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 여섯 개의 도로가 말하는 길의 사회학
테드 코노버 지음, 박혜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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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우리는 도로 끝에 도착했다. 군은 그 끝에 커다란 흙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검문소와는 반대로 그렇게 전략적으로 이루어진 도로 폐쇄는 웨스트뱅크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군은 그런 식으로 정착민이 선호하는 도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이곳과 같은 팔레스타인 구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모든 도시와 마을들은 그곳을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사람들에게 감옥이자 폐쇄된 군사 지역이 되었다. 집으로,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에도, 모든 도시와 마을의 경계에는 항상 누군가가 기다린다. 그들은 모욕을 주고 폭행하고 살인을 한다. (311,317쪽)
테드 코노버의 <로드: 여섯 개의 도로가 말하는 길의 사회학>은 ‘길’이라는 테마를 통해 사회학적 관점으로 도로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각각의 길들이 내재하고 있는 또한 상징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냉철하고 깊이 있게 고찰한다. 이 책은 총 여섯 가지의 길과 여섯 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1장 욕망의 길]은 고급 마호가니 목재가 페루에서 벌채되어 미국의 고급 저택까지 어떤 경로와 과정을 통해 유입되는지 또 환경과 개발, 1세계와 3세계라는 상이한 입장과 견해가 각각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다루고 있다. [2장 변화의 길]은 잔스카르의 길을 통해 접촉과 변화, 자유를 향한 그들의 갈망과 희망을 다루고 있으며 [3장 위험한 길]은 아프리카 케냐의 길을 통해 부패하고 타락한 아프리카의 정치세력과 화물차 운전자들 그리고 매춘부들의 얽혀 있는 관계와 이로 인한 질병의 발생에 관해 다루고 있다. [4장 증오의 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과 갈등, 도로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폭압과 팔레스타인들의 치욕, 생과 사를 오가는 극한 상황을 다루고 있고 [5장 번영의 길]은 자본주의에 심취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번영을 향한 욕망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그에 비해 낮은 수준의 교통안전 의식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등을 다루고 있다. [6장 혼돈의 길]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와 그곳의 길을 통해 부패와 빈곤, 극심한 빈부의 격차와 범죄, 무질서와 혼돈에 관해 다루고 있다. 

 

양날의 검’은 이러한 도로의 군사적 중요성을 묘사할 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한편으로 도로는 국가적 자긍심과 경제적 활력의 표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침략자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부와 권력의 중심지로의 접근을 허락한다. (273쪽)
테드 코노버의 <로드>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큰 매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도로와 그 도로의 속성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날카롭고 밀도 있게 통찰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러한 주제를 딱딱한 통계학적, 인문학적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저자 본인이 그 길들을 직접 취재하고 여행하며 겪었던 경험들과 고민들을 세밀하고 흥미롭게 각각의 주제와 카테고리 안에 적절히 안배, 배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는 현지인들과 동행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에 걸리고, 모순된 사회와 마주하고, 갈등과 대립의 순간을 목격하지만 인간을 향한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또한 저자는 각 테마마다 등장하는 상이한 이해관계들을 다룰 때에 형평성을 잃지 않고자 무던히 애쓴다. 도로는 양날의 검처럼 인간에게 이로울 수도 있고 혹은 해로울 수도 있다. 길道은 인간에게 선善이 될 수도 혹은 악惡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저자 테드 코노버의 인간을 향한 희망이 결코 헛된 꿈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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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화가 - 몽우 조셉킴 이야기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동아일보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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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를 그리면 내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날개를 펴면서 날 준비를 하는 독수리를 보면서 나는 아픔이나 압박감, 우울함을 잊게 되었다. 독수리는 내가 되고 나는 독수리가 되었다. 이 세상이 내 그림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내 그림을 좋아해 줄 한두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119쪽) 

화가 몽우 조셉킴(김영진)은 11살 유년시절부터 백혈병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그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죽고자 했다. 그림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 사진 촬영과 전각 등을 익히며 주어진 삶을 충실하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가난과 극심한 통증 가운데서 탄생한 그의 미술 작품들은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아니 철저히 관심 밖이었다.  

병마와 싸우며 그림을 그리고, 전각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다. 그의 작품 500점이 뉴욕에서 이틀 만에 매진되었다는 것. 미술에 관련된 그 어떤 정규교육도 전무했던 그였기에 또한 죽음의 그림자와 늘 동행하며 자신의 내면 저 깊은 곳까지 홀로 침전하는 삶이었기에 조셉킴의 그림은 온전한 자기 자신 그 자체였다. 투박하지만 부드럽고, 소박하지만 강렬하고, 거칠지만 섬세한 감성으로 충만하고,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지만 그 안에 희망과 긍정이 담겨 있다.  

책 <바보 화가>는 조셉킴의 그림일기이자 자서전이며 화보집이다. (그의 문장력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그의 글은 유려함도 수려함도 세련미도 없다. 하지만 일체의 가식이 배제된 그 투박하고 거친 문장 안에는 진솔함과 따스함이 묻어난다. 마치 그의 그림처럼. 그에겐 학벌도 인맥도 금전적 여유도 그리고 건강도 없었다. 그러나 조셉킴에겐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 그리고 부단한 예술의지로 충만하다. 언제 생이 다할지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늘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그림을 그린다는 그가 부디 건강하기를, 아프지 않기를. 

그림은 그리움을 담는 것이다. 그림은 삶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은 그림자와 같이 삶의 다른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그림은 사람의 마음속을 움직이는 힘을 그려야 한다. 현실의 단순 재현이 아닌 상처 속에서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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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시공아트 18
수지 개블릭 지음, 천수원 옮김 / 시공아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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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철학하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다.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며 이성에 의해 지배되거나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그림인 ‘겨울비’는 현대 사회의 비애인 익명성과 획일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마그리트가 한 겨울 내리는 겨울비(눈이라고 하기도 하고)를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얼핏 보면 모두가 중절모를 쓰고 검은 코트를 입은 똑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 정면을 보고 있는 사람, 옆으로 서 있는 사람,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사람 등등 모두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마치 동일 인물들인 줄 착각하게 된다. 인간 각자의 개성과 가치, 독특성과 유일성이 사라지고 무시당하는 익명성과 획일성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를 냉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고 군중 속에서 혼자가 되는 길을 택했으며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집 안에 있는 주방을 개조해 작업실로 썼고 안방에서 몇 발 떨어지지도 않은 그 작업실에 갈 때도 회사원이 아침에 출근하듯 정장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단장을 쥐고는 주방으로 그림을 그리러 갔다.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하고 우리의 익숙한 감각을 뒤집고 빼앗는다. 기발한 발상과 관습적인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화폭의 연출 등이 마그리트 그림 세계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화가라는 명칭 대신 ‘철학자’ 내지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예술가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이며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철학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르네 마그리트는 “평생 처음 보는 것이라서 눈앞에 없더라도 자꾸만 생각날 수밖에 없는 그림, 그것이 내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지는 말라,”고 이야기 했다.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이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평생 처음 보는 초현실적인 것들이었지만 한 번 본 이상 뇌리 속에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서 자꾸만 생각날 수밖에 그림들이며 내 기억 속에 비집고 들어와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서 생각을 하지 말라는 당부는 도저히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그림들은 생각을 끌어내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 같은 것이 있기에 그러하며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생각의 파편에 묻히게 된다. 로뎅이 그랬던가. 산다는 것은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라고. 예술가들의 예술작품들을 통해서 내 삶은 때론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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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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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분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고 놀이터고 종교였을 테니까. 바다를 바라보는 이분의 심정이 내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오르는 심정과 닮지 않았을까. (제주 해녀 고미자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46쪽) 경향신문을 통해 연재된 <김제동의 똑똑똑>을 책으로 묶은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방송인 김제동이 시인, 소설가를 비롯 해녀, 산악인, 과학자, 배우, 영화감독, 정치인, 방송인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엮은 책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를 경계 짓지 아니하고 격식보다는 소통을, 대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담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점이었으리라. 소소하고 정감어린 대화 가운데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 허심탄회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37년 동안 ‘물질’을 하며 매일같이 바다로 뛰어드는 제주 해녀가 바다를 바라보는 심정이 마이크 하나를 손에 쥐고 무대 위로 오르는 자신의 심정과 다름없음을 고백하는 방송인 김제동은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기여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질주하는 과학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질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요. 지금도 과학은 권력과 돈에 종속돼 있는데 이건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과학과 다르잖아요. 과학을 국가성장 동력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리적 사고이자 방법론으로 보고 싶어요. (과학자 정재승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77-78쪽) 과학은 분명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원시시대와 고대,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러 과학은 폭발적으로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인간은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안락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과학이 나은 폐해 아니 과학과 맞물린 인간의 욕망이 나은 폐해의 결과는 참혹했다. 과학은 점점 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첨단무기를 생산해 내고, 기계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첨단기술 아래 인간은 부품으로, 도구로 전락했으며 인간이 과학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속되고 노예화되어감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이 권력의 존속과 존립, 경제성장을 위해 존재하고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정재승의 바람처럼 과학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고,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원동력으로, 합리적 사고로, 방법론으로 작용해야 한다. ‘과학이 미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김제동의 질문에 과학의 존재가치와 존재근거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나 같은 무기수는 시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석좌교수 신영복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289쪽)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수감되었다. 그의 저서들을 읽으며 늘 궁금했던 것은 다름 아닌 대체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신영복 교수는 이 물음에 자신을 견디게 해준 것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다고 술회한다. 김제동과 신 교수의 대화는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더불어숲> 등을 읽을 때의 느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신영복 교수의 글과 대화는 목가적이고 관조적인 눈빛을 하고 있지만 그 눈빛 속에는 켜켜이 쌓인 고뇌의 흔적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치열함과 집념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대화 속에서 그는 얼핏 속세를 떠난 구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세상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맹렬히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제동이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을 꺼내자 신영복 교수는 그들의 논리가 아닌 자기 자신이 갖는 인간적 이유, 존재의 의미 즉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그의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귓가를 쩌렁쩌렁 울린다.

 

김제동은 책의 말머리에서 혼자 듣기 아까운 이야기들이었고 그래서 함께 듣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대화를 함께한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다가왔는지 묻는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론 글도 읽기 전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 하고 전혀 생각지 못한 바를 깨닫기도 했다. 이 유쾌하고 진솔한 그리고 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어 참으로 감사하다.
 

인생의 화두가 사랑이듯, 같은 의미로 인생의 화두가 죽음인 거죠. 죽음은 바다의 파도 같아요. 파도가 밀려와서 절벽에 부딪히면 파도가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바다는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인간은)영속성의 한 선 속에서 점을 하나씩 찍고 지나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보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지만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위대한 존재인 것 같아요. (시인 정호승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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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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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지만 전문적이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단지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없는데.”하고 내뱉지 않아도 될 정도의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좋아하는 화가는? 램브란트, 클림트, 에곤 쉴레, 프리다 칼로. 질문을 바꿔보자. 좋아하지 않는 화가는? 피카소, 고갱, 마티스, 몬드리안. 이제 질문의 강도를 높여보자. 쉴레의 그림은 왜 좋아하는가? 몬드리안의 그림은 왜 좋아하지 않는가? 글쎄...왜일까.



저자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림에 대한 전문적이고 개론적인 지식을 전달하려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굵직한 알곡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고 본인은 그들이 흘리고 간 좁쌀들을 추슬러 담았을 뿐이며, 좁쌀 같은 미술 이야기들을 한데 묶은 것이 이 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미술과 가까워지고 정을 쌓고 기왕이면 회화든 조각이든 미술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이러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저자는 원론적인 지식들은 에피타이저처럼, 작품과 화가 그리고 미술사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메인 요리로 등장시킨다.



너무나 유명한 화가 반 고흐. 자신의 귀를 잘라가며 그린 그의 자화상이나, 숨막힐 듯 타오르는 샛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북이라는 조선시대의 화가를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조선인이라면 조선의 산수화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산수화를 따라 그리는 것에 대해 비판했고, 산수화에다 죄다 산(山)만 그려 넣고는 “종이 바깥은 모두 물이다.”라고 일갈했다는 조선의 화가 최북. 가난한 이들에게는 동전 몇 닢에도 그림을 그려주던 그였지만 어떤 세도가가 그의 그림을 트집 잡자 제 손으로 한 쪽을 눈을 찔러 실명케 했다는 광인이다. 그의 그림은 거침없이 솔직하고 힘이 넘치며 어떤 것에도 구속되거나 속박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북의 그림은 쓸쓸하다. 열흘을 굶다가 그림 한 폭을 팔아 생긴 돈으로 술을 사 마시고는 겨울 어느 밤, 홑적삼을 입고 눈길에서 죽었다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인 ‘풍설야귀인’이 그토록 시렸나보다. 고흐도 최북도 당시의 화풍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인이었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몸부림치다 죽었지만 고흐는 지금도 살아 있고 최북은 잊혀졌다.



잊혀진 조선 화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부의 붓잡이 잭슨 폴록, “나는 천재다!”를 외쳤던 달리의 이야기, 로뎅이 탐낸 조각가 브란쿠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예술가 백남준 등등 많은 예술가들과 작품들 속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야기보따리에서 끄집어내듯 하나 둘 꺼내 보인다. 더불어 동서양의 회화나 조각에 관한 이야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색 찾기에 인생을 바친 천연염색 장인 한광석의 이야기, 쇠락하는 전통 기와를 굽는 인간문화재 한형준의 이야기 등 우리 것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좋아하는 그림이란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쉽게 말할 수 있는 대답은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이건 내 취향이고 저건 내 취향이 아닌데.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혹시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라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 아니라 잘 모르는 그림이었던 것은 아닐까. 예술가들의 삶, 그들의 열정과 철학,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된다면 좋아하지 않는 예술보다는 좋아하게 될 예술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저자의 바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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