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스테이츠 - 1%를 극복한 사랑
체탄 바갓 지음, 강주헌 옮김 / 북스퀘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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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스테이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할 것이다.

드라마에 보면 사랑하는 연인이 두 집안의 반대 때문에 서로가 고민하다가 헤어지거나 아니면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건다거나 하는 스토리가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만이 아니라 현실에도 종종 등장을 한다. 그러고 보면 결혼이란 것이 어느덧 두 사람만의 사랑만이 아니라 두 가문 아니면 두 집안의 문제로 이어지고는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좁은 나라에서도 동,서간에 경상도다 전라도다 하면 지역적인 지역색을 이유로 또는 서로간의 근본적인 결혼관 차이로 서로의 최고의 순간이 될 결혼이 서로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은 어디나 있어온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남북한을 합친 것에 10배쯤은 넓은 인도이다 보니 언어와 풍습 그리고 종교마저 다른 지역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인도의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도에서 오는 차별은 문화가 다른 우리의 생각으로 보면 아마 조선시대쯤 신분차별을 생각하면 될 정도로 지금도 그 차별의 벽은 쉬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투스테이츠>는 제목에서 1%를 극복한 사랑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북부 펀자브의 청년 크리슈와 인도남부 타밀의 처녀 아나냐의 사랑극복 결혼프로젝트의 험난한 극복기라고 할 수 있는 얘기였다.

두 사람 모두 명문 대학을 졸업한 후에 인도 중부 명문 아메다바드 경영대학원에서 만나 사랑을 키울 때만해도 약간은 권위주의적인 크리슈와 활달한 아나냐의 사랑이 이렇게 모든 게 어긋나고 덜컹거리고 우리가 자주 보는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모두 쏟아져 나오리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키우고 확신하면 할수록 양쪽 부모님과 두 사람의 어그러짐은 문화가 다른 우리가 보기에도 심각하고 절대 불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군인으로 권위적인 크리슈의 아버지와 자식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은 어머니 그리고 종교도 말도 다른 사위를 맞고 싶지 않은 아나냐의 부모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넘은 끝에 한 가정을 이루기는 한다.

참으로 구구절절 눈물 겨운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우리로 돌아오면 시공을 격하고 사람만 다르지 이런 문화에 심히 공감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서로가 틀렸다라고 받아들이는 차이에 대한 해법은 결국 사람으로 돌아오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랑하지만 돈이 없어서, 학력이 달라서, 혹은 사회적인 지위가 달라서, 한 가정을 이루는 조건에 이런 저런 조건을 달아서 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과 결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저자인 체탄 바갓은 <세얼간이>란 인도 영화로 앞서 우리에게 소개 된 바 있는 작가이기도 한데 그가 생각하는 인도는 이랬으면 좋겠다 라고 끊임없이 인도사회 요소요소에 이야기들을 들춰내어 우리들에게 재미와 웃음, 한편으로는 눈물과 감동을 잘 전달해주는 작가이다. 이번에 들고 나온 사랑과 결혼의 이야기는 이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다 보면 인도의 사회전반의 분위기와 우리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인도의 속 깊은 문화까지를 알게 되는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있다.

<세 얼간이>에서는 빈부와 신분, 교육의 문제를 이번 <투스테이츠>에서는 인도의 신분적인 문제와 남존여비의 문제 그리고 지역적인 문제까지 들춰내어 하나된 인도의 모습을 그리는 미래적인 인도의 미래상까지 제시를 하고 있다. 그냥 달달한 로맨스만 이어지는 책이 아니기에 읽다 보면 문득 여기저기에서 우리의 60,70년대의 우리 문화가 오버랩 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런 점이 바로 체탄 바갓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시대와 세계는 점점 다른 세상과 문화에 함께 동화되어가고 바뀌어 가는데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인도가 아직 세계 속에서는 한계가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고, 그리고 일부에 의한 인도가 되는 것을 곳곳에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적인 벽을 강제로 허문다는 것은 어렵고 또한 문화적인 또 다른 강제일 수 있어 조심스럽게 언급 할 말이지만 그래도 상식선에서 이루어지는 공통된 문화의 올바른 인식은 조금만 노력하면 현실 속에서도 더 많이 번져가고 서로가 납득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체탄 바갓은 여기서는 결혼이라는 화합적인 산물이 그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그렸다고 하는데 결국은 사랑이라는 공통 언어는 지역과 말과 행동과 종교가 달라도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끈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투스테이츠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결국은 사랑이고 들춰낸 문제의 봉합도 결국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국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펀자브와 타밀을 따지지 않듯이 우리도 이제는 이 작은 땅 안에서 그런 서로의 차이를 따진다는 무의미한 다툼보다 작은 차이 속에서 오는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우리가 된다면 문화적인 배타에서 벗어나는 현명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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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직업 콘서트 - 행복한 꿈을 찾는 직업 교과서 꿈결 진로 직업 시리즈 꿈의 나침반 1
이랑 지음,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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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콘서트]

우리가 어렸을 때는 꿈이 비교적 단순했다. 직업군도 그리 폭넓지 않고 사회도 그리 다양한 직업을 받아드릴 토양이 완성되어 있지를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장래 직업을 얘기 하면 대통령, 군인, 의사, 정치가, 외교가, 교사 등 비교적 부모세대가 잘 알 수 있는 직업군이 아이들의 꿈 인양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그래도 그나마 그런 꿈을 꿀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고 요즘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꿈조차 쉽사리 꾸지 못하는 바쁜 나날이 계속 되고 한때는 동네를 뛰어 다니며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학원으로 떠돈다. 초등학교때부터 입시에 목을 맨다. 좋은 스펙을 얻기 위해 각종 자격증에 도전하고 고등학교나 중학교마저도 우열반이 갈리듯이 갈라져 가는 세상이라 이 사회에서 이미 서열이 나눠져 떨어지지 않기 위한 경쟁은 쉽사리 아이들에게 생각이나 틈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생각 할 틈이 없는 아이에게 장래 꿈을 물어보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라 얘기 하는 경우가 많으니 정말 할말이 없어 질 정도 이다. 물론 우리아이도 예외가 아니니 더 슬프다. 집에서 그래도 편히 놓아 둔다고 하였지만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니 학원을 다니려 하고 꿈도 비슷해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제는 꿈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스스로를 생각해 볼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대적인 세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직업 콘서트>라는 책의 제목이 요즘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콘서트라는 말의 변주 같아 쉽게 책을 열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다양한 직업군이 현실적인 포트폴리오로 잘 편성이 되어 있고 직접 멘토링이 되는 방식이어서 사회에서 한 명의 사회인으로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적어도 가는 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짐작 할 수 있게 잘 정리 되어 있어서 권할 수 있었다.

직업군이 플로어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도 좋았지만 다양한 유형별 검사도 첨부가 되어 있어 어느 정도는 자신을 가늠해 보기에 좋은 면이 있었고 이런 직업 저런 직업을 직접 체험하지는 않지만 말로만 겉핥기 식의 직업 설명보다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자기의 장단점과 비교 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더욱이 어차피 대학과 연계한 전공이 미래의 직업군과 연결 된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런면을 미리 볼 수 있어서 일목요연하게 앞을 바라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 바람직해 보였다.

직업군은 앞으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느 직업이 유망직업이 될 예측을 해야 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빠른 변화를 보일지 모른다. 앞으로 의 아이들의 꿈은 더욱 많은 것에 영향을 받고 빠르게 변할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직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앞으로 자신의 어떤 꿈이라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이 되고 이 책이 주는 의미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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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3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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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아들] 아직은 이런 명탐정이 필요한 시대이다.

철없는 아빠와 너무 일찍 철든 중학생 아들 그런 아빠에 질려서 도망 아닌 도망을 외국으로 가버린 엄마. 이 상황만 보면 우리가 흔히 보는 붕괴된 가정의 연상케 하지만 아버지던 아들이던 엄마던 모두 쿨하게 이 상황을 받아 들인다.

그런데 이 철없는 아빠, 하는 일을 좀 보면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엄마가 떠나자 마자 대책 없이 이상한 흉가 같은 카페로 이사를 가고 떡 하니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이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제목을 간판으로 달고 거기에 명탐정 고명달이란 추가 간판 까지 걸어 놓고 난데 없이 탐정 노릇을 한단다. 소싯적 읽었던 수 많은 추리소설의 힘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나 뭐라나?

그러나 고기왕이란 이상 야릇한 이름을 가진 그의 아들은 한심해 하면서도 그런 아빠와 얼마 안 되는 의뢰비를 위해 오늘도 열심 고양이 찾아 주기에 몰두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어느 날 찾아온 전 의뢰인 대학생 오윤희의 의뢰로 인해 진짜 탐정다운 탐정 노릇을 하게 된다.

의뢰는 뜻밖에 자기 동생이 받은 행운의 열쇠의 행방을 알려 달라는 것, 이 쉬울 줄 알았던 의뢰는 갑작스런 그녀의 동생이 죽음으로 미궁에 빠지게 되고 명색만 탐정에서 진짜 사명감에 불타는 탐정으로의 대변신을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씩 파헤칠 수록 드러나는 일은 점 점 더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최상희 작가의 전작인 <그냥, 컬링>이 잘 알려져 있다는데, 사실 읽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명탐정의 아들>이란 고전적인 제목과 발랄한 문체 속에서 알 수 없는 연민까지 느껴져 단숨에 읽어 버린 책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보면 볼 수록 쿨하게 전개되는 그 속에 담긴 아픔이 마음을 계속 저리게 하더니 지금에야 그들의 얘기를 좀 쓸 수 있게 됐다.

얘기는 명탐정의 아들인 고기왕의 시점으로 전개가 된다. 아빠의 철없는 모습으로 인해 팔자에 없는 소년 가장 노릇을 하게 된 고기왕의 시점은 그 또래의 아이들의 사고와 생각이 잘 드러나 있어 낙천적인 그의 성격과 아이다운 위트까지 보여 주어 자칫 무겁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히 직시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이 모든 사건의 주체가 그 또래 아이들이 라는 것과 해결 역시 그들 스스로 하는 주체적인 주체자가 된다는 것에서 다른 여타 하이틴물과 다른 흥미로운 점을 보여 주고 있다.

학교 안의 죽음이란?

민감하기도 하지만 본문에도 나온 것처럼 이제는 며칠에 한 번씩 벌어지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오윤희의 동생 오유리가 세계에서 10개 밖에 없는 행운의 열쇠를 받았을 때 만해도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행운아 중에 하나였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더 해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책은 오유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왕따, 집단 괴롭힘을 그의 같은 반 연초롱, 민지혜, 한송이 등을 등장시켜 그들의 진술을 고기왕이 정리해 가며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 가고, 잃어버린 감춰진 행운의 열쇠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유리를 통해 고기왕의 아픈 과거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또한 해소하는 시간을 부여한다.

현재의 아픔이라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공부로 인해 인간성의 기본이 되는 감성을 잃어버리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결국 과도 한 경쟁과 경쟁에서 소외된 이들을 루저(loser)’ 취급 하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누가 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다른 아이들의 영악한 괴롭힘마저 도 누구의 의식 속에서 나왔는지 우리는 생각해 볼일이다.

생각보다 가벼운 가운데 진지하고 문제 제기 속에 그들 만의 답까지 찾아 내는 진중함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빵셔틀, 학교 폭력, 왕따, 그리고 서글픈 교육현실까지 두루 언급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고기왕의 주변인들인 아빠와 그의 엄마를 얘기 안 할 수 없는데 만약 고기왕이 겪었던 육학년때의 아픔을 여느 부모들과 같이 그의 부모가 믿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아픔에 아주 힘든 학교 생활을 하고 현재와 같이 이런 자유로운 생각에 머리와 가슴이 같이 커가는 아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현재 완성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생각해 볼 대목이다.

탐정소설처럼 단서를 유추해나가며 진술의 헛점을 파고 들어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도 좋았지만 심리적인 아픔을 힐링시켜 가는 과정에서 범죄 스릴러 형식의 긴장감을 화해와 심리적인 단죄 그리고 용서로 이어지는 전개가 괜찮았다.

요즘 계속 이런 소재의 책을 보거나 뉴스를 듣게 되는데 아직도 이런 현실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데 마음이 아플 뿐이다. 법과 학교가 해줄 수 있는 속풀이가 없기 때문에 답답한 세상이다. 언제나 우리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찾을 날이 올까 모르겠다. 아직은 그래서 우리의 명탐정 고명달과 고기왕이 계속 필요한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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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들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1
주원규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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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들]세상을 폭파해버리고 싶어!

도심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북한인가? 아님 테러분자. 그런데 뜻밖에 인물들이라면?

주원규의 <광신자들은> 같은 도시 안에 살고 있지만 도심의 부산물처럼 찌질하게 살아가던 열외인간들의 분노가 담긴 한방을 보여주면서 나도 살아 있는 인간이다.”를 외쳐본다.

(), (徿), () 외자의 상징적인 이름의 함의가 아주 깊다. 기는 서캐 즉 이의 알을 의미하기도 하고 거머리란 뜻도 있다. 농은 한마디로 덜 떨어진 놈이란 뜻이다. 도는 찌르고 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뭐 어차피 어떤 이름을 붙여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그냥 쓸모 없고 위험인간이라는 것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사회에서 마치 잉여인간과 같이 열외 되어 있는 이들이 벌인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사뭇 흥미진진 하게 다가오지만, 왜 사회는 그런 이들을 갑자기 극악 테러분자로 모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이 그 만큼 이 사회의 악일까? 우리도 이제 그들의 사건현장으로 가보기로 하자.

여친에게 명품백을 사주고 싶어 선뜻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을 일으키는데 참여한 기는 오로지 미모의 여친에게 명품백을 사주고서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아이이다. 좋은 손재주가 있어 무기제조까지 할 수 있는 농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말세를 구할 길은 위정자들을 폭파시켜 처단해야 한다는 이상한 교리에 의해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 한다. 도는 농과 기에 동조하며 자기를 무시한 홍대클럽 사장을 혼내 줄 궁리만 한다.

하지만 이들의 외양을 보면 외모, , 학력, 모두가 안되는 그런 열외인간일 뿐이다. 학력은 중학 중퇴요 외모는 가까이 가기 힘든 차림에 돈은 무기 판매라니, 사회에서 루저라고 불리우는 이 아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떼워지기만 하면 만족하는 그런 찌질한(?)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이 아이들을 극악테러범으로 둔갑을 시켜버린다. ?

소설은 마치 영화 같은 전개를 보여준다. 사제총을 들고 다니고 이상한 철갑복장으로 시내를 돌아 다녀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겨우 폭탄이 터져서야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위험인물로 분류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좀 엉뚱하기는 해도 그들만의 세계에서만 놀 뿐 좀처럼 사회에 섞이지 않는 그들인데 이제는 거침이 없다. 오히려 이들의 어이 없는 행동에 헛웃음을 하면서도 도대체 어디까지 뭘 하려는지, 끝까지 따라가보고 싶은 생각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이들의 이런 이질적인 행동이 이들이 사는 나름대로의 방식 이겠지만 이건 사회의 복수도, 반항도 아니고 자신에게 사소한 의문이요 이유요. 말도 안되는 이끌림을 풀어 해소하는 배설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소시민라면 소시민일 수 있는 이들은 자신의 인생이나 미래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 밖에 모습을 보이며,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행위에는 무슨 당위성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갈수록 측은 하고 불쌍하다. 누가 이들에게 관심 한번 주고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한 적이 있는가? 아마 투명인간 아니면 벌레 보듯 하지 않았을까 싶다. 찌질하다는 외부적인 편견은 누가 심어 주었는가도 그렇다.

기가 여친을 위해 명품백을 탈취하려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주눅 들어 하는 모습도 마음이 간다. 누구라로 그 앞을 지나는 소시민의 주눅 든 마음을 이해 할 테니 말이다. 농이 여자라면 놀랄까? 모든 여자가 외모로 처음 평가되는 시대에서 흔히 농담처럼 주먹을 부르는 얼굴과 몸매라면 이해 될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척 고상한 말을 쏟아내도 결국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고 김태희를 더 인정하는 시대에서 농은 생존조차도 외모에서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 뿐. 도의 허세도 마찬가지 이다. 누구나 어느 곳에서 든 지 작던 크던 인정받고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성이다. 그래서 허세도 부려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들켜버린다면 그가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는 클럽사장에게 한방 먹여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청춘의 제일의 비상구요 탈출구 노릇을 하던 홍대 클럽마저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결국 우왕좌왕 고소터미널 폭파범의 결론 이야기야 사회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 뻔하겠지만 <광신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 한가지 나도 인간이다. 나 살아 있다. 나 살고 싶다.’ 였다.

참 발칙한 상상과 외침이지만 그래도 이 목소리에 조금 귀 기울여주고 싶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세상이 얼마나 들어주지 않으면 이제는 폭탄과 총을 동원 할까? 이 작가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이제 이세상이 그의 소리를 안 들으면 무엇을 더 동원할지 궁금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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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2
김도연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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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아홉] 을 읽고

아내가 사라졌다.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아흔 아홉>은 대관령의 아흔 아홉 구비만큼 다사다난하고 복잡한 남녀간 그리고 부부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도연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란 작품이 영화화 되면서였지만 그의 작법이 마치 홍상수감독의 영화 같은 느낌에 친근함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라면 맞을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 대학 강사의 어린 시절 대관령 구비를 넘어가던 힘든 추억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지만 아내가 갑자기 가출을 한 이유를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행동에서 느끼고 알게 할 뿐이다. 강릉의 집 인근에 사는 Y와의 불륜이 아내의 가출 이유라고 짐작을 할 뿐이다.

사랑…. 이 남자에게는 이제 모호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생활에 지쳐 살다가 그냥 Y를 만나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 하고 있는, 속편 한 남자 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부재(不在)가 주는 불편함, 외로움, 그리고 어디에선가 자신을 계속 보고 있을 것만 같은 존재감. 이 모든 것이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인 것이다. 이 남자의 감정은 참 편리하다.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도 찾는 시늉만 한다. 그리고 일년 여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아내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을 Y에게서 보상 받으려 한다. 그녀가 막연히 돌아 올 것이란 생각만 할 뿐 Y와 강릉 단오제도 함께 다니며 거꾸로 아내의 부재 속에서 오는 선물처럼 여기기까지 한다.

강릉 단오제의 시시딱딱이의 가면극과 굿판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대관령이란 환경이 주는 환영 속에서 그리고 황량해지는 집의 썰렁함 속에서 아내의 부재로 인한 존재감이 뒤늦게 살아나지만 남자의 심리는 결코 어느 여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심리를 보여준다.

남자는 굳이 이 대관령의 풍상을 자신의 심리적인 기저로 삼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다. 그 대관령의 풍상만큼 자신의 복잡한 심사를 토로 하려 하지만 결코 두 손에 쥔 떡을 놓지 않으려는 남자만의 심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내가 돌아왔다.

갑자기 돌아온 아내와의 어색함, 안도감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쉬움.

이런 복잡한 심사 속에 그간 시간과 세월 속에 퇴색된 말들이 오가게 되고 그들은 화해도 이해도 부부라는 관계 속에 묻어버리고 지나간다. 처음에는 이 남자의 심사가 참 복잡하다 여겨 졌지만 이제 느껴지는 것은 한마디로 사랑과 욕정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중심 없는 남자의 줄타기만이 느껴 질 뿐이었다.

세월이 모든 것 속에 묻어둘 수 있는 효과 좋은 상자요 금고라면 그것만으로도 최고 일지도 모른다. 결국 맺고 푸는 열쇠는 아내에게 있었고 Y와 아내의 만남 그리고 세 사람이 대관령의 산자락을 거닐며 화해(?), 용서, 그리고 한 남자를 공유하는 협상 속에 마무리 지여진다.

얼마 전 마침 강릉 단오제가 있어서 하루 당일치기로 갔다 온 기억이 있다. 비록 대관령이 아니라 진부령을 통해 다른 길을 돌아 갔다 왔지만 그 오랜만에 느끼는 긴 굽이의 길은 아무리 새 길을 닦아 쭉 이어진 길일 지라도 보이는 작은 굽이와 옛길의 정취는 그대로 있었다.

후기에 보니 작가가 의미하는 아내와 Y를 옛길과 새로운 길의 상징이라 말하고 있지만 꼭 어떤 은유를 따지지 않더라도 대관령이 품은 이 두 길은 결국 이 산의 아흔 아홉 구비를 돌거나 품게 되니 어느덧 능선 위에서 내려다 보는 강릉은 모두 이 길을 거쳐야만 가는 삶의 길과도 같은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강릉의 단오제에서 본 사자탈춤을 생각하며 책 속에서 본 아흔아홉의 심사, 아흔아홉의 대관령 굽이의 환상이 같이 느껴졌지만 이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서로를 인정한 여자들이 행복 했을까? 아니면 두 여자를 품은 남자가 행복 했을까?

어쩌면 별 의미 없는 의문 일지는 몰라도 작가가 느끼는 대관령은 과거와 현재가 이 안에 모두 담아지는 대관령의 넉넉함을 보여 주려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갑자기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 생각이 나는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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