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너머 옆방 입주자가 메마른 소리로 박수를 쳤다. 나와 비슷한 근 질환으로 자리보전 중인 옆방 여성은 침대위 이동식 변기에 볼일을 보면 주방 근처에서 대기 중인 간병인에게 손뼉으로 신호를 보내 뒤처리를 부탁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리며 말할 것이다. "나라면 절대 못 견뎌. 나라면 죽음을 선택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옆방의 그녀처럼 살아가는것, 그것에야말로 인간의 존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된 열반이 거기에 있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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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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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독자와의 만남을 한다는 것을 듣고 말 그대로 아묻따 결제를 해버렸다. 날짜나 장소, 시간도 생각 않고 우선 구매를 해버려서 나중에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하고 생각을 하고 나서야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쉬는 날..!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장들이었는지 당장 기억은 안 나지만 내 마음을 움직였던 문장들에 나중에 책을 펼쳐도 같은 감정이 들 수 있도록 밑줄을 그어놓았다. 책에 낙서를 포함한 어떤 흔적도 일절 남기는 걸 안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시적으로 내게 그것을 허용했던 시기에 읽었던 책이 <어린이라는 세계>여서 여러 군데 밑줄이 그어져 있다.

이 저자와의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전작은 다 읽고 어머니댁에 있는 책장에 꽂아두었는데(부동산 이슈) 이번 만남에서 사인을 받기 위해 일부러 어머니댁에 들러 책을 가지고 왔다. 거리가 아주 멀진 않아도 왕복 두 시간은 걸리기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내가 즐겁게 읽었던 책에 사인을 받고 싶었다.

<어떤 어른>을 받아서 저자와의 만남 전까지 다 읽기 위해 열심히 읽었으나 2/3 밖에 읽지 못 했는데 막상 가니까 당연히 다 못 읽었을 거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죄책감 없이 행사에 임했고 듣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작가님은 MBTI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이시다. 작가님의 블로그를 통해 읽은 적이 있어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맞다. 그랬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님의 MBTI그 ENFP 라고 하셨을 때 적잖이 놀랐다. 나는 왜 작가님이 당연히 내향형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이틀 정도 지난 지금 생각한 건 아무래도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게 말이 아니라 글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작가님을 보면서 참 귀여운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말이나 표정, 행동 등을 보면서 아이 같은 귀여움이 내재화된 분이라는 생각을 했고 내가 예전에 알던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직업이 유치원 교사였고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천직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와 대화를 할 때 역시 작가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에 이번 작가님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호흡하는 사람들이 주는 느낌‘이 내 머릿속에 편견처럼 심어졌다.

행사에는 50명 정도 되는 분들이 온 것 같았다. 입장할 때 이름에 체크하고 제비뽑기 하듯 어떤 종이를 뽑아가라고 했다. 내가 뽑은 단어는 참기름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뽑은 게 고유명사이고 음식이었기에 처음엔 뽑아서 경품 같은 걸로 주려나 기대했다. 물론 그런 건 아니었고 독자들이 뽑은 것들로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레트로’, ‘딱 세 가지’ 등 여러가지가 있었고 작가님이 내가 가진 단어인 참기름을 뽑으셨을 때 꽤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 단어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뽑히기 전부터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참기름은 음식이니까 나는 당연히 먹는 이야기를 먼저 생각했다. 나는 후각이 둔한 편이지만 참기름의 존재감은 내 둔한 후각으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고 어렸을 때는 밥에다가 간장, 참기름만 넣고 슥슥 비벼서 먹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 얘기를 해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참기름이 뽑혔을 때 직가님이 ‘참기름 같은 존재’에 대한 얘기를 하셔서 멘붕이 왔다. 어떤 방송에서 음식에 참기름을 넣을 땐 ‘여기에 참기름이 들어갔구나!’ 하는 정도로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냥 볼 땐 모르지만 굳이 냄새를 맡아볼 때 드러나는 존재감 정도의 이야기를 꺼내야 했고 내가 준비한 이야기는 당연히 맞지 않았고 다른 이야기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들지 못했고 작가님은 선생님답게(?) 숙제로 내주셨다.

만남이 끝난 후 준비해간 두 권의 책에 사인을 받고 돌아오면서, 그리고 그 후에도 참기름에 대해 생각을 했다. 다시 내게 발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기름은 ’선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눈에 거의 띄지 않아 존재를 잘 모르지만 조용하게 어떤 것들에 선함을 보여주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것들에 기꺼이 물질과 시간, 그리고 온기를 내어주는 이들 말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이 세계의 참기름이 아닐는지.

즐거웠던 작가와의 만남을 마치고 같이 사진이라도 찍을 걸 그랬나 싶던 생각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다음에 나올 책에 대한 기대를 해보았다. 첫 에세이가 40년 정도, 두 번째는 4년이 걸렸으니 다음 책은 4개월..은 좀 그렇고 2년 정도 뒤에 나올 걸 기대해본다.



이 글은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했어요.

-북플용 추가 글-
1. 발표하면 선물로 노트를 주셨다. 당연히 나는 못 받았는데 다이어리용 노트 하나 정도는 받고 싶단 생각은 했다.
2. 참석 인원 중 내가 유일한 남성으로 보였는데 강연 중 작가님이 다녀오신 타 강연에서 작가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남성 얘기를 하면서 나를 슬쩍 보시면서 ‘아니 선생님 말고요’ 하셔서 청중분들이 웃으셨다. 딱히 곤란하거나 그러진 않았고 나도 재미있었는데 사인 받을 때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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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옛날에는 하나도 없던 그런 것’이 두 개, 세 개가 되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싶다. 우리를 키우고 가르친 세대가 그 없던 ‘하나‘를 만든 덕분에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세대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어린이에게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다는 데 자부심도 갖고 싶다. 촌스러운 말이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좋아진다고 믿는다. - P121

나는 평소에 어린이를 ‘미래의 희망’ ‘꿈나무’로 부르는 데 반대한다. 어린이의 오늘을 지우고 미래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 글에서만큼은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다. 어린이는 우리가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미래의 사람이다. 오늘의 어린이는 우리가 어릴 때 막연히 떠올렸던 그 미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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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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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보는 헌법 - 100문장으로 이해하는 헌법
심독토 북클럽 지음 / 백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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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jonhooyan/223636906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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