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함께 언급되는 설정은 독자조차도 그 삶을 살다 나오게끔 만들었다. ˝소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 삶을 살다 나왔다˝는 작가 황정은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길지 않은 문장,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 소설이 끝날 때 마다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다.기승전결이 없다.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다. 그냥 무던하게 살아내는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서사를 점차 알게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읽으며 자꾸만 울음을 삼켰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 형용할 수 없다. 단지 누구에게든 고단한 삶, 조금 쉬어가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책이라면 병적으로 책부터 읽는 나이기에, 아끼느라 똥될뻔했던 <보건교사 안은영>을 드라마로 보기 위해서 마침내 읽었다.정세랑 작가가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는 이 책은 내게 쾌감만을 주지는 않았다.적나라하게 문제를 언급하기 보다,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은근슬쩍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페미니즘, 국정교과서, 성소수자, 노동인권 등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사회문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사고를 확장하도록 이끌었다. 밝은 분위기이나 다루는 주제는 결코 밝을 수 만은 없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이 책 외에도 정세랑 작가의 책들을 몇권 함께 구입했는데 내용이 궁금해진다.
수 년 전 동물농장을 읽고 전체주의의 실상에 공포를 느꼈더랬다. 그리고 이제야 조지오웰의 역작 1984년을 완독했다.(게으름뱅이..)민중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의 모습에 레닌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독재의 만행을 저지른 스탈린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며 러시아 혁명과 트로츠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이 생겨서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 볼 생각이다.‘이 소설 속 오세아니아 사회는 폭력과 억압만이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루는 정치적 전체주의 국가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고도의 기술적 전체주의 국가‘라는 역자의 해설 처럼, 빅데이터의 거대한 축적과 더불어 블랙박스, cctv 등 어딜가도 나를 찍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술적 전체주의이며 동시에 우리가 감시사회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범죄를 예방하려고, 늦은 밤 안전하게 귀가하려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 감시받기를 원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당 슬로건 중 하나인 ‘자유는 예속‘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을 조지오웰은 예견했던 건 아닐까.
종교와 한국 유교의 만남은 여성 억압과 차별을 심화시켰다. 책에 수록된 적지 않은 인터뷰와 경험들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 하다.나 역시 모태 천주교인으로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었지만, 교회 내 여성혐오 문제 외에도 여러 이유로 인해 이제 더는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다. 다행인건 이제는 신이 밉거나 싫지 않다는 것. 단지 신의 말씀을 왜곡, 곡해하거나 호도한 인간들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 책을 통해 권위와 여성혐오로 범벅된 교회 안에서 분투하는 여성들과 소수자들이 있다는 걸 재확인했다. 그래, 어디에나 여성혐오가 있듯이 어디에나 페미니스트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