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개정판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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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 논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가치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서 생기는 논쟁인데 "최소한 이정도는 있어야" 살 수 있겠다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는 이것이 "라면"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캐비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1. 기업의 영속성
기업의 최고 가치를 이익 추구라고 하지만 사실 그 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영속성이라고 합니다. 즉,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이죠 (놀랍죠? 법인체도 생명체하고 비슷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 조직은 영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기업과는 조직 구조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기업은 정부가 먹여 살려주지 않는 한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하는데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조직 전략이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기업 내부의 경쟁이 극심해서는 절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죠. 내부 경쟁이 너무 치열하면 정보 공유와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쟁 중에, 옆 칸막이 부서 아군에게로 수류탄이 날아들고 M60이 난사되는 극단적인 경쟁을 바라는 CEO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조직의 협업과 생존을 위해서 내부 경쟁을 제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부 경쟁과 협업이 잘 관리되는 조직의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 것이죠 (말로는 쉬워보입니다.)
 
 
2. 캐비어 논쟁
각 노동자에게 기업이 투여하는 비용과 전체 인원을 곱하면 대략 인건비가 나올텐데(물론 이보다 훨씬 복잡하겠지만),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가 도래하면 이 인건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여러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선택을 2가지 정도로 요약한다면 1번 "잘하는 놈에게 몰아주기"와 2번 "죽더라도 다 같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1번 전략은 공정이나 운용의 혁신보다는 조직원 개인의 판단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금융업이나 예술영역에서 유용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판단을 혼자서 1000억 몰빵하나 여럿이서 결정하나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으니 1번 전략이 타당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노동자 관점에서는 2번 전략이 더 유용할 수 있는데 총 임금을 깎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죠 (볼보가 최초로 시도했고 성공을 거두어서 볼보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총 임금을 논할 때 전제 조건은 관연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느냐인데 박정희 때는 "쌀"이었고 전두환 때는 "과외"와 "부동산"이 그 시대의 캐비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강압적인 정권이라도 절대 다수의 기대치를 저버리고 국가를 운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했었고 전두환 때는 아예 "과외금지" 조치로 다 같이 캐비어가 필요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죠. 하지만 IMF 이후로 이 캐비어는 "조기 유학, 강남 30평"으로 높아졌는데 정부에서 캐비어를 조절할 수 없으니 기업은 알아서 기존 인력을 줄이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메우는 방식을 비용을 줄여 왔습니다 (숙련도를 희생하고 저 비용으로 버텨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겠죠?)
 
3. 조직관리
조직을 영속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인재가 유입되어 창조, 협업적 진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보았을 때는 암울하는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던 헌신적인 마이너들의 희생이 조직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뛰어난 기업들은 이 마이너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둡니다. 학벌사회라 불리는 한국에서 삼성같은 재벌이 학력, 여성차별 금지를 말하는 것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공고, 상고 출신들이 POSCO, 현대자동차, 금융업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상층부로 진출할 수 있었던 70, 80년대와 달리 지금은 TOEIC으로 대표되는 영어가 취업의 중요한 지표로 작동하면서 이런 마이너들의 진출로가 사실상 봉쇄된 상태입니다. 작금의 어학능력이 개인의 능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 능력에 비례하는 현실에다가 마이너들이 가진 자신만의 특기를 이해할 수 있는 지표도 없기 때문에 조직의 신규 구성원은 경제적 편중성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경쟁에 너무 익숙해져 옆 칸막이 동료가 다른 동료에게 Assassin 당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상층부로 진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태에서 조직의 발전을 기대하면 안 되겠죠?
(게다가, 단지 1년 늦게 입사했다는 이유로 사회 생존을 위한 캐비어는 그대로인데 너흰 월급이 니네 1년 선배보다 20~30%로 적다. 꼬으면 말고 식으로 입사한 사원들이 과연 열패감없이 일을 할까요? 처음에야 취업전쟁의 승리자로 기뻐할 수 있겠지만 똑같이 일하고 다른 월급이 평생 고착화된다는 것을 알면 퍽이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조직내에서 이런 규모의 갈등을 안고 협업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언제가 정상화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전체 하향평준화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파열음도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에서 경제위기라고 여러 대책을 내 놓고 있지만 "캐비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고 너희 눈높이가 문제야. 중소기업 알아봐만 강요한다면 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거창한 미래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전쟁으로치면, 최전방 부대(대기업)는 후방 보급부대(중소기업)에다가 총질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고도 지금껏 버텨온 것이 대단한 것이죠. 무기를 가진 대부대가 힘없는 후방부대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하지만 정부는 공정한 게임을 벌일 생각도 의지도 없습니다. 이번 고려대 입시 문제에서 보듯이 고교등급제가 명확해 보이는데도 대교협에서는 아니다로 결론내렸습니다. 흔히 말하는 4대 사정기관(감사원, 국정원, 검찰, 국세청) 전부가 썩은 물 속에 함께 뛰어들어가 있는 판국에 나머지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구보고 너희는 똑바로 해라는 말이 먹히겠습니까? 이런 부조리가 사정기관에 의해서도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믿을 것은 나뿐이니 "자력갱생"모드로 버티던지 그마저 안 되면 용산사태처럼 짱돌과 화염병으로 맞서게 되겠죠?
험난한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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