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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 테마소설 1990 플레이리스트
조우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책속한줄]
사람들은 부를 노래가 떨어지면 애창곡과 인기차트에 들어가 노래를 골랐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노래는 그래서 점점 더 아무도 불러주지 않게 되고,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게 되어갔다.
-61p. 에코체임버
혼자 녹색극장에 갔어.
네가 말했다. 나는 우리의 녹색극장이 이제는 혼자만의 것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고 같이 갈 줄 알았던 장소가 각자의 장소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104p. 녹색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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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을 만드는 감각들은 참 다양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수향이 날 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 때, 함께 즐기던 맛집에서 함께 먹던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나를 만든 음악을 들을 때. 누군가는 그랬다. 우리의 취향은 우리가 10대에 겪었던 기억들로 기인한다고. 그 당시에 즐기던 노래와 취향이 평생의 나를 만든다고. 실제로 그 당시에 좋아했던 것을 여전히 좋아한다. 좋아하는 그림, 색, 음악, 장르 등등. 아마도 그 시기의 나는 다양한 경험에서 나만의 취향을 찾고 세상을 좀 더 성숙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된 과도기였던 것 같다.
처음 좋아했던 아이돌가수를 여전히 좋아한다. 몇년 전 개봉한 영화에서 기인한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해체한 가수들이 다시 돌아오고, 다시 인기가 올라가고 있지만 다행히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왜 여전히 이들을 좋아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건 학창시절의 나의 추억이 오롯이 뭍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래집단에 속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었고, 함께 어울리며 팬클럽에 들고 콘서트에 가 응원봉을 흔들었다. 아이러니한건 그 친구들과 여전히 돈독하진 못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나의 삶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 그래서 밀크드림은 나의 그들이었고, 주영은 곧 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맹목적일 수 있는 나이. 시작은 모호하지만 결국 나도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뻔한 결말. 그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려하기 마련이고, 그 끝은 항상 좋지만은 못하니까. 주영의 추억 속 밀크드림은 어떤 존재일까. 여전히 찾아들을 나의 취향일까, 잊혀진 추억일까. 그게 무엇이었든, 밀크드림은 나의 첫 가수였고, 첫 친구였으며 첫 연결고리였지. 그래서 주영은 민아의 부탁에 선뜻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민아의 모습에서 현정이, 인천언니가, 자신이 보였기 때문에.
1997년 IMF를 기억한다. 매일 뉴스에서는 도산하는 회사들이 줄지어 이름을 올렸고, 퇴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까울 줄 몰랐더랬다. 마냥 신나고 재미있는 가사인 줄 알았던 '오락실'의 아버지는 단순히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두의 아버지였고, 그 시대의 아버지였다. IMF 시대를 겪은 세대들의 다른 결말. 그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일까. 같은 일을 당해도 누군가에겐 그게 삶의 희망이자 뼈대가 되고 누군가는 그냥 힘든 기억에 불과하기도 하다.
순서 없이 나열된 숫자, 그리고 그 순간의 첫 경험들. 정말 이해하고싶지 않았던 '나'에 대한 '너'의 평가. 이별은 행복할 수 없다지만, 왜 그것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상처주는 이유가 되고 당위성이 되는 것일까.
사실 이 노래의 가삿말이 그런 반전을 가졌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뒷통수가 아직도 얼얼해. 사람들이 선택한 사람은 그래서 누굴까. 가흔인가 나흔인가. 사실 그게 누구인들 그게 중요할까.
누군가 그랬다. 다른사람의 중병보다 내 손가락의 거스러미가 더 중하다고. 내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 중에서 우리 인생에 오래도록 필요로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시대가 변해간다고들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내가 원하지 않던 불청객들이 더 많고, 이 안에서 우리는 살아남고자 버둥거리기 바쁘다. 자신의 집을 찾는 여자가 정말 그 집이 자신의 집인지 그건 이제 아무에게도 중요치 않은 이야기. 윤교수의 소송도 더이상 중요치 않은 이야기. 그러니까,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노스트라다무스가 세계의 종말을 예언했던 1999년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1990년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시대이면서도 어렴풋이 그 시절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나. 그리고 이 책에 담겨진 가수들의 음악을 10대의 한 켠에 들으며 살았던 나. 분명 이 앨범을 갖고 살았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가수들의 앨범만 가득하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가수들의 익숙하지 않은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만든 더 낯선 작품, 이상하게 그 안에 주인공들의 경험은 낯설지만은 않은 아이러니함. 그 모호함이 모여 이 책을 구성한다.
꿈많던 시절의 첫경험은 우리삶에 참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그 기억이 좋았건 아니건. 노래를 들을 때 가삿말에 집중하며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쳤다고? 놀라웠다. 정작 책을 읽으면서는 이 이야기에 갖게 될 이미지가 각인될까봐 노래를 찾아듣지 않았는데, 읽고난 감상을 쓰는 지금 노래를 하나하나 듣고있다. 내가 놓쳤던 목소리와 이야기. 그래, 나는 처음이었던 그 사랑을 어디에 두고 여기까지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