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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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보일드는 나의 힘]를 읽고

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세상이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헤쳐 나가는 일들도 많으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영향은 감수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마음에 안차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이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슬쩍 나에게 다가와 참기 힘든 유혹의 미래를 보여주고 온갖 장미빛의 내일을 약속 할 것 같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 보는 시기에 다다르면 결국은 회색의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와 불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바로 그것이 건조한 현실이고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저자인 김봉석 평론가가 얘기하는 세상은 그런 건조하고 차가운 세상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현실의 를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느냐에 여러 스릴러소설들을 들어 간접적으로 얘기를 한다.

어릴 때 우리는 여러 고전의 동화적인 권선징악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어른들의 세계를 살짝 엿보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저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하던 선한 주인공이 복을 받고 나쁜 악한 무리들이 벌을 받으며 주인공들은 그 후에 잘 먹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만으로 그래 나도 이렇게 살 거야하고 마음 먹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느낀 것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어떻게 재단 할 수 없는 인간형이 참 많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이렇게 이분법적인 선악의 구도만을 보고 자란 우리에게 현실의 다양함이 가져다 주는 혼란은 바로 힘든 인간 관계를 겪으며 살아 가다 보면 어느덧 동화적인 얘기는 개나 줘버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장 힘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관계의 힘과 사회를 배우게 되고 그때쯤 되면 절대 선과 절대 악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나이의 등급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른들이 그 비정한 세계나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를 미리 알게 해서, 앞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갖거나, 나름 현실의 어려움을 미화 할 수 없다는 것에 모두 동조하기에 나누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내가 본 가장 비정한 현실 영화 중에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모두 각자의 삶의 입장이 있는 가운데 자신의 일들을 한다. 하지만 그것에 옳고 그름은 결국 개개인의 입장에 의해 판단 되고 이루어진다.

사실 저자가 여러 스릴 소설을 들어 얘기하는 세상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린 시절 보아온 추리 소설에서부터 자라면서 다른 현실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하드 고어한 소설까지 여러 작가를 통해 말하고 있지만, 말랑말랑한 해피엔딩의 동화가 현실에서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김봉석 작가의 얘기라고 할 수가 있다.

 

저자가 보여 주는 스릴러 소설의 면면을 보면 현실에 과연 그런 일이 존재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연찮게도 이 비정한 도시에서는 하루에 한번쯤은 뉴스나 신문지상에 이런 일과 사람들이 나오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기시 유스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보면 인간의 심층기저에 있는 무의식의 폭력성을 얘기 하면서 우리가 요즘 많이 듣는 사이코페스를 얘기하는데 그만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폭력성을 얘기 하면서 사회 혹은 자신이 그런 폭력성에 노출되거나 또는 자신도 모르는 폭력성의 원천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얘기를 하며 이 사회를 건조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 콜렉터의 제프리 디버, 짐승의 길의 마쓰모토 세이초 등의 얘기도 거의 매 한가지가 되겠다.

사실 이런 현실은 평범하게 사는 우리에게 있거나, 다가오거나 할까마는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고 어쩌면 어느 때 불쑥 마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뉴스상의 일로만 치부 하고 나갈 것이 아니라 외면하지 못 할 현실이고 언젠가는 마주 할 수도 있는 불편한 현실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현실은 각자 처해진 입장에 따라 모두 힘들지 않고 비정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포영화나 그런 호러물들이 우리의 그럼 폭력성을 순화시키는 대체제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한편으로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보여주는 수 많은 스릴러 하드 보일러물들도 같은 효과 일 것이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간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니 하드고어한 이러한 스릴러 소설로 예방주사 한방 맞고 현실을 직시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어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을 접하고 여러 스릴러물들 중에서 읽어보지 못한 책들을 찾아 보는 좋은 기회도 되었지만 내가 사는 현실에서 적어도 도망가고 변명하지 않는 힘을 재충전 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온갖, 사회에 아니면 내 인생에 답답함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만도 이러고 보니 쉽게 날리는 기회 된 것 같아, 답답한 현실이 불만스러운 분들에게 저자가 얘기하는 하드보일러 소설의 얘기를 듣거나 그가 콜렉션한 책을 한번 찾아 읽어본다면 조금이나마 속 풀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 진다.

그러나 누구나 사는 원동력이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어떤 종류든지 이 힘든 현실에 정당한 인간의 보편 타당한 힘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부여된 삶의 방향을 잡는 것은 각자의 몫이 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뭐든 가차없이 하는 삶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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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본능 - 내 안의 생명력을 깨우는 직관의 건강법
김은숙.장진기 지음 / 판미동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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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본능] 몸의 소리를 들어보라.

몇 년 전만 해도 병이 나거나 몸에 이상을 느껴도 약만 며칠 먹으면 신경 안 쓰고 병이 나았고, 몸에 이상을 느껴도 조금 무리했구나 싶어서 좀 쉬기만 해도 몸이 돌아 왔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이런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회 생활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 왔는지라 의래 그러려니 하면서 지냈는데 이제는 몸을 좀 돌 볼 때가 됐나 싶었다. 거기에 아이들이 요즘 현대 문명병이라고 여기는 아토피나, 비염증상이 자꾸 반복되니 이거 아니다 싶은 기분이 들어 건강 프로그램도 자주보고 건강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되어 지금은 이런저런 운동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몸을 돌본다고 하고는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

거기에 건강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이제는 건강염려증이란 심리적인 우려증이 생길 정도이다.

<치유본능>은 그런 여러 정보들 가운데 하나 정도로 처음에는 접하였으나 자기 안에 있는 생명력을 일깨우는 자연스러운 건강치유법이란 관점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그간 다른 책을 접해보면 이렇게 꼭 해야 한다는 것들이 너무 강박적인 마음을 갖게 만들었는데 저자의 얘기는 어디서든 좋으니 몸이 이끄는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당장 어디서든지 자연스럽게 하나라도 몸에 소리를 따라 움직여 보라고 권하고 있다.

 

음양오행에 대한 색다른 해석도 받아드리기에 흔쾌하다. 도식적인 음양의 해설보다는 상황과 현실적인 상태에 따른 얘기도 이해하기 쉬웠다. 알 수 없는 모호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개개인의 각자 상황에 맞게 건강이 깨진 이유를 이해하고 다시 그런 상황을 자연의 이치에 맞추어 자연스러운 회복력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해준다.

전에 우리나라에서 한의학에 대한 체질론을 얘기하면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확 떠오를 정도로 보편화 되어서 알고 있을 정도 이지만 사실 구분도 하기 힘들고 자신의 증상과 현재 자신의 환경을 다 대입하기 어려워 긴가 민가 하는 상황으로 자신을 맞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치유본능>은 그런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보여 주면서 자신의 몸의 소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에게 맞는 섭생을 위주로 다시 한번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동안 금기시되던 다른 상식들을 각자의 상황과 체질을 파악하여 깨어진 자연의 균형을 몸의 소리에 대입시켜 다시 원상으로 돌아오는 것에 힘을 실어준다.

 

한의학이 치료의 목적으로는 한 개인에게 무척 어려운 이야기가 되지만 반대로 자신의 몸만큼 자신이 아프고 오는 증상을 잘 알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몸의 소리와 증상에 귀를 기울여 어느 때 증상이 나타나고 어느 때 불편했는지를 자신만큼 잘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물론 한의학의 경혈과 음양오행의 이치 그리고 몸과 생각 즉, () 과 신()을 잘 다스리는 이치와 직접 행할 수 있는 섭생과 경혈을 자극하는 방법도 나온다.

이 책이 주고자 하는 얘기는 결국 어느 특정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이상증세나 병후 증상이 결국은 자연적인 몸의 균형이 무너 졌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고 다시금 자기 몸의 소리를 스스로 판단하여 그 자연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많은 서적들이나 건강 프로그램들이 과학적인 근거나 사례를 들어 이렇다 하고 얘기 해주지만 사실 그런 사례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아 그럴 수 있다는 사례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는데, <치유본능>은 말 그대로 본능에 따라 얘기하는 자신의 소리를 들어서 판단하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건강을 찾아 나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서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칠 수가 있었다.

책 말미에 조정호 한의사가 를 찾아 숨쉬게 하는 책이라고 했는데 이 책을 접하고 완독을 한후에 느낀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이 책은 이렇게 한번 읽고 끝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건강의 텍스트로 삼을 만 하였다. 과학적인 현대 의학에 장점을 취하는 것과 더불어 처음부터 건강을 지키고 되찾는 길은 자기 자신임을 다시 한번 알게 해주는 책으로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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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두 번째 비글호 여행 1 - 파타고니아에서 티에라델푸에고까지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26
루카 노벨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비룡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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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두 번째 비글호의 여행 1] 파타고니아에서 티에라델푸에고 까지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로 지금까지 다윈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의 학설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실질적인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전에 종교나 정치적인 영향으로 그의 연구가 본질적으로 흐려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내세운 진화론의 목적은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다양하게 자연의 선택에 순응해 살아 왔느냐 였는데, 그 당시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 했다는 진화적인 견해가 마치 종교적인 이단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그 본질적인 자연과학적인 탐구가 희석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교적인 믿음에 의거한 창조론을 두고 현재 사실인 진화론의 옳고 그름은 따지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느 누구도 증명 할 수 없는 관념적인 믿음의 영역의 창조론을 진화론과 대비시키는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무엇에서 무엇으로 변해 같다는 것이 인간과 신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자연의 태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게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지금도 우리는 그런 섭리에 의해 창조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인간이 이성의 영역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을 신의 영역으로 여기고 그것이 지역적으로 샤머니즘이든 아니면 우리가 익히 아는 종교적인 영역이든 아니면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신화의 영역이든 말해오고 기록하여왔던 것 뿐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완전히 증명 할 수 없는 학문이라 여기기보다는, 소모적인 종교적인 논쟁보다 더 현명한 일은 역시 우리가 그렇게 논쟁을 하던 아니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자연의 섭리를 잘 관찰 하는 것이 역시 한정된 삶을 사는 인간의 몫이라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원의 두번째 비글호의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흥미롭게 진행이 되고 있는데, 다윈을 오늘에 되 살려 그와 함께 비글호가 탐험했던 그곳을 그대로 따라가보며, 다윈이 보는 관점에서 지금은 얼마나 변화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여행기를 보여준다.

1권은 파타고니아를 시작으로 사라진 고대 생물의 화석과 현재 종들의 변화된 모습을 따라가보며 우리가 생각하면 긴 시간일지 모르지만 생물의 세대로서는 짧을 수 있는 이 약 200여년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며 비교하여 이야기를 하여준다.

현재의 비글호의 다윈 원정대의 질문과 되살아온 다윈의 관점이 적절히 비교가 되어 그간 인간들이 이 자연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와중에 버티고 살아온 몇몇의 종들이 얼마나 생존하기 위해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티에라델푸에고의 빙하를 지나 그 당시 인디오들의 삶의 유럽인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과정도 흥미로웠는데 이것도 어쩌면 환경의 변화에 우리가 얻은 정보로 인해 바뀌어가는 인간모습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동물들과 땅을 빼앗긴 인디오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자연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한 한 투쟁이라 생각이 들어 1권을 마치며 씁쓸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같이 읽었던 우리아이도 그런 멸종동물과 인디오들에게 묘한 서글픔이 느껴졌다고 했는데, 아직 자세히는 그 느낌이 무언지 뚜렷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자연을 거스르고 사는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그래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의 선택을 어렴풋이 느낀 것 같아 훗날 더 알 수 있기를 바래보며 2권의 여행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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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두 번째 비글호 여행 1 - 파타고니아에서 티에라델푸에고까지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26
루카 노벨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비룡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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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두 번째 비글호의 여행 2] 푼타아레나스에서 갈라파고스 제도 까지

책의 서두에 보면 진화론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다양성에서 세계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의 위기가 온 이유는 인간이라는 종이 너무 번성 했기 때문이다인간은 생태계에서 비정상적인 종이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다윈은 진화론에서 인간이 자연 안에 특별히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 지금은 유전학이 발달하고 인간게놈(human genome)지도가 완성 되면서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한 생물체를 통해 축적되어 유전 되어가는지를 알게 되는 지경이다.

이제 이 비글호의 두 번째 여정은 우리가 다윈을 알면 가장 머리에 잘 떠오르는 갈라파고스 섬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준다.

이 책은 다윈이 간 길을 되 집어 가고는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좋은 교통편으로 이동을 하고 곳곳의 사람들의 흔적을 말하며 그 여정을 보여준다. 다윈이 얘기하는 종의 변천사를 이해하기는 모두 어렵겠지만 지역에서 고대생물의 화석을 통해 종의 변화가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 적어도 어떻게 순응해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존층의 구멍을 언급하면서 파괴되어가는 지구의 자연시스템을 말해보기도 한다.

칠레와 페루를 지나는 여정 동안 비글호 원정대가 보여주는 모습은 주로 그들이 지나온 도시들의 변천사와 탐험대들의 흔적에 집중을 한다. 그리고 200년전의 탐사대의 모습과 그들의 흔적이 지금의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윈의 여정이 참 다채롭다 느낀 것은 단순히 그때의 원정의 모습이 다윈의 연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국의 영토를 확보하는 차원과 여러 자원의 확보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있었다. 아마 순수한 연구목적이라면 그렇게 많은 문제가 그곳에 남아 있지를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갈라파고스제도로 가게 된 원정대는 그곳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는데 이곳은 문명과 격리 되면서도 서로가 위치적으로 같은 종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 다윈의 연구가 비로소 확립되는 기틀을 가져다 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윈이 200년만에 찾아온 갈라파고스는 그에게는 실망스러웠겠지만 다윈의 진화론의 근거가 되는 그곳의 갈라파고스거북이와 이구아나 그리고 다윈의 핀치새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곳도 이제 진화의 증거로 남기에는 사람의 손이 너무 많이 타는 곳이 되어버려 이제는 어디든 인간의 영향력이 없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순수했던 그곳도 이제는 인간이 데리고 온 고양이와 개들로 생태가 교란되거나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인 루카 노벨리는 이러한 다윈의 비글호 여정을 보여주면서 그의 이론이 증명되는 것 이전에 인간에 의한 자연의 파괴를 더 걱정하게 된 것을 토로하고 있다.

결국 인간이던 다른 생물 종이던 우리가 예전의 공룡이 이 지구의 자연의 변화에 거스르지 못했듯이 우리인간도 어쩌면 지금처럼 끊임없이 파괴하는 자연 속에서 우리가 그 속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자연의 거대한 힘에 사라져가는 운명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自然)이란 말은 스스로 그렇게 있다는뜻인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있게 하는지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진화론이다, 창조론이 맞다를 가지고 싸우고, 시조새를 교과서에서 빼고 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자연은 이렇게 수많은 시간을 거쳐 사라져 버리고 멸종한 종처럼 여러 종을 선택하고 다시 그것에 적응한 새로운 종에게 혜택을 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아이가 이 2권을 보며 느낀 것은 다양한 생물 종과 함께 인간이었나 보다.

갈라파고스의 핀치새와 같이, 같고 또 다른 종이 인간이 아니었나 하는 질문이다.

우리도 어쩌면 수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각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애쓴 종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결국 살아남는 과정 중에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수많은 정보를 획득하여 이 지구가 주는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는 이제는 그것이 지나쳐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고 사는 지구 마저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다윈이 보여주는 진화의 가장 안 좋은 케이스가 우리 인간인지 우려하게 된다.

이제 비글호의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나오는 여정을 마쳐보지만 다윈이 보여주었던 자연의 변화와 이 지구라는 삶의 터전 안에서 각자의 삶의 적응해 나가는 것은 다른 생물이나 인간이나 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인간이 조금 더 많은 종을 퍼뜨리고, 더 이 자연의 모든 것을 이용한다 해서 자연을 정복 했다고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인간이란 종이 만들어 놓은 과도한 부산물에 결국은 거대한 자연의 섭리가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오면 공룡들이 이 자연 속에서 멸종의 선택을 받았듯이 인간도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설 지도 모를 것이다. 그때 가서 신의 심판이라 말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신의 섭리를 믿는다면 그 섭리를 살피는 현명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윈과 같이한 비글호의 두 번째 여행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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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부식 열도 1 금융 부식 열도 시리즈 1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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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식 열도]

거품경제라는 자산 디플레이션(asset deflation)의 잃어버린 10년을 지내는 동안 일본은 경제, 외교, 정치 등에서 세계적인 위상이 전과 같지 못한 길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는 이코노믹 애니멀이라 불리 울 정도로 경제적인 동물이라 취급을 받았던 일본이고, 일본의 경제적인 세계제패를 경계 할 정도로 또 다른 경제제국주의라 말 할 정도였으나 자산의 거품이 빠져나간 10년간의 일본은 세계의 위상은 물론이고 자국의 경제의 기반이 되는 서민경제부터 흔들리며 전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금융권은 손실만회를 위해 끊임없는 자산회수에 골몰하게 되고 제로금리상태의 금리는 금융권의 자산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악순환에 고리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서 자금회전이 안 되는 기업들의 살아남기 경쟁은 전후 일본세대를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그와 부합하여 금융권의 독버섯처럼 자란 금융권 모럴해저드(Moral Hazard)가 극심해졌다.

<금융부식열도>는 그런 거품 이후 일본이 겪게 되는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그런 도덕적 해이를 이용하여 불법대출로 얽혀버린 권력과 탐욕의 인간군상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1권은 교리쓰은행의 다케나카가 원치 않은 본사 조사역 발령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결국 그의 인사조치는 상층부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희생양을 찾는 술수에 지나지 않았는데, 2권에서는 술수에 말려 든 다케나카의 고군분투를 잘 그리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곳에나 그런 줄대기로 학연, 지연, 심지어는 친족의 사돈의 팔촌을 찾아서 어떻게든지 연을 만들어 상승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 한다.

그리고 거의 그런 상층부의 커넥션이 만들어져서 자신만의 권력을 구축하기에 골몰한다. <금융부식 열도> 그런 거품시기의 일본 경제를 거치는 동안 교리쓰은행의 조직이 얼마나 부패 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원래 단 음식에 파리가 꼬여 들듯이 약점이 있는 그들에게 총회꾼이나 조폭들이 합세해서 눈먼 돈처럼 먼저 먹으려는 탐욕이 난무한다.

다케나카도 그 와중에 조직의 룰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불법에 연루되지만 정공법으로 이 과정을 헤쳐 나가려 한다.

책이 보여주는 수식은 인간이 보여주는 탐욕과 욕망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려 하고 있다. 주인공인 다케나카도 그런 조직과 그런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래도 자신은 지켜낸다. 하지만 그 조차 이런 욕망과 탐욕의 그늘을 지우지 못하니 역시 인간이란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2008년도 미국금융을 흔들었던 서브프라임 사태도 이런 거품이 걷히면서 서민을 얼마나 많이 나락으로 떨어트리는지 보여줬던 단적인 예이다. 이런 금융권이 자산 인플레시절에 마구잡이로 부풀여가며 서민들의 생각을 호도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그들을 잡아먹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니 참 아이러니 하다. 이런 것은 결코 개인의 잘못으로만 생각 할 수 없는 것인데 건전한 금융을 이끌어야 할 은행이 결국은 서민의 피를 빤 셈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안으로는 온갖 부패의 냄새까지 풍기니 온전한 사회가 될 리 만무하다. <금융부식열도>는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만한 저서이다. 우리도 우리경제에 이런 거품현상이 없다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카드사용과 부동산 대출 그리고 자산디플레이 현상이 일어나며 벌어지고 있는 대출금 상환 압박 등.

아직까지는 금리가 조정이 되고 물가상승의 압박을 조율한다고 하지만 이미 자산디플레이션 현상은 조금씩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나 미국의 급격한 서브프라임 사태를 우리도 맞지 않으려면 우리도 이미 IMF시기를 겪으며 알게 된 내부적인 모럴해저드의 타파와 지금이라도 자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기나 방만한 경영을 감시하는 경제적인 눈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개개인의 냉정한 눈이 더 필요 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은 경제서 아니지만 책이 주는 스릴 있는 재미와 함께 인간의 욕망이 주는 파탄을 잘 보여주고 있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과연 이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나라면 양심과 이익 앞에 어디에 손을 벌리게 될지 미리 던지는 물음이 되는 책이다.  <금융부식열도>안에 너와 내가 담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Ps. 이런 제로금리상태의 일본자금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다는 것이 산와 **’같은 대부업이니, 정말 혀를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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