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 망했으면‘ 시리즈나 ‘문송합니다‘ 같은 농담이 널리 공감을 
받으며 유행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에서는 
문과형 인간은 문과 교육을, 이과형 인간은 이과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자란다. 
그래서 이공계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 중에 교재를 집필하거나 
번역을 할 만큼 글솜씨가 좋은 사람은 많지 않다. 번역된 용어도 일본식 한자어를그대로 직역한 것이거나, 그걸 순화한다고 지나치게 순우리말로 바꾸는 바람에 도리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 P118

박사학위 논문을 한글로 썼다. 도전이었다. 
...
시간이 남는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번역을 시도했는데, 
하마터면 졸업을 한 학기 더 늦출 뻔했다.

아무리 내가 썼던 논문이라고 해도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보다도 우리말에는 없는 용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천문학회에서 만든 『천문학 용어집』에도 없는 단어가 많았다. 각 연구자가 다루는 아주 좁은 특정 분야의 용어들을 모두 망라하려면 『천문학 용어집』은 국어사전 수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천문학 용어집』은 ‘범용‘이다. 
타이탄 대기 분광 연구를 했던 내게 필요한 것은 타이탄 대기 분광 용어집이었다(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한국물리학회의 『물리학 용어집』, 대한화학회의『화학 용어집』까지 수없이 들춰보며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단어는 내가 만들어야 했다. - P119

어떤 수험생이 메모지에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라고 
써서 책상에 붙여놓자 이과생이 와서 속도에는 이미 방향 
개념이 들어 있다며 ‘속력‘으로 바꿔 쓰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남의 일이 아니다. 

아는 교사가 환경 교육 자료를 공들여 만들면서 ‘초록별 지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했다가 
이래서 이과생은 안 된다며 의절당할 뻔했다. 
‘행성‘에 이미 별 성星자가 들어가지 않느냐는 지적에 딱히 반박할말도 없었다. 참고로 천문학에서 별은 행성, 위성, 혜성 같은 
천체를 제외하고 스스로 빛을내는 천체를 말한다. - P120

행성의 문제는 이름에 이미 ‘별‘이 들어 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행성은 크게 ‘지구형 행성‘과 ‘목성형 행성‘으로 나뉜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이 지구형 행성에 속하는데, 암석이 주를 
이루고 대기는 조금 있으므로 ‘암석형 행성‘이라고도 한다. 
덩치가 작고 온도가 높은 영역에 있어서 처음 형성될 때 기체를 더 많이 잡아두지 못한 행성들이다.

‘목성형 행성‘은 덩치가 더 키서 기체도 많이 가지고 있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다. 겉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된 
두터운 기체 덩어리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밀도가 높아져 액체 상태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깊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체를 품고 있는 목성과 토성을 가스 자이언트gas giant 라고 한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아이스 자이언트ice giant‘라고 한다. 
태양으로부터 너무 먼, 추운 곳에 있어서 얼어붙은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 P121

행성을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소행성대를 기준으로 태양 가까이 있는 지구형 행성들은 ‘이너 플래닛inner planet‘, 더 바깥쪽에 있는 목성형 행성들은 ‘아우터 플래닛outer planet‘이라고 한다. 
행성과학에서 대단히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우리말로 바꿔 부르기가 마땅치 않아서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내행성‘과 ‘외행성‘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얼핏 생각하면 앞의 표현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건 지구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다. 지구보다 안쪽에 있는 수성과 금성이 내행성이고, 지구 밖에 있는 것이 외행성이다.
회성은 ‘지구형 행성‘이고 ‘이너 플래닛‘이며 ‘외행성‘이다. 내행성과 외행성에 해당하는 영어 용어는
‘인피리어 플래닛inferior planet‘과 수피리어 플래닛‘superior planet‘이고, 지구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 P122

굳이 나누자면 나는 천문학자 중에서도 관측자에 속한다.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그 자료를 분석한다. 관측자는 이론가나 계산가와 팀을 이루어 일하기도 하고, 공학자와 함께 새로운 관측기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관측자인 나도 천문대에 가본 지는 오래되었다. 요즘은 주로 무인 우주탐사선이 관측한 자료를 분석하는데, 인터넷에 대부분 공개되어 있다. - P124

대학원생 때는 보현산 천문대에 종종 갔다. 수원에서부터 동대구까지 기차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영천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영천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은 뒤 버스를 타고 천문대 아래의 ‘별빛 마을‘까지 가서 동네 산책을 좀 하다보면 천문대 직원이 차를 몰고 데리러왔다. 천문대에서 차를 보내 그날의 관측자를 
굳이 모셔가는 이유는, 천문대로 올라가는 산길이 대단히 가파르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 P125

요즘은 우주탐사선 자료를 쓰고, 직접 관측하더라도 CCTV를 
보며 원격으로 망원경에 명령을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온몸으로 관측하는 일이 드물다. 심지어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히 지고 공기가 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오후 느지막이 올라가서 하늘 플랫을 찍어놓고, 어두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노을을 보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기계처럼
오직 관측에만 집중하는 시간. 
망원경 시야에 타깃이 들어오도록 맞추고, 초점 조절하고, 노출 
주고, 로그 적고…… 그러다 보름달이 가까이 오면, 달빛이 너무 밝아서내 타깃이 안 보인다며 불평도 하고 달이 너무 예뻐서 감탄도 하며, 의자에 푹 파묻혀 초코파이를 우적우적. 그러다 달이 지면 아침이 오기 전 까지 다시 모니터 속으로 빠져든다. - P132

어느 날 『네이처』로부터 인터뷰를 하자는 메일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 그 『네이처』였다. 
보통의 학술지에는 소정의 심사를 통과한 논문들로만 
채워지지만, 『네이처』는 학술지와 잡지를 섞은 듯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앞부분은 과학 잡지답게 취재 기사와 서평, 에세이 등이 실리고 후반부에는 최근에 심사를 통과한 학술 논문들이 실리는 
식인데, 여기에 논문이 실리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연구실 창에 현수막을 걸어도 될 정도다. - P133

남벽과 북벽, 절벽에 해가 잘 들고 덜 들고 하는 장면을 자주 
상상하다보니 에베레스트 조난 사고를 다룬 존 크라카우어의 책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떠올랐다. 
똑같이 가파른 산이라도 해가 잘 들어서 오르기가 비교적 수월한 곳이 있고, 해가 잘 들지 않아 일 년 내내 눈이 쌓여 있는 절벽이 있다고 했다. - P138

언론은, 어쩌면 사람들은, 대단한 과학자를 집중 조명하고 싶어한다. 고난을 극복한 영웅담에 빨리 감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학자를 여럿 키워서 그중 한 사람이라도 대단해지는 
과정을 지지하거나 지켜보는 것은 별로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세계적 과학자가 어디서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날 리 없는데.
- P146

그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어쨌든 나는 나를 향한 부름에 상당히 많이 응했다. 아직 탐사선 발사도 하지 않았는데 세계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한국의 달 탐사 관계자들이 열심히, 잘,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서였다. 
한국형 달 탐사에 사람들이 더욱 관심 갖고 지지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유학을 가지 않은 국내파도,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다 괜찮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좀더 많은 사람이 
천문학을 선택하고 행성과학자의 길로 와주기를,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럴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자명했다. 
어쩌면 내게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열심히 응하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한국형 달 탐사가 처음 시작된 바로 그때처럼.
- P148

두 대의 탐사선 보이저 1, 2호는 1977년 지구를 떠나 멀리 있는 행성들을 향해 떠났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모두 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손짓하고 있었다. 
우선 목성까지만 가면 되었다. 그 다음에는 타잔이 커다란 넝쿨 줄기를 바꿔 잡으며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듯 보이저도 행성들의 ‘중력 그네‘를 타고 다음, 또 그다음 행성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목성의 중력을 받아 휙 돌아서면 토성으로 향하게 
되고, 토성의 중력을 밧줄 삼아 좌회전을 하면천왕성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천왕성의 중력그네를 타고 해왕성까지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구에서부터 준비해가야 하는 연료와 에너지원, 그리고 여행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절약할 수 있는 궤도, 176년에 한 번씩만 
가능하다는 그 최적의 경로를 따라 보이저는 질주했다.

- P150

보이저를 통해 인류는 목성의 ‘고속 연사‘ 사진을 동영상 보듯 
감상했다. 스냅숏에서 보았던 목성의 줄무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세차게 흘러가는 구름이었고, 커다란 눈동자 무늬의 
대적반은 양방향의 기류가 스쳐지나는 경계에서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는 폭풍이었다. 위성 이오의 화산은 부글부글 
끓어올라 우주 공간에 유황을 뿜어대고 있었다. 토성의 고리가 
몇 겹인지 알게 되었고, 고리를 이루는 물질이 흩어지지 않게 
질서를 유지하는 ‘양치기‘ 위성들을 발견했다.

목성과 토성의 위성 여럿을 발견한 뒤 보이지 2호는 천왕성으로, 그리고 해왕성으로 향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천왕성, 해왕성의 
근접 사진은 모두 1980년대에 보이저 2호가 찍어서, 
카세트테이프보다 더 구식의 테이프에 저장했다가 지구로 전송해온 것이다. 

2006년에 명왕성을 탐사하러 간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가까이에서본 다른 행성이라고는 
목성뿐이다. - P151

이름과는 달리 발사가 지연되어 2호보다 한발 늦게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는 토성 근처에서 조금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천왕성, 해왕성의 방문을 포기하는 대신 일부러 토성의 위성 
타이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지만, 타이탄이무척 두터운 대기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그리고 생명체를 
구성하는 데 쓰일 수도 있는 유기물질이 아주 많다는 것을 발견
했다. 
그 관측자료를 지구로 전송하는 임무까지 모두 마친 뒤 1호도 
2호처럼 태양계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춥고 어두워지는 
우주를 향해 더는기약도 없는 고독한 여행길에 올랐다.
- P151

프로게이머 페이커의 할머니께서 손주의 경기 생중계를 즐겨 
보시며 게임 용어를 줄줄 꿰고 계신다는 인터뷰를 보고 흠칫 
놀랐다. 
모두가 그런 판타스틱 할머니를 가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어릴 땐 숙제하다 잘 모르면 부모님께 물어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요즘의 고민거리가 무엇인지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부모님은 각자 나름의 인생에서 대가이시지만, 
내가 가는 길은 그방향이 아니다. 

지구를 떠난 탐사선처럼, 내가 나의 삶을 향해 가열차게 나아갈 수록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든다. 
그렇게 점차 멀어져만 가는 것이다.
- P154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 P156

예전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비밀번호 분실 대비용 질문을 고르고 그에 대한 답을 적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려동물의 이름이나 좋아하는 영화 제목 따위의, 본인이라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치트키를 설정해두라는 귀여운 요구였다. 
골라둔 질문과 답을 모두 맞히면 비밀번호를 새로 정할 수 있게 
해줬다. 
나는 질문 중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책은?"을 고르고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를 적어넣곤 했다. 
문고본의 해진 책등에 테이프를 덧발라가며 그야말로
닳도록 읽은 책이다.
- P157

어린 왕자는 해 지는 광경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 지루한 장마 끝의 노을을 사랑한다. 마치 솜사탕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색깔도 높이도 서로 다른 구름층이 
여러 갈래로 휘몰아치다 갑자기 멈춘 듯한 하늘. 그 역동적인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은 어찌나 붉고 또 어찌나 강렬한 
황금색인지. 
그렇게 황홀한 황혼은 태양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지구에서 태어난 나를 칭찬한다.
- P158

사실 그의 소행성은 아주 작아서, 반대쪽으로 움직여도 밤, 일출, 낮을 빠르게 거친 뒤 금세 다시 일몰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분위기는 좀 다르겠지만,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지평선 위에 살짝 걸려 있는 해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 
더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 P160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 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
하루가 엄청나게 기니까 일몰도 오랫동안 볼 수 있다. 게다가 
수성은 태양 가까이에 있어서, 해가 지구에서보다 두세 배 크게 보인다. 거대한 태양의 아래쪽 끝이 지평선에 닿을 때부터 위쪽 끝마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열여섯 시간. 지구에서는 해 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인 것을 생각해
보면,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
일지 모른다.
- P162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게 마흔세번째인지 마흔네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쓸모가 있다.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다른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큼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 P78

외국 연구자들과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들의 메일이 "Enjoy!"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
어젯밤 새로 관측한 자료를 분석 담당 동료에게 보낸다든지 
할 때, 파일을 첨부하면서 "자, 즐겨!" 하고 적어보내는 것이다. 

내 지도교수께서는 그런 메일을받고 나면 
"이 친구는 머리 아픈 걸 보내주면서 뭘 즐기라고한다니" 
하며 괜스레 핀잔 섞인 한마디를 하시는데, 사실 본인도 이미 즐거움에 미소를 짓고 계신다. 그런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도 일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듯이. 
그리고 그런 분을, 정년퇴임 후에도 여전히 천문대에 
관측 제안서를 쓰고 모델을 만들고 논문도 쓰는, 
과학자로서의 삶을 매일 만끽하며 지내는 분을 
지도교수로 두었다는 사실이 내게도 일의 즐거움 중 하나다.
- P79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피카소 미술관, 
빈의 미술사박물관, 바티칸의 대성당까지, 
많은 예술작품을 감상했건만 내게는 그 모든 것이 
보이는 그대로의 감흥밖에 전해주지 못했다.

물론, 성베드로 성당의 기둥이나 조각상, 
금빛으로 눈부신 클림트의 그림들처럼 
그저 보기만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작품도 많았지만,

로마의 포로 로마노는 
누가 그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그저 폐허에 지나지 않았고, 
원근법이 널리 쓰이기 전의 그림들은
초등학생이 조금 잘 그린 그림일기처럼 보였다. - P82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서양 과학이 싹트고 무르익고 
우거진 그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천문학 커녕 과학에 관련된 
어떠한 장소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체코의 프라하 천문시계를 구경한 것은 단지 그곳이 남들도 
다 가는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이었다.
- P83

신호대기중이던 택시 블랙박스에 UFO 같은 게 찍혔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했다. 무언가 불타오르는 것이 하늘에서 움직이면서 밝게 빛나던데 운석이겠느냐고 물었다. 

땅에 떨어져야 운석이고, 아직 떨어지기 전에 불타고 있는 건
유성이라 부른다고 대답했다. - P88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은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소시오패스라서 밤하늘 혹은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직업을 
떠올린 것일까. 
나도 이 직업을 선택할 때는 천문학자가 사회에 나올 일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잘알지 못했다. 
...
인터뷰 요청을 받는 등대지기의 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천문학자의 경우 ‘사회의 부름에는 대체로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천문학을 비롯한 많은 과학 분야가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에서 
연구비를 받고 있으며, 과학계 종사자임을 밝히면 듣는 사람은 
대개 "오~"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이 직업을 존중해준다.

물심양면 지지를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한다. - P91

과학자들의 의심은 남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습격당한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했던가. 과학자들은 그 말을 아주 잘 실천하고 있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 또다른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1. 유니버스, 코스모스, 스페이스는 모두 우리말로 ‘우주‘ 라고 번역된다. 무엇이 서로 다른가?

우리가 은하니 성단이니 얘기할 때 사용하는 ‘우주‘는 유니버스다.별과 먼지와 행성과 우리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환경이다. 
영화, 소설등 예술작품 속에서 설정된 배경을 시네마틱 유니버스‘ 라고 부르듯이, 유니버스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 그 자체로서의 
우주다.
...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 ...칼 세이건의 대표작인 그 책 이름이《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 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
컴퓨터 자판에도 있는 ‘스페이스‘는, 자판에서와 다름없이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룰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칭한다. - P40

Q2. 한때 ‘00을 ‘안드로메다‘로 보낸다‘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안드로메다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많은 것을 거기로 보내는가?

...
안드로메다가 완전히 이상하고 정반대라서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비슷하니까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은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형제와 같은 존재다. 게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가까워지는 중이다. 

지금의 속도라면 우리은하는 수십억 년 후 안드로메다와 충돌 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은하의 충돌은 돌끼리 부딪히는 것과는 매우 달라서, 태양 근처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 우리 태양계를 다 집어삼키거나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많아지는 것 말고는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 P42

Q4. 다음 중 본인의 생일에 호주에 놀러 가서 볼 수 있는별자리를 모두 고르면?
a. 북두칠성 b. 남십자성 c. 내 생일 별자리

...
답은 b. 남십자성이다. 호주 밤하늘의 남십자성은 우리 밤하늘의 북두칠성에 견줄 만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을 주극성이라고 부르는데, 호주에서는 남십자성이 주극성이라서 생일이든 아니든 매일 밤 볼 수 있다.
남반구에서는 북두칠성을 볼 수 없다. 호주에 여행 갔더니 과연 공해가 없어서 북두칠성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더라는 호들갑응 떨지 말자. - P43

Q6. 블랙홀은 관측할 수 있는가? 방법은?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빛조차도. 그러니 빛을 비추어도 보이지 않을 수밖에. 고대인들도 별을 봤고, 쥐라기의 공룡도 달을 보았을 것이다. 

내가 들었던 ‘기본천문학‘ 강의는 
"천문학이란 미래에도 변함없이 살아남을, 
시간에 무관한 기본 지식" 이라는 멋진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
지당한 말씀이다. 천문학은 그렇다. 
동시에, 천문학은 그렇지 않다.

2019년, 인류는 최초로 블랙홀의 사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빨려들어가면서 휘어지는 빛,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물질 일부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블랙홀의 윤곽을 관측한 것이다. - P45

아, 성실한 공무원들이여.
우리 세대도 선조들 못지않게 훌륭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는《조선왕조실록》을위시하여 수많은 사료가 인터넷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본래의 기록은 한자로 된 것이지만 아주 많은 부분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주제별로 열람할 수도있고 검색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기 딱좋다.
- P50

 『조선왕조실록』을 오로라, 혜성, 초신성, 빙하기 같은, 일견 생뚱맞아 보이는 단어와 함께 논할 수 있음을 아는것은, 우리만의 달콤한 비밀암호 같았다.
...
나의 ‘우주의 이해‘ 친구들이 지금은 내 얼굴도 이름도 잊었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역사서를 읽거나 사극을 볼 때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주기를 바란다. 그중 누군가는 북두칭성이 나오는 <선덕여왕>이나 일식을 소재로 한 <해를품은 달> 같은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그중 누군가는, 멋진 작품을 만들면 꼭 알려달라는 나의 부탁을 잊지 않고 자랑하는 이메일을 보내주기를,
나는 가끔 욕심내어본다.
- P52

같은 해 태어난 국민 중 팔 할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을 배우러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에 갔고,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 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
그 비용과 시간과 어처구니없는 문화와 그 젊음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제물인가.
- P55

‘대졸자‘라는 꼬리표 하나를 위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모되는데, 기업은, 화려한 스펙의 지원자가 몰리는
회사일수록, 큰 비용을 들여 대졸 신입사원을 재교육한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가 아닐 수 있었
으면 좋겠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대학에 다니는 바람에 ‘반값 등록금‘이니 ‘국가장학금이니가 국가적 관심사인 사회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다.
- P56

가장 먼저 알려줘야 할 것은 ‘대학이란 무엇인가‘였다. 
대학은 서양식 학교다. 오늘날 우리가 논하는 학문과 그 체계는 서양식 기틀을 바탕으로 발원했고 견고해졌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서양에서 다듬어진 것이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대학에서 다루는 바는 그렇다. 

동양식의 관찰과 사유, 겸양과 조화의 가치가 열등하거나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서양식 학문이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57

시대에 따라 고평가되는 분야가 바뀌었지만, 그중 무엇이 가장 우월한가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도 이와비슷하다. 서양식 과학을 무조건 맹종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전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게 되었는지 관찰하고 탐구해볼 필요는 있다. 

관찰하고 탐구하는 그 자체가 학문적 태도다. 신기하고 새로운 현상을 배우고 발견하는 일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한다. 

밤하늘의 모든 별이한 방향으로 흐를 때 홀로 역행하는 행성을 발견하고 두려워하거나 신기해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사람이 수 세기에 걸쳐 지식을 쌓아올리는 것, 끊임없이 검증하고 반박하고 새로운 근거를 더하는 것, 나의 생각을 제삼자의 눈으로 조망하는 것, 그것을 대학에서 배워야 한다.

- P58

다음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글쓰기의 형식이었다. 
학문은 정제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것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서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두면, 훗날 누구라도 
그것을 참조해 재현해보고 거기에 새로운 부분을 더해 다시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다른 학자들이 따라 해보았을 때 같은 결과가 재현되도록 
레고 조립 매뉴얼처럼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미 갖추고 있는 명성이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히고 판단 받을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뛰어날지라도 형식만은 판에 박혀 있어야한다.  - P59

이 젊은 청춘에게, 그따위 싸구려 축복조차 해주는 선생 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는 게 화가 났다. 

넌 잘하고 있다고, 너만의 특질과 큰 가능성이 있다고, 네가 발을 떼기만 하면 앞뒤가 아니라 사방, 아니 만방으로 길은 열릴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은, 그런 이야기를 차고 넘치게 들어도 되는 나이다. 

그런 청춘들이 ‘대졸자‘ 꼬리표 하나 달기 위해서 
돈과 젊음을 들여 스스로 대학 안에 갇히는 기간, 
사회의 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기꺼이 가지치고 
분재로 다듬어가는 기간,
‘멀쩡한 대학 나와서 왜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도 못하느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향해 전진하는 그 기간이 나는 너무나 아깝다.

왜 그런지는 질문한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으면서.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학에 들어갔더니 그런 귀여운 교수님들이 또 있었다.
퇴임을 목전에 둔 할아버지 교수님께 기본천문학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 천문학자 1세대에 속하는 분인데, 그 연세에도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셔서 천문학자가 아니라 조선시대 최고 무관이라고 해도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런 장수 같은 사람이 칠판에 별을 그릴 때면 어찌나 작고 예쁘고 단정하게 그리는지. 나는 교수님이 별을 그릴 때마다 너무 귀여워서 속으로 쿡쿡 웃었다. 칠판에 별을 그릴 일은 자주 있었다. 중요한 부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보이는 그대로 별을 논하니까 별. 성단을 논하니까 또 별.
- P12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P13

그날 친구는 화가가 먹고사는 방법에 대해 끝내 한마다도 해주지 않았다. 나 역시 천문학자가 어떻게 경제적 궁핍을 면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대신 헤어질 무렵, 친구는 내가 천문학자가 되어서 좋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무엇이어도 좋았지만, 열정적이고 무해하고 아름다운 화가라는 점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숨막히게 아름다웠던 잡지 속 우주로부터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향해, 한 사람은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 P14

흔히 천문대는 반구형의 지붕을 이고 있다. 관측할 때면 지붕 일부가 열린다. 자동차 선루프처럼 위로 혹은 옆으로 열려 하늘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천창을 만든다. 
망원경이 하늘의 다른 부분을 볼 때는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망원경의 방향에 맞게 돔이 통째로 돌아간다. 
학교 천문대의 돔을 점검할 때 위로 올라가 열린 부분으로 
나가보면, 약간 무섭긴 해도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 P18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모든 박사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
국내 천문학계는 대단히 좁은데, 
천문학의 범위는 천문학적으로 넓어서 
관심을 줄 대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은 
외롭지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 P23

그리고 동시대에 존재하는 초보 행성과학자들에게만 주어진,
타이탄을 최초로 목격하는 그 행운을 두고두고 곱씹었다.

그런 걸 생각할 때면, 엔셀라두스, 피비, 아이아페투스…… 
읽기도 힘든 토성의 수많은 위성들의 이름이 우주로 날아오르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 P24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P31

과장, 차장이나 중령, 대령은 몇 년 후에 칭호가 바뀌는데, 
박사는 아무리 시간이 오래 흘러도 
여전히 박사라고 불릴 수 있으니 세상 간편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죽으면 비문에도 ‘박사‘라고 새긴다나. 
박사가 되는 것은 내 이름 외에 
불멸의 호칭을 하나 더 갖게되는 것이다. - P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지음 / 미술문화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표지 디자인이 깔끔해서 읽기 시작한 책. 책의 크기는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크기라 휴대성도 편해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히 읽었다.

무언가를 겁내지 않고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인지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란
책 제목에 끌렸던 것 같다.

책의 작가인 이연은 유튜버이자 화가이다.
내가 기억하는 작가의 유튜브 영상은
그림을 그리는 본인의 영상에 자막과 나레이션을 넣는 방식으로
차분하면서도 영상에 집중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연 작가의 유튜브를 자주 보는 애청자는 아니었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종종 추천되는 작가의 영상들은
연필과 종이를 이용한 무채색의 그림들이 주 컨텐츠 였다.
이연 작가의 그림들은 여백이 있음에도 완성된 작품이란게 느껴졌는데, 그를 통해 작가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베테랑 이란 점과 작가가 그림을 사랑하는 점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또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느낀게,
작가의 그림처럼 차분하고 여백이 있음에도 본인이 전하려는 내용은 잘 전달 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이라는 언어 대신 글 이라는 언어로 말을 했을 뿐
책의 문장들은 이연 작가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은 구절들이 참 많았다.
다만 그 중에서 생활에 실천할 중요한 내용을 고르고 고르자면 아래의 2가지 내용이다.

1. 생각을 하면 실천을 해라
2. (그림)일기를 써라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하려면 실천을 해야하고 연습을 생활의 일부처럼 녹여내야 한다는 것.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내용들도 많았다.
어려운 내용이 없어서 술술 읽히는 책 이었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사람들 혹은 어떤 일을 시작해보려고 하는데 걱정이 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