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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속한줄]
사람들은 자연과 시간을 향해서는 어째서 살인마라 칭하지 않을까. 그들의 살인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일가. 지나치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이다. 곧 검은 구멍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도로변에 뒹구는 빈병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해안가에 떠내려온 죽은 고래 떼 같은 아침이 올 것이다. 그 아침은 너무 길고 지루해서, 죽음에 이르지 못할 타격만을 내게 줄 것이다. 언제까지 그 짓을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그 비참함을 언제까지 견뎌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아침을 한 번쯤은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408-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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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 위험한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오기와 내 조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누구 하나 상황을 진정시키거나 멈춰 세우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달릴 줄만 아는 수레바퀴였고, 그 질주는 꼭 바퀴가 망가지거나 수레가 똥더미에 처박혀야 끝이 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태져 똥더미를 향해 가는 그런 사이.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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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스릴러의 대표주자 정유정작가와 미야베미유키 작가가 극찬한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대됐던 책.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보고난 후의 충격 역시 강렬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건지 의심될 정도로. 우리는 마음에 어떤 사불을 갖고있고, 그 사불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살까.
그리고 책을 덮고나서는 얼마나 내가 무자비한 방관자인지도 생각해본다. 무참히 죽어간 희생자들, 잡히지 않은 범인, 그리고 대중들의 기이한 관심으로 만들어진 동네. 죄책감이 만든 진실의 왜곡까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눈으로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고, 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간과 방관자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 참 희안하지. 그 마을을 결국 유명하게 만든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방관자들은 그 이상을 벗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사건으로 먹고사는 도시. 모두가 살기 위해서 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피해자들에 대한 2차가해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공간. 그 공간의 삭제조차 경제적 논리에 의해 자행되는 세계.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사불을 한마리씩 갖고다닌다. 나에게는 사불이 무엇일까. 나를 나로써 살게하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하는 존재. 그 것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으면서 동시에 두려워 뒷걸음치게 하는 것. 맹목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안다. 사불은 결국 스스로를 불덩이로 이끌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스스로 그 불덩이에 먹이를 던지고 있지 않나.
분명 그 어느곳도 그누구도 아닌 이야기인데, 모두가 가진 사불에 잠식당한 이들이 무서울까. 나를 불태우는 나의 사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