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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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분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고 놀이터고 종교였을 테니까. 바다를 바라보는 이분의 심정이 내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오르는 심정과 닮지 않았을까. (제주 해녀 고미자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46쪽) 경향신문을 통해 연재된 <김제동의 똑똑똑>을 책으로 묶은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방송인 김제동이 시인, 소설가를 비롯 해녀, 산악인, 과학자, 배우, 영화감독, 정치인, 방송인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나눈 진솔한 대화들을 엮은 책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를 경계 짓지 아니하고 격식보다는 소통을, 대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담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바로 이러한 점이었으리라. 소소하고 정감어린 대화 가운데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통찰, 허심탄회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37년 동안 ‘물질’을 하며 매일같이 바다로 뛰어드는 제주 해녀가 바다를 바라보는 심정이 마이크 하나를 손에 쥐고 무대 위로 오르는 자신의 심정과 다름없음을 고백하는 방송인 김제동은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기술,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해 기여하도록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질주하는 과학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질주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요. 지금도 과학은 권력과 돈에 종속돼 있는데 이건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과학과 다르잖아요. 과학을 국가성장 동력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리적 사고이자 방법론으로 보고 싶어요. (과학자 정재승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77-78쪽) 과학은 분명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원시시대와 고대,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러 과학은 폭발적으로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 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인간은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안락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과학이 나은 폐해 아니 과학과 맞물린 인간의 욕망이 나은 폐해의 결과는 참혹했다. 과학은 점점 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첨단무기를 생산해 내고, 기계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첨단기술 아래 인간은 부품으로, 도구로 전락했으며 인간이 과학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속되고 노예화되어감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이 권력의 존속과 존립, 경제성장을 위해 존재하고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정재승의 바람처럼 과학은 인간적 가치를 높이고,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원동력으로, 합리적 사고로, 방법론으로 작용해야 한다. ‘과학이 미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김제동의 질문에 과학의 존재가치와 존재근거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나 같은 무기수는 시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석좌교수 신영복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289쪽)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수감되었다. 그의 저서들을 읽으며 늘 궁금했던 것은 다름 아닌 대체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신영복 교수는 이 물음에 자신을 견디게 해준 것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다고 술회한다. 김제동과 신 교수의 대화는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더불어숲> 등을 읽을 때의 느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신영복 교수의 글과 대화는 목가적이고 관조적인 눈빛을 하고 있지만 그 눈빛 속에는 켜켜이 쌓인 고뇌의 흔적들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치열함과 집념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대화 속에서 그는 얼핏 속세를 떠난 구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세상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맹렬히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제동이 자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을 꺼내자 신영복 교수는 그들의 논리가 아닌 자기 자신이 갖는 인간적 이유, 존재의 의미 즉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그의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귓가를 쩌렁쩌렁 울린다.

 

김제동은 책의 말머리에서 혼자 듣기 아까운 이야기들이었고 그래서 함께 듣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대화를 함께한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다가왔는지 묻는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론 글도 읽기 전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 하고 전혀 생각지 못한 바를 깨닫기도 했다. 이 유쾌하고 진솔한 그리고 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어 참으로 감사하다.
 

인생의 화두가 사랑이듯, 같은 의미로 인생의 화두가 죽음인 거죠. 죽음은 바다의 파도 같아요. 파도가 밀려와서 절벽에 부딪히면 파도가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바다는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인간은)영속성의 한 선 속에서 점을 하나씩 찍고 지나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보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지만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위대한 존재인 것 같아요. (시인 정호승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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