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앞 둔, 월요일
세 여인이 있다.
다락에서 남편의 편지를 발견한 세실리아.
자매처럼 지내온 사촌 펠리시티와 남편 윌의 불륜을 알게된, 테스
삶의 유일한 활력소이자 희망인 손자 제이컵이 아들내외와 함께 곧 뉴욕으로 떠나게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레이첼.
그녀들 삶 속에 불안, 불행이 찾아오면서 조금씩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가까워진다.
남편의 편지를 읽고 절망한 세실리아, 과거의 남친과 급속도로 발전하게된 테스, 딸 자니의 살인범을 찾으려 애쓰는 레이첼은 서로의 인생이 조금씩 겹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거짓과 잘못들로 가슴아픈 죄값을 치르게되는 그들.




"테스는 조금 수줍음이 많아. 아빠를 닮은 거 같아 걱정이야."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의 말투엔 분명 경멸이 담겨 있어서 테스는 수줍음은 어떤 형태가 되었건 모두 잘못된 거라고, 윤리적으로문제가 있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니 테스가 내성적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테스에게 수줍음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춰야 하는 당혹스러운 신체 질병과 같았다.

이런 말 있잖아. 아들은 아내를 데려오기 전까지만 아들이고, 딸은 영원히 딸이다.

테스와 펠리시티는 인생의 관중석에 앉아 선수들을 비웃고 있었던 거다

성 금요일과 복싱 데이(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오는 첫 번째 평일을공휴일로 지징한 날 옮긴이)는 일정이 선혀 없는, 1년에 딱 이틀뿐인 아주 귀중한 날이었다. 

레이첼은 언제나 완벽한 시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이우를세워 로렌이 거들지 못하게 막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일을 들지못하게 함으로써 거리를 두고, 가족이 아님을 알게 하고, 내 주방에 들어오게 할 만큼 널 좋아하지 않아‘ 라는 무언의 말을 하고 있는 거였다.

☆☆가끔은 정말 순수하고 원초적인 슬픔이 몰려왔다. 가끔은 할퀴고 차고 죽이고 싶은 맹렬한 바람이, 분노가 몰려왔다. 그리고 지금 같은 순간도 있었다. 그저 질식할 것처럼 묵직한 안개에 휩싸여 무뎌진 감각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가라앉아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지독하게 슬퍼지는 것이다.

희생자가 되는 건 정말 쉽다. 비난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즐거움을 지닌 채 입에서 흘러나왔다.

"절대로 변명하자는 게 아니야.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마하지만 6개월 전쯤이었어.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은 뒤에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단조롭다‘ 였어. ‘맥이 빠졌다‘ 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내 무릎이 온갖 말썽을 부렸던 거 기억해? 그다음엔 등이 문제였지? 그때 생각했어. 세상에, 이젠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의사를 찾아가고 약을 먹고 고통에 시달리고 망할 찜질이나 하면서? 벌써? 이제 모두 끝난 거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한 거였어. 그러다 어느 날…… 알아, 그건 너무 당혹스러웠어."

윌과 펠리시티가 정말로 맺어질 운명이라면 어떻게 하나? 테스와 코너가 결국 맺어질 운명이라면? 아마도 그런 질문에 정답이없을 것이다. 결국 맺어질 운명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삶이 있는 거다.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삶이. 
그저 조금 굴곡이 있는 것뿐이야.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그저 판도라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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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테스의 아빠는 늘 정신없이 갑작스럽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치 경찰이 도청을 하고 있어 위치를파악하기 전에 황급히 전화를 끊어야 하는 범죄자 같았다. 아빠는5년 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시드니와는 정반대에 있는 서부로 옮겨가선 작고 평평하고 나무도 없는 곳에서 살았다.

세실리아는 테스처럼 신비롭고 우아한사람들에겐 대책 없이 끌렸다. 세실리아의 친구들은 대부분 수다쟁이였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목소리엔 늘 절망이 덧씌워져 있었다. 

세실리아는 가끔 정말 중요한 일을 경험하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가끔은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도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지금 나, 재앙을 원하는 거야?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고 싶어서 이 도시를 가르는 장벽이 생기길바라는 거야? 아니면 레이첼 크롤리 같은 비극을 겪고 싶은 거야?

정말 그런 걸 원해, 세실리아? 엄청나게 진지하고 흥미로운 비극 말이야?
물론 그렇진 않았다.

"모든 게 너무 힘들 게 느껴졌거든, 영원히 잠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어."
존 폴은 그렇게 대답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옳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세실리아에겐 비윤리적인 일을 할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 두 악 중에 작은 악을 행하는 거다. 세실리아에겐명분이 있다.

자니 크롤리 언니가, 레이첼의 따님이 저한테 다가왔어요. 언니는저를 일으켜세우고는 제 등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줬어요. 그리고제 귀에 대고 조용히 별일 아니야. 그냥 바보 같은 행진일 뿐이야 라고 해줬어요."

세실리아가 보기에 사람들에겐등이 굽거나 몸이 떨리기 전에 한때 믿었던 자기 몸을 더는 믿지못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사내아이일 거 같아.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될 거야."
메리가 말했다.
"글쎄, 서로 죽이겠다고 덤빌 확률이 더 크지."
루시가 말했다.

코너는 에드와 악수를 하고 레이첼에게 차가운 뺨을 댔다. 레이첼에게코너는 악몽이었다. 시체가 든 관처럼 비현실적이고 잘못됐다. 몇달 뒤에 레이첼은 두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찾았다. 코너는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 자니를 보고 웃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비극을 겪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훨씬 높고 고상한 차원으로 올라간다고 믿지만, 레이첼이 보기엔 그 반대였다.
비극은 사람을 옹졸하고 편협하게 만든다. 위대한 지식이나 영감을 주는 일 따윈 없다. 

레이첼은 그런 에드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남편의 슬픔과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절대 남편의 슬픔을 알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함께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슬픔만으로도 충분했다. 도대체 어떻게 남편의 슬픔까지 감당하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레이첼은 궁금했다. 어째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함께 슬픔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자니가 죽었을 때 두 사람은 상대방이 우는 모습을 참아내지 못했다.

"편지, 읽었군."
존 폴이 말했다.

"응, 읽었어."
세실리아가 말했다.

세실리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분노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정말로 분노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순수한 진짜최대 분노 말이다. 진짜 분노는 미칠 것 같고 광포해지고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세실리아는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악마처럼 서재를 날아서 날카로운 손톱으로 존 폴의 얼굴을 피범벅으로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살인 희생자는 언제나정확하게 살인 희생자처럼 보였다. 그런 운명이 미리 예정된 것처럼 모두 아름답고 순진하고 불운했다. 

세실리아의 마음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친 것처럼 오싹하고 무시무시한 변하지 않는 사실로 돌아왔다.

"그건 마치 내 마음속에 괴물을 가두고 있는 것과 같아."
존 폴이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괴물이 가끔 풀려나서 마구 날뛰는 거야. 그러면 난 다시그 녀석에게 잡혀야 해, 다시 사슬에 묶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다 당신을 만났지. 난 당신에게서 특별한 걸 느꼈어. 뼛속까지 선한 감정 말이야. 난 그 선함을 사랑하게 됐어. 마치 아름다.
운 호수를 보는 것 같았어. 당신이 날 정화시켜줄 수 있다고 믿은거야."
세실리아는 오싹해졌다. 
난 선하지 않아. 
마리화나를 피운 적도있다고, 우린 함께 술도 마셨잖아. 
세상에, 난 당신이 내 모습을사랑한 줄 알았어, 선함이 아니라 번쩍이는 재치를, 유머 감각을사랑하는 줄 알았다고,

존 폴은 계속 말했다. 끝이 없었다. 세실리아는 몸속에 이상한벌레가 산다는 도시 괴담이 떠올랐다. 이 벌레를 없애는 유일한방법은 죽기 직전까지 굶은 뒤에 아주 맛있는 음식을 입에 물고벌레가 음식 냄새를 맡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음식 냄새를맡으면 벌레는 식도를 타고 올라와 입안으로 들어온다. 존 폴의목소리가 그 벌레처럼 들렸다. 끝도 없이 끔찍한 이야기가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자기는 정말 보이스카우트 같아."
연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윌은 그렇게 말했다. 영화를보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고, 어두운 거리에서 윌이 차 열쇠를 떨어뜨리자 테스가 가방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냈을 때였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테스의 핸드백만 있으면 우린 충분히 살수 있어."
펠리시티가 말했다. 당연히 그 밤에, 펠리시티도 두 사람과 함께 있었다. 도대체 펠리시티가 없는 순간은 언제인 거야?

수십년동안 레이첼은 자니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여전히 자니의 엄마이고 싶었고, 자니를 위해 사소한 일들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니에게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내가 범인을 잡아줄게, 조금만 기다려,자니

테스는 윌과 펠리시티를 생각했다. 차가운 커피를 얼굴에 들이부었을 때 두 사람이 보였던 절실하고도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펠리시티는 새로 산 눈처럼 하얀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커피 얼룩은 절대로 빠지지 않을 거다.

베를린 장벽에 관한 책을 읽는 건세실리아가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걸 생각하지 않는 척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엄마는 이상하게 꼭 행복하면 울더라."
에스터가 말했다.
"그러게."
세실리아가 대답했다. 행복한 결말은 언제나 세실리아를 울렸다.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였다. 이제 존 폴의 모든 결점이 너무나도 크게 보였다. 그건 법을 준수하는 온화한 남편이자 아버지에게 결점이 있는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불편할 때에만 나타나는 특별한 고집, 역시 불편할 때만 가끔씩 나타나는 우울함, 말다툼을 할 때면 드러나는 참을 수 없는 가혹함, 단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솔함 등의 결점은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그 때문에 평범하게 느껴져서 좋기도 했다.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을 한다. 생각은 위험하다.

잠시 테스는 기이하게 부적절한 행복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슬픔의 골짜기에 둘러싸인 좁은 틈새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만 잘못 생각하면 그대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다.

테스는 언제나 부모님이 이혼했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는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함께 살았다면 자신이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공상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결혼은 실패하기 마련이고, 아이들은 살아남는다. 테스도 살아남았다. 소위 말해 아이들이 받는다는 ‘상처‘는모두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아빠가 보내온 물건은 나무로 만든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나침반이었다.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니까."
테스의 엄마가 곳방귀를 뀌었다.
테스는 나침반을 들어올렸다. 상자 밑엔 노란 포스트잇에 쓴 편지가 붙어 있었다. 테스가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테스,
이게 여자애들에겐 적절한 선물이 아닌 거 알아, 너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하는지 한 번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구나 하지만 길을 잃었을 것 같은 너에게필요한 게 뭐일지 고민해봤단다. 나는 길을 잃는 느낌이 어떤 건지 생생하게기억하고 있어. 정말 끔찍한 느낌이지. 하지만 내겐 언제나 네가 있었어. 너의길을 찾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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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폴이었다.
세실리아는 전화기 너머로 듣는 존 폴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깊게 울리는 소리였다. 정말로 세실리아의 남편은 대책이 없었다. 끊임없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지각을 밥 먹 듯 했다

하지만 언제나 가족을 알뜰하게 보살피는 남자였다. 이건 남자가 할 일이지, 라는 태도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전형적인 가장이었다. 브리짓의 말이 맞아. 세실리아의 세계를 지배하는사람은 세실리아다. 하지만 위기가 닥칠 때, 그러니까 총을 든 미친 남자가 뛰어들어오거나 홍수나 화재가 났을 때 피츠패트릭 집안의 네 여자를 구할 사람은 존 폴이다. 

"무슨 편지?"
"자기가 나한테 쓴 편지."
세실리아는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되도록 가볍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야 이 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아무것도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기가 죽은 다음에 펴보라는 편지 말이야."

 펠리시티야말로 <도전! FAT 제로>에서 간절히 찾는 그런 사람이다. 뚱뚱한 몸에 갇혀 있는 매혹적인 미인.

결국 승리를 얻어냈다. 웃는 얼굴은 어제, 아직 윌과 펠리시티의비밀을 모르고 있을 때 그려넣은 것이다. 테스가 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두 사람은 유감이라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작은 비밀을 고백하면 저렇게 웃는 얼굴을그릴 수 없을 텐데 하고 말이다.

TWF 광고사입니다.
테스, 월, 펠리시티, 세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따 꿈에 그리던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그저 한번 해보면 어떨까? 했던 바람이실제로 이루어진 거다.

유당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이 그러듯, 
테스는 수줍음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혔다.

테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펠리시티와 내가사랑에 빠졌어."
"아주 재밌네."
테스가 머그잔을 모으며 웃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는 거야? 두 사람이 영혼의 동반자라고?"
윌은 뺨을 실룩거렸고, 펠리시티는 머리카릭을 잡아당겼다.
그렇다는 말이군. 그게 바로 두 사람이 생각하는 거였다. 그래.
진정한 사랑이야. 우린 영혼의 동반자라고!

제이컵을 처음 품에 안고 부드럽고 연약한 머리에 입을 맞춘 순간, 레이첼은 시들어버린 식물에 물을 주자 다시 살아난 것처럼자신의 삶도 다시 살아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갓 태어난 아기 냄새가 레이첼의 폐에 산소를 가득 불어넣었다. 누군가가 드디어 레이첼이 수년 동안 매달고 다녀야 했던 무거운 추를 받아든 것처럼허리가 쭉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동안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다시 색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레이첼은 아들이 엄마의 인생을 잊어버린 건지, 처음부터알지 못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전혀 흥미가 없는 건지 궁금했다.

레이첼은 자신의 인생이 카드로 만든 것처럼 이렇게 연약한 줄은 몰랐다. 롭과 로렌이 월요일 밤에 쳐들어와 카드로 만든 집에서 아주 중요한 카드 한 장을 저렇게 즐거워하면서 빼내갈 줄은몰랐다. 제이컵이라는 카드가 빠지면 레이첼의 인생은 완전히 무너지고, 남은 카드들은 나풀거리며 땅바닥에 내려앉을 것이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레이첼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았다. <도전! FAT 제로>에 출연하는 트레이너 목소리였다. 레이첼은 그 프로그램이 좋았다. 
총천연색 가짜 세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1984년에 가족에게 그 일이 생긴 뒤에 레이첼은 롭을 훨씬 더많이 사랑했어야 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사랑하는 능력을 완전히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 능력은 제이컵이 태어난 뒤에야 다시 돌아왔다.

폴리는 비밀을 사랑했다. 두 살 때 이 세상에 비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폴리는 끊임없이 비밀을 말했고, 비밀을 공유했다.

절대로 열어보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이젠 절대 열어볼 수없게 됐다. 차라리 말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세실리아는 차를 다 마시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모든 여성이 간절히 원하는 걸 지닌 아이는 어떤사람으로 자랄까? 세실리아가 보기에 아름다운 여자들은 자신이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예쁜 여자들은 엄청난 관심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같다. 세실리아는 딸들이 뛰고, 성큼성큼걷고, 발을 구르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폴리가 마구 흔들리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일부러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레이첼은 자신이 며느리를 얼마나 싫어하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미워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강철 바이스가 레이첼의 가슴을 움켜잡고 강하게 조이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혀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고통 아래에서 침울하지만 차분한 경험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겪어본 일이잖아. 이것 때문에 죽진 않아,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지만사실은 숨을 쉬고 있잖아, 결코 눈물을 멈추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 멈추게 될 거야.

레이첼은 항상 눕는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불은 켜두었다.
자니가 죽은 뒤부터 레이첼과 에드는 어둠을 참지 못했다.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잠을 자지 않는 것처럼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해야 했다.

그저 아는 것은 제이컵이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지면 다시 견딜 수 없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아니, 사실 가장 끔찍한 일은 그런 삶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가장 끔찍한 일은 그런 삶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성당은 그녀가 영원히 응원할 팀이다. 
하지만 신에 대해 말하자면, 그(또는 그녀)가 맡은 바 일을 잘하고 있는지는전혀 다른 문제였다.

세실리아는 브리짓에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신장을줄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이지 브리짓 위에 올라타 베개로얼굴을 깔아뭉개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어렸을 땐 그게 브리짓에게 규칙을 지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른이 되면 진짜 감정을 숨겨야 한다.

세실리아는 편지를 꺼내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는 읽어볼 수도 없고, 읽을 생각도 없다.

 테스는 네 상여군이 관을 들고 영구차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났다. 저 사람은 얼굴을 간질이는 이 햇빛을 다시는 느끼지 못하겠지. 테스는 고통을 잊기 위해 죽음을 사색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날씨도 테스를 도와주지 않았다. 너무 지나치게 사랑스러워서,
꼭 테스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 너는 뭐가 문제니?
시드니가 테스에게 말했다.

두사람이 데이트를 하고 몇 달도 되지 않아 윌은 "당신이 없으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당신은 꼭 있어야만 잘 수 있는 베개 같아. 가는 곳마다 가져가야겠어" 라고 했다.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이야. 벨 씨네 큰딸인데, 피츠패트릭네큰가를 준 꽃이랑 결혼했어, 아들들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내가 보기게 가장 갈생긴 아들 말이야. 세실리아한테 동생이 있지.
다 같은 학년이었을 텐데, 누구더라. 그래 브리짓 벨."

이런 세상에. 테스는 모든 기운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말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그런기분이 들었다.

세실리아가 테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세실리아는 한참 동안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인거다. 테스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맞아요. 레이첼 크롤리 아주머니 말예요. 정말 효율적인 분이에요. 꼭 스위스 시계처럼 학교를 운영하시죠. 우리 시어머니랑같은 일을 나눠서 하시지만,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사실 레이첼이 일을 다 하세요. 시어머니는 그저 잡담만 하시죠. 이건 내가 하면 안 되는 말이긴 하지만, 저런, 근데 이미 말해버렸네요."

테스와 테스의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둘 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이런 순간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빠와의 대화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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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모두 베를린 장벽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만 아니었다면 세실리아는 편지를 발견하지도, 시탁에 앉아 열어보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을 거다.

솔직히 말해 편지 좀 본다고 큰일이 날 린 없다. 보자마자 뜯어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무슨말을 할지 뻔했다.

"베를린 장벽을 세우자고 한 사람이 누구지?"
"다들 니키타 흐루쇼프일 거라고 하던데?"
에스터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이국적인 이름을 외쳤다. 자신이 직접 익힌 독특한 러시아 억양으로,
"누구냐면 러시아의 수상 같은 사람이야. 사실 수상은 아니고서기장인데, 아마도……."

물론 세실리아도 지극히 평범하게 살길 바랐다. 하지만 좀 더나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좀 더 뛰어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세실리아는 가끔 멍하니멈춰 서서 생각했다. 지금 뭐라는 거니? 교외에 사는 엄마들은 모두 나 같단 말이야!

말을 하지 않는 건 세실리아답지 않았다. 세실리아는 말을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전 남자 친구는 세실리아에게 "진지하게 말하는건데,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안 돼?" 라고까지 했다. 세실리아는 긴장하면 말이 많아졌다. 그러니까 전 남자 친구가 세실리아를긴장하게 한 거다. 물론 행복할 때도 말이 많아지긴 했다.

물건이 가득 들어 있는 다락은 좁았지만, 당연히 조직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직적‘ 이란 말은 세실리아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이 된 듯했다. 세실리아가 지역사회에서 살짝 유명 인사처럼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언젠가가족과 친구들이 세실리아를 언급하면서 놀린 뒤로 그런 평판은영구적으로 정착해버렸다.
 그 때문에 세실리아의 인생은 엄청나게 굉장하고 조직적인 것이 되었고, 세실리아가 엄마로 사는 일은일종의 스포츠가 되어 세실리아는 아주 유능한 선수인 양 되어버렸다.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삶을 관리하는 부분만 아니라면 세실리아가 아는 사람 중에 존폴만큼 영리한 사람은 드물었다.
남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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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직하기 때문에 확실히 아는 것에 대해서는 잘 쓰지 못할 거예요. 현실에서는 거짓말할 수 없지만, 상상으로는 그럴수 있을 겁니다. 아는 것에 대해서는 거짓으로 쓸 수 없지만, 

당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근사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말입니다. 기막히면서 (당신에게 기막히면서) 현실은 아닌 것을 써야 합니다. 당장 돌아가서 시작해봐요.

셀리아는 생각했다. ‘이제 난 혼자야…...
더멋과 주디는 타인들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는 달려갈 사람이 없어공포가 온몸을 휘감고 회한이 밀려들었다..…..…

엄마는 언제나 대단하고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있어주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떠나버렸다....…셀리아가 있던 세계의 밑바닥이 쑥 꺼져버렸다.
그녀의 자그맣던 엄마 ...…...

셀리아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인정이 없어 ....
거대한 파도처럼 고독이 밀려왔다. 셀리아는 두려웠다.…엄마가 없는 세상은 너무도 차가웠다 . …

☆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서랍 맨 밑에 금박으로 수놓은 빛바랜 낡은 공책이 있었다.
공책 안에 오래되고 너덜너덜한 쪽지가 들어 있었다. "미리엄이내 생일에 보낸 시" 라고 적혀 있었다.
감상적이었다.
요즘 세상은 감상적인 것을 경멸하지 .....…그러나 그 순간 셀리아는 그것이 견디기 힘들 만큼 달콤했다....

"알아…… 그건 나도 몹시 마음에 걸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해봤자 쓸데없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상황이 나빠지면 잘 헤쳐나가질 못해· 짐승같은 인간이 되고 말 거야."

셀리아는 두 가지가 두려웠다. 미칠까봐 두려웠고, 주디가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꼭 엄마를 찾아야 했다. 옷을 입고 코트와 모자를 걸쳤다. 엄마의 사진을 챙겼다. 경찰서에 가서 엄마를 찾아달라고부탁할 생각이었다. 엄마가 사라졌지만 경찰이 찾아줄 것이었다엄마만 찾으면 다 괜찮아질 것이었다...….…

엄마를 찾을 것이다. 엄마가 모든 걸 바로잡아줄 것이다.
그녀는 말할 것이다. 하마터면 도랑에 빠질 뻔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이러겠지. 그랬다면 바보 같았을 거야, 셀리아.‘

셀리아는 잠들기 직전 갑자기 중얼거렸다.
"정말 바보 같아. 난 엄마를 찾을 수 없잖아. 생각났어엄마는 돌아가셨어...

셀리아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감각하고 평온할 뿐이었다.
그는 떠났다…그녀도 이제 다시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주디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눈길을 받는 건 끔찍했다. 셀리아가 아무리 그의 외도를 이해할 수 있다 해도 십일년의 애정이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혐오로 변하는 건 참을 수없는 일이었다.

넌 같이 갈 수 없어. 안 돼! 아무도 여주인이 가는 곳에갈 수 없어.
셀리아는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달아나야했다....…

셀리아는 참을 수 없었다.
이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었다.…그가 나가면서 이틀 후에 오겠다고 말하자 셀리아가 대답했다. "그때 난 여기 없을 거예요." 그의 눈꺼풀의 떨렸고, 셀리아는 더멋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고 확신했다 ....…그는 얼른 말했다. "그래, 당신이 떠나고 싶다면.

-셀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더멋은 그녀의 의도를 전혀 몰랐다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그리고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편이 더 마음 편할 테더멋은 알았고……… 순간적으로 그녀는 그에게서 가물거리는희망을 보았다. 아마도 더멋 자신은 몰랐을 것이다. 

죽음도 하나의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죽음에 대해 자책할 리는 없었다. 더멋은 엄마를 잃은 뒤부터 셀리아의상태가 안 좋았다고 이내 자신을 설득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설득하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래, 그녀가 떠나면 된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그녀는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가슴이 찢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셀리아는 더이상 주디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단계는 이미 넘어서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자신의 고통과 달아나고픈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

☆"나를 모욕하는 자가 원수였다면 차라리 견디기 쉬웠을 것을,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적이었다면 그를 비키기라도 했을 것을, 그러나그것은 내 동료, 내 친구, 서로 가까이 지내던 벗*.

더멋이 배신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날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의 모든 게 불확실해 보였어요. 난 더이상 아무도,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예요 …그건 끔찍할 만큼 무서운 일이에요.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안전한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러니 이제 더멋을 탓하지 않아요.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내가 알아차리고 경계해야 했어요. 그렇게 자만해서 혼자 만족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면, 현명하게 지켜야 해요... 난 그러지 못했어요.

☆세상은 고통과 잔인함으로 가득차 있어요. 인간이 바보이기 때문이에요
난 바보예요. 나만의 세계에서 살았죠. 그래요, 난 바보예요."

주디는 가끔 무의식적으로 잔인하게 굴었지만, 내게는그게 도움이 됐어요. 주디는 철저하게 정직했으니까요..

주디를 잘 키운 건지 잘못 키운 건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가날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도요. 난 딸에게 물질적인 것을줬어요. 다른 것, 내게 중요한 것은 주지 못했고요. 그건 그 아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했어요.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내버려뒀죠. 내 관점과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어요. 아이가 원할 때 언제든 내가 거기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날 원하지 않더군요

공포 속에 사는 건 너무 무서워요...…
더이상 믿음이 없다는 것도 섬뜩하죠.
난 아무도 믿을 수 없었을 뿐이에요…… 마이클까지도 ,
그건 나뿐 아니라 그에게도 지옥일 테니까 …….

☆상관없어요. 더멋과 헤어진 후로 난 냉정해졌어요…… 내가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든 안 줬든 상관하지 않아요. 너무 고통스러우면 타인은 신경쓰지 않게 돼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번역을 끝내고 이스탄불에 갔다. 출발 전날 밤까지 작업에 매달리느라 비행기에 올라서야 겨우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스탄불에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출발했던 기차역과 애거사 크리스티가 묵었던 호텔이 있다는내용을 발견했다. 방금 두고 떠난 줄 알았는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네. 대체 무슨 인연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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