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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든 루스 -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책속한줄]
믿음은 문장일까. 구조를 가진 하나의 완결체, 끝없는 덧붙임, 그리고 마침표.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해 단문으로, 복문으로 그리고 접속사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장은 결국 하나의 문장일 뿐이다. 문장은 문장에 끼어들 수 없다. 결합하는 순간 또 다시 하나의 문장이 될 뿐이니까. 도두암도, 백색 믿음도, 스파게티 교도, 영화 학도들이 믿는 그 영화도 모두 하나의 문장이다. 문장이 우리를 홀리고 위로하고 속이고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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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경계의 나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스물 셋을 더듬어본다. 철없이 도망치기엔 어른에 가깝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오롯이 이루어내기엔 어린아이에 가까운. 앞으로나의 삶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그 어느 시기에 나의 등을 떠밀어준 나의 잃어버린 베개는 무엇이었을까. 날 이 문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준 그 무엇인가 말이야.
제목부터 참 독특했다. 주인공의 이름이 루스인 줄 알았는데, '담배를 든 루스'는 주인공이 펴든 책에 나오는 작품이었다. 소설의 이야기와 큰 상관은 없지만, 제목부터 이 책은 이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참 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의 나와 SNS 속의 나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이름을 쓰는 이유는 익명이라는 편안함에 숨어들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내가 나로 사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해야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익명성은 우리에게 참 많은 이점을 주기도 하지만, 익명은 반대로 참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익명성에 기대 이시대의 청춘들의 민낯을 그려냈다.
날씨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읽는 내내 그들의 이름은 사실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니 이름이 무엇이 중요할까.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닐텐데. 대신 그들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간다. 같이 일하는 순수언니, 다다, 웨더맨, 영화감독, 웨더맨의 아내, 그리고 새로운 직원들까지.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내 삶의 방향을 찾고 고민한다. 함께 일하는 사는 내내 우리는 흔들리겠지만, 스물 셋은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는 민들레와 닮았다. 그래서인지 짧게 끊어지는 문체와 그 안의 위태로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에게 닿아 한올의 홀씨가 되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문체가 참 독특하다. 이어지는 듯 끊어지고, 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문장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편의 소설이 완성됐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이해한게 맞는건가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 자체가 내가 가진 틀 안에서 이해하려던 고집때문이었을까. 이젠 어른이라는 이름에 더 가까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루스의 얼굴 하나가 살고 있다. 그 어떤 표정과 목소리를 넣어 상상해야할지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