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윈의 두 번째 비글호 여행 1 - 파타고니아에서 티에라델푸에고까지 ㅣ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26
루카 노벨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비룡소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다윈의 두 번째 비글호의 여행 1권] 파타고니아에서 티에라델푸에고 까지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로 지금까지 다윈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의 학설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실질적인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전에 종교나 정치적인 영향으로 그의 연구가 본질적으로 흐려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내세운 진화론의 목적은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다양하게 자연의 선택에 순응해 살아 왔느냐 였는데, 그 당시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 했다는 진화적인 견해가 마치 종교적인 이단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그 본질적인 자연과학적인 탐구가 희석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종교적인 믿음에 의거한 창조론을 두고 현재 사실인 진화론의 옳고 그름은 따지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느 누구도 증명 할 수 없는 관념적인 믿음의 영역의 창조론을 진화론과 대비시키는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무엇에서 무엇으로 변해 같다는 것이 인간과 신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자연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자연의 태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게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지금도 우리는 그런 섭리에 의해 창조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인간이 이성의 영역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을 신의 영역으로 여기고 그것이 지역적으로 샤머니즘이든 아니면 우리가 익히 아는 종교적인 영역이든 아니면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신화의 영역이든 말해오고 기록하여왔던 것 뿐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완전히 증명 할 수 없는 학문이라 여기기보다는, 소모적인 종교적인 논쟁보다 더 현명한 일은 역시 우리가 그렇게 논쟁을 하던 아니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자연의 섭리를 잘 관찰 하는 것이 역시 한정된 삶을 사는 인간의 몫이라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원의 두번째 비글호의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흥미롭게 진행이 되고 있는데, 다윈을 오늘에 되 살려 그와 함께 비글호가 탐험했던 그곳을 그대로 따라가보며, 다윈이 보는 관점에서 지금은 얼마나 변화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여행기를 보여준다.
1권은 파타고니아를 시작으로 사라진 고대 생물의 화석과 현재 종들의 변화된 모습을 따라가보며 우리가 생각하면 긴 시간일지 모르지만 생물의 세대로서는 짧을 수 있는 이 약 200여년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며 비교하여 이야기를 하여준다.
현재의 비글호의 다윈 원정대의 질문과 되살아온 다윈의 관점이 적절히 비교가 되어 그간 인간들이 이 자연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와중에 버티고 살아온 몇몇의 종들이 얼마나 생존하기 위해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티에라델푸에고의 빙하를 지나 그 당시 인디오들의 삶의 유럽인들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과정도 흥미로웠는데 이것도 어쩌면 환경의 변화에 우리가 얻은 정보로 인해 바뀌어가는 인간모습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동물들과 땅을 빼앗긴 인디오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자연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한 한 투쟁이라 생각이 들어 1권을 마치며 씁쓸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같이 읽었던 우리아이도 그런 멸종동물과 인디오들에게 묘한 서글픔이 느껴졌다고 했는데, 아직 자세히는 그 느낌이 무언지 뚜렷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자연을 거스르고 사는 인간들의 모습과 함께 그래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의 선택을 어렴풋이 느낀 것 같아 훗날 더 알 수 있기를 바래보며 2권의 여행으로 넘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