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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평점 :
[책속한줄]
그렇게 미소 짓다가 정정은 씨는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음흉한 사람이 되었을까. 타인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되엇을까. (중략) 어디부터 길을 잘못 들었기에 이렇게 음울한 즐거움을 달콤한 독약처럼 한껏 들이마시는 사람이 된걸까. (중략) 정정은 씨는 갠지스강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더 야비해지기 전에, 자신 안의 무언가를 태워 그 재를 흘려보내야 할 것 같았다. 악마는 멀리 있지 않았다. 마음의 어디가 썩었는지, 역겨운 냄새가 어디에선가 풍겨왔다.
- 69p '정정은 씨의 경우'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걸까. 사각사각, 김은정의 마음속 빈자리에서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136p '공동생활'

책 속에 이 많은 정아씨들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평가를 받고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다음 정아씨는 행복할까 싶어 넘기고 넘겨보아도 왜 나는 이렇게 슬프고 마음이 저릿한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들의 삶이 특출나게 특별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았다는게 더 뭉클해진다.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행복하게 살고싶었던 아주 작은 욕심이었을 뿐인데, 주인공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찌질하고 못난것일까. 순진한 여성들의 삶은 당하기 일쑤고, 당하기 싫어 아득바득 노력하면 독산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당연히 따라붙는 여성의 희생. 가사를 돌보고, 뒷바라지를 하고, 원하면 언제나 몸과 마음을 주는 것.
열심히 사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순진하고 젊은 여성들이 왜 독하고 못된 여자에 ㄴ까지 달아야했냐는 것이지. 가난한 삶에서 더 좋은 상황으로 가기 위해선 단돈 백원이라도 아껴야하고, 알뜰살뜰 쿠폰을 모아 간식을 먹는 삶에도 고소한 삼겹살은 맛만 좋을 것이고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는 여자친구일때는 그저 고맙고 야무져보이다가도 법복을 입고 난 후에는 거머리가 될 수 도있는거지. 순진해서 유부남인지 모르고 만났을지라도 결국 상간녀라는 꼬리표는 여성에게 남는 주홍글씨고, 회사에서 참다참다 못해 던진 사표는 이별의 사유가 됐다. 아니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여성'이라서 죽어야만 했던 수연의 억울함은 또 어쩌고.
분명 이 소설의 여덟주인공은 소설 속 인물들이다. 누군가는 과장한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할테고, 누군가는 이들의 목소리와 이들의 삶에 구구절절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분개하고 마음아파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강펀치를 날리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소설 속 그녀들은 인파이터로 소설 밖 우리는 아웃파이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