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열린 책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책속한줄]

"(중략) 저들도 모두 언젠가 잉태되어 나왔겠지. 모두 하나하나 두 사람이 결합해서 세상에 태어난 거잖아. 태어난다는 것. 우리는 어째서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죽어가는 이야기, 태어나는 이야기 말이야."

-169p.(앨버커키의 레드 스트리트)

 

루시아 벌린의 두번째 자전적 소설. 청소부매뉴얼은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에 대해, 젊은 시절 열심히 일했던 보람과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던 책이라면 이 책은 조금 더 깊고 본질적인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의 근원, 탄생과 죽음, 시간의 흐름 속에 쌓이는 자신의 연대와 서사에 대해. 그리고 주로 자신이 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배경이 됐던 전작에 비해 이번엔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특히 더 깊게 다뤘다. 그래서인지 한층 더 깊게 사색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주였다.

 

그녀의 소설들을 보고있으면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을 관찰했는지 알 것 같다. 단순히 그 시간의 감정과 서사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장면과 시간을 오랫동안 품고 고민하고 관찰해 한문장 한문장 만들어낸 기분이 든다. 그 순간의 공기, 환경, 구성원들의 모습, 시간의 흐름까지 이 존재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해 내가 마치 그 장소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기의 다른 나라의 모습을 느낀다는 것. 그래서 더 묘하고 신비한 기분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쓴 '앨버커키의 레드 스트리트'를 꼽고 싶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와중에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의견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까지도. 내심 그녀의 이야기에 그녀를 대입하며 읽고있어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갖는 인식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출산을 통해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모습이 왠지 공감이 갔다.

 

여전히 그녀의 삶은 고되다. 싱글맘으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행복과 고됨이 공존한다. 알콜에 의존하고, 다시 선생님으로 간호사로 삶을 개척해가기까지 고된 삶의 향기는 그녀의 글을 더욱 깊어지게 했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쓰리고 아팠다. 그리고 항상 응원하게 된다. 그녀의 삶이 이제는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물론 이미 작고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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