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조지오웰의 <1984>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디스토피아 소설. 읽는 내내 충격과 동시에 신선함을 느꼈다.이른바 문명인으로 일컬어지는 멋진 신세계인들은 철저히 계급에 맞게 부화되고 교육되어, 고통이나 아픔은 마약으로 잊고 행복만을 느끼며 살아간다.군부독재권력이 그러했듯이 소설 속 정치가 역시 대중을 우매하게 만들기 위해 3s정책을 시행한다. 사람들은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무관심한 채 하루하루를 평생 소비할 뿐, ‘사고‘하는 사람은 없다. 가짜뉴스와 찌라시에 기반을 둔 정보를 유통시키는 사람들, 정치와 역사는 머리아프다며 무관심한 사람들, 정치하는 놈들 다 똑같다며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고‘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난다.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약 90년 전에 세상에 내놓은 이 책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떠한 생각이나 물음도 없이 교육받은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행복한 일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다시금 묻고 있다.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차이점은 깊은 사고를 한다는 것.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은 편할지 모르나 결국 스스로 동물과 다름아닌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꼴 아닐까.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함께 언급되는 설정은 독자조차도 그 삶을 살다 나오게끔 만들었다. ˝소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 삶을 살다 나왔다˝는 작가 황정은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길지 않은 문장,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 소설이 끝날 때 마다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다.기승전결이 없다.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다. 그냥 무던하게 살아내는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서사를 점차 알게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읽으며 자꾸만 울음을 삼켰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 형용할 수 없다. 단지 누구에게든 고단한 삶, 조금 쉬어가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이 책이라면 병적으로 책부터 읽는 나이기에, 아끼느라 똥될뻔했던 <보건교사 안은영>을 드라마로 보기 위해서 마침내 읽었다.정세랑 작가가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는 이 책은 내게 쾌감만을 주지는 않았다.적나라하게 문제를 언급하기 보다,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은근슬쩍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페미니즘, 국정교과서, 성소수자, 노동인권 등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사회문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사고를 확장하도록 이끌었다. 밝은 분위기이나 다루는 주제는 결코 밝을 수 만은 없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이 책 외에도 정세랑 작가의 책들을 몇권 함께 구입했는데 내용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