹구는 빈병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해안가에 떠내려온 죽은 고래 떼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그 아침은 너무 길고 지루해서, 죽음에 이르지 못할 타격만을 내게 줄 것이다. 언제까지 그 짓을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그 비참함을 언제까지 견뎌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아침을 한 번쯤은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408-409
-
나는 그것이 위험한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오기와 내 조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누구 하나 상황을 진정시키거나 멈춰 세우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달릴 줄만 아는 수레바퀴였고, 그 질주는 꼭 바퀴가 망가지거나 수레가 똥더미에 처박혀야 끝이 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태져 똥더미를 향해 가는 그런 사이.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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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스릴러의 대표주자 정유정작가와 미야베미유키 작가가 극찬한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대됐던 책.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보고난 후의 충격 역시 강렬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건지 의심될 정도로. 우리는 마음에 어떤 사불을 갖고있고, 그 사불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살까.

그리고 책을 덮고나서는 얼마나 내가 무자비한 방관자인지도 생각해본다. 무참히 죽어간 희생자들, 잡히지 않은 범인, 그리고 대중들의 기이한 관심으로 만들어진 동네. 죄책감이 만든 진실의 왜곡까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눈으로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고, 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간과 방관자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 참 희안하지. 그 마을을 결국 유명하게 만든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방관자들은 그 이상을 벗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사건으로 먹고사는 도시. 모두가 살기 위해서 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피해자들에 대한 2차가해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공간. 그 공간의 삭제조차 경제적 논리에 의해 자행되는 세계.​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사불을 한마리씩 갖고다닌다. 나에게는 사불이 무엇일까. 나를 나로써 살게하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하는 존재. 그 것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으면서 동시에 두려워 뒷걸음치게 하는 것. 맹목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안다. 사불은 결국 스스로를 불덩이로 이끌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스스로 그 불덩이에 먹이를 던지고 있지 않나.

분명 그 어느곳도 그누구도 아닌 이야기인데, 모두가 가진 사불에 잠식당한 이들이 무서울까. 나를 불태우는 나의 사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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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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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한줄]

새로운 생각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서 융합할 때 이루어진다. 보통 이런 다른 생각들은 충돌하고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이 새로운 생각으로 통합되면서 문화는 한 단계 발전한다.

272p

 

-

 

인간에게 의식주는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 중 하나다. 주거 공간은 외부에서 닥쳐오는 위험요소에서 분리시켜주는 인류에게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공간이 갖는 힘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공간 위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그 공간에서도 나만의 색체를 담아 살아간다. 유현준 교수는 BC9500년부터 새로운 21세기를 살아가는 2000년대를 지나 팬데믹현상으로 전세계가 어려움에 처한 2020년까지 역사가 담아낸 새로운 시각의 틀을 담아냈다.

인류는 외부환경으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동굴을 찾았고, 선사시대 움막도 그 특성이 들어나는데, 불을 피우는 공간과 배변을 하는 장소가 점차 분리되고, 농업이 발달되면서 주택의 형태도 발전해갔다. 점차 발전한 주거문화와 산업화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개발해냈다. 지금은 도시의 발전으로 현시대의 주거환경으로 변화했다. 이제는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요소와 거주형태를 고려해 공간을 새롭게 만들고 꾸민다. 벽을 구획하고 가구의 위치를 정하고 원하는 기능에 따라 공간을 만든다. 현시대의 도시인이 거주하기 가장 합리적인 아파트와 같은 고층빌딩이 나타나면서 우리는 단순한 기능의 의미를 담던 것에 디자인, 미학을 입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시를 떠올릴 때, 그 공간의 색체를 떠올리곤 한다. 처음 여행을 갔던 상해에서 느낀 색채는 푸른 청색과 화려한 적색이었다. 푸동은 기네스북을 몇번이나 갱신할 정도의 높은 빌딩숲과 화려한 현대도시의 연속이었고 강을 하나 사이에 둔 상해는 역사의 시간을 기록한 와이탄의 거리와 예원의 화려한 용머리는 고풍스러운 붉은 색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도심은 골목골목 장식한 엔틱하고 낮은 건물들의 연속이었다. 제주도의 집은 바람이 거센 만큼 돌담을 쌓아 바람이 통하는 길목을 만들었고,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떠올리면 우리는 자연스레 파란지붕을 떠올리곤 한다.

이처럼 공간의 특성을 만든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공간이 갖는 자연적 생태적 환경적 요인이다. 환경에 따라 문명이 만들어졌고, 그 문명은 또 다른 형태의 공간을 만들었다. 결국 새로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유기적이고 순환적인 작용인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과거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이야기한다.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강을 기점으로 새로운 문명이 발생했으며, 종교적 환경적 이유로 변화한 건축물의 양식형태 등을 꼼꼼히 다뤄낸다.

인간이 사는 공간의 발달은 결국 삶에 관여하는 모든 것의 복합적인 산유물인 것이다. 동양에서 시작된 도자기는 동서양 교류의 시발점이 됐으며 문화교류는 동서양의 건축양식까지 변화시켰다. 결국 문화간의 이종교배가 새로운 공간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고 이제 공간의 의미는 물의 교회와 같이 물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일부까지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로 열린 팬데믹으로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단순히 건축학이라는 하나의 분야에 국한 되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역사, 문화, 종교, 기술의 결합까지 새로운 연구는 계속되고 건축이야말로 융합의 시작이자 끝으로 향하는 학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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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소녀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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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사고란 없단다. 우연도, 실수도 없고, 탈출구도 없지."

시신을 내려다보던 남자가 덧붙였다.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일 뿐이지."

262p

16살의 소녀가 가진 정말 작은 욕심, 농담처럼 던진 소원이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키는가. 친구들 사이에서의 역할과 위치가 중요한 시기인 사춘기 소녀들의 욕심과 욕망을 이렇게 스릴러와 호러의 중간 쯤의 형태로 그려낸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살면서 한번쯤 누구나 지니의 요술램프를 꿈꾼다. 이런 소망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세계의 흐름을 바꿀만큼 커다란 소원도 아니다. 전교1등, 부자가 되는 것, 복권 당첨, 시험에서 목표한 점수를 받는 것,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고백하는 것 처럼 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작은 소원들.



그리고, 그 소원을 지켜줄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그것도 전학온 후 유일하게 짝꿍이 되어준 내 친구가 솔깃할 제안을 해온다면? 당신은 소원을 빌게 될것인가? 보통 이런 경우 어떤 소원을 빌것인가를 고민해왔다면, 이 소설에서는 소설을 빌 것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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