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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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거듭되새기는 죽음들

죽음이 타자라는 것이 절망스러운 것이다. 내가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는 것이 최후의 나의 것으로 주어진다는 것, 그건 우리가 경험할 최대의 아이러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 별개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한다.

나를 덮어다오, 클로버여
나를 덮어다오, 풀이여.
달콤한 날들은 지나갔으니
이제 지새야 할 밤이다.

내머리 둘레에는 초록의 팔
내 손 위에는 초록의 손가락.
지구는 그 고요한 땅에
이보다 더 고요한 잠자리는 갖질 못했다.

리처드 에버허트의 시 죽음의 신을 잠의 신, 휘프노스의 형제로 간죽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나라에 시에서 죽음에 대한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관들을 제시해두었고, 잠과 죽음을 비슷한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갈색 마을 안을 어둔 것이 걸어서 지나간다.
여러 번 가을 돌담에다 그림자를 지우면서.
사내와 여자가 지나가고 이윽고 죽은 이가 나타나서는 사람들의 싸늘한 방에 잠자리를 편다.

인간이 죽음에 부치는 생각이란 이런 것이다. 모순과 착종, 분열과 갈등, 강박과 망상..
이 모든 것이 칡덩굴처럼 죽음을 칭칭 감고 돈다. 이럴 수도 저런 수도 없는, 그러면서도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그래서 뒤엉긴 실타래 같은 것, 그게 죽음을 부치는 우리들 생각과 감정의 궁극이다. 삶에 허덕이기 전에 우리는 먼저 죽음에 허덕이는지도 모른다. 살아 숨쉬고 있는 행위자체는 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에는 벅차고 힘들뿐이다.

결국 나만의 죽음을 만나다.

토마스만 의 환멸에서는 주인공이 집요하게 자살을 결의하고 또 결의한다. 그 속에서 결단,후퇴와 전진 사이를 무수히 오락가락 한다.
한숨, 번민,결심, 단념,포기 또 번뇌...
그는 절벽머리에 선다. 눈을 감는다. 이제 발만 내밀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 발 한 짝, 정말이지 단지, 이 한 발자국이면 모든 건 끝난다. 두 발 허공에 던지면 다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직 그 뿐. 그것뿐......

아!? 이걸 위해서 그 기나긴 머뭇댐, 준순, 주저, 망설임이...말도 안돼! 이 순식간의 일을 위해서 그 긴긴 세월 두고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번민했단 말인가?

그러던 것에 집착하고 달라붙고 한 뒤 끝이 고작 환멸이라니. 죽음은 다시 한 번 더 멀어지고 만다.

환멸이란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이다.
나만의 죽음 앞에 무수한 고뇌한 결론은 나약하고 순간적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느낀 후 죽음을 대면하는 주인공은 죽음이라는 두려운 속에 살았던 본인의 두려운 마음 뿐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삶을 살아가는데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삶의 변화기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2부. 한국인의 죽음, 그 자화상

산 사람의 방위, 죽은 사람의 방위

이사를 가서도 우리는 머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항상 예사롭게 살펴본다. 극단적으로 어느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몸에 좋다거나 아니면 해롭다는 말들을 흔하게 쓴다. 더러는 어느쪽 머리 방향이면 흉한 꿈을 꾸게 된다고 믿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이사할 때도 '손 없는 날'에 이사가 몰려 오히려 손 없는날이 이사 비용도 더 비쌀정도다.
이렇게 방향으로인해 산자의 방향,죽은자의 방향을 의미있게 생각하고 그것에 따르게 된다.
신기한건 신라인들의 머리 방향이다. 이 시대의 죽은 이의 머리 방향은 대체로 동향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를 바라고, 해돋이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는 사람들, 옛 신라인들은 죽어서 그렇게 누워 있었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내세, 죽음의 세계를 서방에 두고 있다.죽음의 방위를 서나 북에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옛 신라인들의 동남향의 머리 방위는 죽은 사람만이 취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 할 수없다. 동남향은 태양의 방위이기 때문이다. 옛신라인들은 죽음 그 자체를 삶의 역으로만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지상에 있고 주검이 땅 밑에 누웠다고 해도, 그 지상과 지하만큼 대극적인 상거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죽음은 또 다른 삶, 제2의 삶으로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죽음에 어둡고 습기찬 그늘이 질 수가 없다. 이별은 다만 재회의 전제가 될 뿐이고, 존재의 소멸이나 상실 따위와도 무관하게 된다.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신라인들의 모습은 옛 사람들에게 느끼는 신앙적은 느낌 그 이상의 초월적인 죽음에 대한 전환전 사고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직접적인 신라시대 무덤에 방향을 다 조사하여 넣은 것도 인상적이었고, 조상들의 그 의연함에 감탄할 뿐이었다.

3부. 어제의 거울에 비친 오늘, 우리들의 죽음

죽음이라는 음산한 그늘은 개인 각자의 죽음에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병원의 보편화 혹은 의료의 대중화를 더불어서 대부분 병원 침상에서 맞는 죽음은 오직 '불치의 결과'일 뿐이다. 이로써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의, 특히 의술의 결함이거나 실수거나 아니면 한계로 계산되고 만다. 그저 주어진 죽음에 일반인들은 주어진 상황 그대로 함락하면 그만이다. 죽음의 몰가치화하고 개성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흔해빠진 것이 되고 그래서 거의 모든 죽음은 별것 아닌 게 되고 말았다. 현대의 군중사회에서 각자의 삶이 겪은 그 무명, 그 이름 없음은 죽음에서 결국 끝을 본다. 죽음은 다만 말뿐이다. 죽음은 가고 죽음이란 말만이 황당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장례식, 이젠 한국적 현실에서 집안의 빈소 차림은 없어지고 다만 병원 영안실에서만 진행되는 그 장례식은 오직 죽음을 멸각하고 소각하고 드디어는 소실하는데 기여한다. 규모가 클수록 겉이 화려할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소실의 효과, 지워 없애기의 효능은 커지는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각하기 위해서 장례라는 절차가 진행된다. 기왕의 죽음을 한 번 더 완벽하게 죽이기 위한 짓이다. 이제 죽음이 죽었다.
작가는 죽음을 대하는 우리 시대의 장례문화를 비판하는 느낌이 났다. 하나의 형식으로 진행되어 사라지는 죽음. 옛 시대의 조상들의 장례형식을 부활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죽음을 보내는 우리들의 마음가짐과 세태가 안타깝고 몰인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최소한의 죽은자를 위한 죽은자를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상황, 그런 마음가짐, 태도는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죽은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가는 듯한 글체에서 문득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글귀들이 많았다.

죽음의 감정을 마친 무엇인가 흉칙한 것이기나 하듯 밀쳐내도록 부추기거나 혹은 그같이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죽음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다. 메멘토 모리 곧, '죽음을 기억하라'라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뇌리에서 죽음을 몰아내던 자는 죽어서 남들의 뇌리 안에 자리잡을 틈이 없다.


4부. 죽음의 문화적.신화적 형상

우리는 우리의 온 삶을 통틀어 부딪쳐보기 전에는 운명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운명이란 놈의 복면을 벗기지 위해서라도 그 녀석을 향해 돌진 해야 한다. 내던져져 있는 존재이면서도 나 스스로를 내던져보는 존재이기도 한 인간 존재의 비결은 죽음을 두고 한결 더 치열해진다.
모르는 제 눈감음으로써 아예 죽음이 없는 듯이 사는 길이다. 이것이 죽음 앞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머리만 틀어박고 죽음에게서 숨으려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제 눈만 감고 죽음은 없노라고 하는 것이다.
?죽음을 못 본 체하기 위해 현실적인 일에 정열적으로 몰두할 때가 있다. 그 몰두로 이루어지는 삶이 있다. 그러나 이 정열은 공포 위에서 있고 불안을 딛고 서 있기에 오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오열로 살아가는 삶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오열의 일로 삶을 살아갈 때 불행히도 인생은 도피의 자리일 뿐이다.
인간은 한계 앞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좌절의 덫에 걸려서 흘리는 동통의 피를 머금고 자라는 꽃이다. 인간은 자신이 고양이에게 쫓겨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라는 의식을 더불어 스스로에 눈뜬다. 한계와 좌절, 그리고 극한은 인간 존재를 비쳐내는 거울이다. 자유혼은 그 거울에 의해서야 비로소 모습이 드러난 인간의 존재성이다.

5부.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고

사람끼리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기 마련이다. 낯이 익는다는 것, 눈에 자주 든다는 것, 그것은 정붙이기의 전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ㅈ에 정을 붙이자면 그리하여 죽음과의 친화를 일구어 내자면 죽음과 자주자주 그리고 절실하게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삶이 죽음과 정을 붙여야 한다.

죽음이여, 교만치 말라
죽음이여, 거들먹대지 말라.

신체부자유나 고아들을 위한 사회 시설에 대한 님비 현상이나 공동묘지부설 철거를 향한 님비는 이미 우리 사회는 인간사회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지독한 '에고센트리시즘'의 사회적 윤리성을 짓밟아버린다.공동묘지가 혐오시설쯤으로 보였고 그래서 땅값에 아파트 시세까지 떨어질까 걱정이었다는, 산 자들의 이 교만, 이 허망한 욕심이야말로 어디 딴 세상으로 나가야한다. 남의 죽음에 대한 부정. 상문 곧 남의 초상집에 문상 갔다가 불행히도 횡액을 당한듯이 묻어오는 상문살, 곧 독기운이야 말로 상문살이다.
죽음은 어차피 우리들 누구나의 것이다. 죽음은 남의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자의 타인에 대한 윤리 의식은 죽은 이를 향해서도 지켜져야 한다. 요즘은 그런 죽음을 향한 살아 있는 자들의 윤리 의식이 아쉽다.

모든 죽음에 대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생각.
이토록 많은 죽음에 대한 연구와 죽음을 생각하며 적어내려가는 김열규 교수의 외침 속에 귀 기울여보고 느껴본 후,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삶의 의연함과 소중함은 죽음을 등한시 하는 것이 아닌 마주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소중한 시간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 맞서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현자들을 통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웃음을 들이키소서,죽음 앞에서, 부디 부디.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메멘토모리,죽음을기억하라#사무사책방#김열규#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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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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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은 소설가이다. 등단해서 책을 쓰는 그녀.
4남 2녀의 4째이며 위로 오빠 셋 이후 딸(헌)은 태어난다. 아버지에 사랑을 듬뿍받고 기뻐했다던 아빠. 하지만 그런 아빠가 헌이는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가족간에 단체 대화방에서도 그녀는 대답없는 관찰자일뿐이다. 딸을 잃고 난 후, 가족은 헌에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대화창에 참여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파 입원을 하게 되 여동생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게 된다.
혼자 있는 아빠. 혼자가 되어버린 헌이.
처음으로 헌이는 아빠를 찾으러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축 늘어뜨린 어깨, 그 어깨 위에 걸쳐진 허름한 점퍼, 구겨진 속 셔츠를 넣어 입은 헐렁한 바지..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자 아버지와 나는 시선이 마주칠 뻔 했다. 나는 얼릉 저쪽으로 고개를 돌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없이 초라하게 보이는 그 모습에 쉽게 아는척을 못하는 헌이. 헌이는 늘 이런식이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그녀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딸에게 한없이 다가온다. 집에 도착할때 쯤이면 마중 나온 아버지는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도 혹시나 헌이 못 알아볼까봐 손을 들어 자신을 표현한다. 부모와 자녀는 이렇게 다른다. 부모는 붐비는 사람들 속 오로지 자녀만을 보지만 자녀는 붐비는 사람들속 비춰진 내 부모의 모습을 본다. 날 향해 손짓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날 향해 손짓하는 타인들의 모습에비춰진 부모의 모습과 나의 상황을 본다. 부끄럽다 창피하다는 식의 표현들에서 우리는 그들의 사랑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네 시장에서 헌이를 따라오던 주인없는 앵무새를 아버지는 참이라 이름 붙이고 말을 가르치며 정을 준다. 너 본 지 오래다! 를 외치는 앵무새. 아버지가 헌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앵무새를 통해 한다. 죽은 참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죽은 고모를 찾는 아버지. 아버지는 밤마다 자꾸 사라지고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눈에는 눈물자국이 있다. 남에게 항상 피해끼치고 싶지 않고 혼자 슬픔을 극복하는 아버지는 제대로 잠도 못자 기억도 없어져 가고 의미없는 했던말도 던진다.

내가 산낙지를 좋아한다고?
너 먹으라는 것이제.
이렇게 왜곡되는 것이 기억인데 내가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을 계속 믿어도 될까.

아버지 입맛 없어서 사드리라했던 엄마 말을 듣고 사왔던 산낙지에 대한 기억이 아버지는 헌이가 좋아하는 줄 알고 있는 기억. 헌이가 사온 산낙지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 속 헌이와의 추억이 잘라진 기억처럼 저장되어 아버지는 그때의 헌이와 산낙지를 같이 기억한다. 함께했던 순간에는 왜곡된 기억, 참과 거짓이었지에 대한 판단 따위는 없는 순수한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이었을 것이다.


거실에 있는 학사모 사진들.
큰 오빠,작은 오빠, 셋째 오빠, ,여동생, 남동생.
헌이의 학사모는 없다. 아버지에게 주지않았다. 이해가 납득이 되지 않는 아빠의 요구를 받아주기가 싫었다. 지금 세월이 흐른 비어있는 헌이에 학사모 빈공간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내가 그토록 들어주지 않은 쓰라림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는 이 마을과 이 집에 스며 있는 오래된 것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왜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던 생각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의미부여는 아버지에겐 중요하지 않다. 너희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한 학사모 사진이다.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해 세월이 흘러가면서 부모가 되어가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머리로 하는게 아닌 마음으로 해야되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현되지않는 그런 관계로 아버지와 헌이, 부모들과 자식들은 강한 실타래로 엉켜있다.


아버지의 몸에서 나던 소똥 냄새는 한때 우리들의 등록금이 되었다. 여름과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소똥 냄새 나는 손으로 이것은 셋째, 이것이 헌이 거... ...돈을 나누어 등록금을 맞췄다.

그 시대 때에 소는 부를 상징한다. 소 코 뚫는 것도 무서워서 못하던 아버지의 어린시절. 스무살에 결혼하여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소를 관리하고 소를 키우기위해 소 코에 코뚜레 해야한다. 그것도 무서워 벌벌 떨었지만 한번 잃어버릴뻔했던 소를 코뚜레하기로 결심한다. 소야 미안하다. 마냥 풀러놨던 소였지만 이제 잃어버리면 절대 안되는 소이기에 단단히 묶어둬야 한다. 아버지에게 소는 자식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재정적 버팀목이고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임감과 충실함으로 묶인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큰오빠와 나만 이름을 불렀다. 둘째, 셋째 , 여동생이 이삐, 막내라고 했다. 아버지가 자식들 중 가장 의지하는 이는 누가 봐도 큰 오빠다. 아버지가 큰 오빠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하다, 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거 내가 해야 헐 일인데......라는 말. 나는 넷째가 아니라 독립적인 '헌이'였으니까.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도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참 행복했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 양식걱정하며 쌀독이 비어가는걸 보면서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 밥 먹는걸 보면
그게 또 살아가는 힘이라고 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편지 속 아버지가 되어가던 생생한 기록들이 있다. 작고 까맣고 또릿한 눈 속에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 작은 눈빛.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들의 목소리. 작은 손 맞잡고 걸어다니던 매 순간이 아버지는 감사와 환희였다. 아...바, 아빠..

졸졸 따라디니니까 조키도 하고 귀찬기도 햇다. 너를 떨치고 나오면 어디에 잇으나 아빠 아빠 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서 뒤도 도라보고 저 멀리도 보고 그랬다. 다시 너를 보려고 친구들을 두고 집으로 가곤 햇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딸을 데리러 학원에 갔다가 건너편에서 딸을 부르는 바람에 딸은 헌이(엄마)를 향해 건너 오다가 차에 부딪혀 사고를 당한다. 모든 일에 의욕도 없고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에게 위로받지않고 오로지 혼자의 삶에서 멈춰 있었던 그녀.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헌이 또한 아버지에게는 사랑스러웠을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기보다 이제 받아 들이고 감싸준다. 헌이는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를 보호하러 왔는지 내가 보호받기 위해 왔는지 구분이 안 된다.'고. 헌이는
이제 아버지를 보는 순간을 넘어 아버지를 느끼고 아버지가 되어 본다.

삶의 끝자락에 있는 순간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문턱에도 아버지는 헌이를 향해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너희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고맙고 내 자식이였던것에 대해 고맙고 그렇게 매 순간 너희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소중했다는 거.
메마른 입술로 그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자식을 바라본다.
살아냈어야,라고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우리 또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당신이 있어서 감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큰 힘이 당신이라고... 당신의 주름과 당신의 눈물을 우리는 다 기억하고 느낀다고 우리도 말해주고 싶다.


#아버지에게갔었어#신경숙#신경숙장편소설#창비#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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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
아사이 마카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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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매화향이 그윽할 것 같은 책을 받아서 책을 넘겨봅니다. 글을 쓰는 가호. 미야케 가호는 나카지마 우타코의 제자이자 본명은 '다쓰코'이다. 가호는 아침부터 몇 번째 인지 모를 한숨을 지으며 등받이에 걸쳐둔 스톨을 어깨에 둘렀다. 덤불 속의 꾀꼬리라는 큰 재능을 보여줬던 그녀. 남편 미야케 세쓰레이 부인으로 세상의 존종을 받고 남편복 자식복을 다 누리고 있다. 그녀의 제자인 히구치 이치요(히나쓰.1872년생.16세때 아버지 죽음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밤벚꽃 등 발표했으나 빈궁하게 지내다24세 나이 폐결핵으로 죽었다. 사후 당대 최고 여성 소설가로 화려한 명성을 얻었고 일본 5000엔권 지폐모델이다.) 히나쓰는 선배나 동료를 정중한 말투로 과장되게 추어올렸고,그 비굴함 탓에 주위 사람들이 만만하게 대하던 처녀였다. 하지만 다쓰코(가호)는 그녀에게 힘든 환경에도 교제를 끊지 않고 상담도 해주고 응원해주었다. 하기노야의 스응 나카지마 우타코 선생의 병문안을 떠나는 가호. 실제있던 인물들에 대해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차근 읽어봅니다.

하기노야의 스승 나카지마 우타코의 병문안을 떠나는 가호. 우타코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려가지만, 용무라는 것은 스승이 와카 교수로 가르치는 일본 여자대학교 대강 의뢰나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 첨삭부터 자잘한 소식만 들려주고 끝나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병문안이라, 평범한 병문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에 바쁜 가호는 오늘도 마음을 가다듬고 글 써내려 가기엔 글렀다. 하지만 자꾸 최악의 사태가 걱정되어 인력거를 타고 가는 그녀의 마음이 초조하다. 스승은 이미 일세를 풍미하던 문인으로 넘어볼 수 없던 그녀의 당당한 아름다움의 위풍에 문하생으로의 긍지를 느끼며 아직도 붓을 잡게 된다. 그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그녀에 대한 위대한 문인으로의 모습을 깊이 새기는 가호의 모습이 나타난다.

스승은 히나쓰를 양녀로 삼고 싶어 했다. 히나쓰에게 그 제안은 가인으로서의 장래를 보장받는 한 줄기 광명과 같은 것이였다. 하지만 히구치 가의 호주가 된 몸이라 도저히 맺을 수 없는 인연이었고, 히나쓰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한스러워했다. 가호는 자신보다 9년이나 늦게 입문한 그녀를 스승이 후계자로 택한 것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요절한 그녀에 대한 경쟁심은 끝이 없다. 스승을 만나러 가는 사이 히나쓰를 상기하며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예상과 달리 병문안 오지 않은 고요한 병원에 왜소하게 누워있는 스승을 마주한다. 스승의 하녀 스미도 주인을 닮은건지 쌀쌀하게 가호를 응대한다. 스승의 부탁으로 스승의 집으로 가서 위문품을 살펴보러 가게 된 가호. 위문품은 오지도 않았던 걸 알게되고. 스미는 스승의 상태를 너무 담담하게 알려주고 돌아가시기 얼마 남지 않을만큼 상태가 좋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곳저곳을 보다 마키에로 싸리나무가 그려진 문서궤의 뚜껑을 열었다. 잡동사니들과 함께 나온 헝겊 끈으로 묶은 봉서꾸러미를 발견한다. 끈을 풀어보니 스승의 유려하고 우아한 글씨가 빼곡하다. 40여 년전 그녀의 기록. 그 시간으로 들어가본다.


유키모모.(이른 봄에 내린 눈에 덮인 복사꽃. 막 피어난 사랑에 닥친 시련을 은유한다.) 스승의 기록지를 보는 가호.


3인 기치사 구루와노하쓰가이 가부키를 보 았다. 나(우타코,도세)는 예복용 기모노의 소매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놓았다. 하얀 비단에 매호나무, 그리고 나비무늬를 보니 새삼 원망스런 기분이 든다. 선보기 싫다고 애원했건만 엄마는 나를 데려와 채근한다. 내 신랑감을 빨리찾고 싶은 어머니는 줄기차게 맞선 상대를 조달하고 있다. 드세 보이고 관심없는 나는 싫다. 오빠가 있으나 오빠 고자부로는 숙부의 가문을 이어받아야 하고 나는 엄마가 운영라는 미토번 어용 여관 이케다야를 물려받기 위해 빨리 데릴사위를 들이려는 엄마의 목표가 있다. 이케다야에 묵는 미토 번 가신들은 존양왕이 라는 사상의 최선봉이라는데 얼마전 막부 다이로이며 히코네 번의 번주인 이이 가몬노카미 님을 비난하는 상황이다. 흑선에 겁을먹은 쇼군이 맺은 통상 조약의 내용이 이 나라에 몹시 불리한 데다 교토에 계신 천황폐하의 허락도 받지 않은 독단전 결정이었다고 한다. 미토 번주를 비롯란 존왕양이 일파는 격분하여 다이로를 규탄했고 다이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투옥하고 할복이나 참수라는 극형에 처했다. 미토 사람들은 툭하면 화내고 툭하면 이치를 따지는자 성격이 거친 자라고 에도사람들을 말했다. 어느날 여관에 온 미남 검술로가 방문하고 나는 그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저녁바람이 정원에 늘어진 싸리나무 가지들을 흔들어 빨강과 하양이 섞인 꽃들을 너울너울 춤추게 하고 있었다. 숨막힐듯한 그를 바라본 나의 모습을 자연에 아름다움과 빗대어 도세 (나카지마 우타코)가 처음 누군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을 표현하였다.
굳어 보이는 눈썹.콧날이 곱고 날렵하며. 뺨에 미소를 지그시 품고 있다. 살짝 마주친 그와의 만남에 부끄러워 피하기만 한다. 그의이름. 하야시 주자에몬 모치노리. 뭔가 생각에 깊이 잠긴 듯한 그의 눈빛을 가슴에 품고 있다. 어느날. 도세의 강아지 시시마루가 사라진날 이케다야 머슴 아저씨인 세이로쿠가 시시마루를 찾으러 나선다. 아씨? 걱정마세요.금방 찾아올게요라고 떠난 아저씨는 빈손으로 돌아온다. 시시마루가 사라져 야단 떨고 있는 도세에게 엄마는 말한다. "여울을 흐르다 바위에 부딪힌 급류처럼." 스토쿠인의 시를 읊는 어머니. 하지만 윗구뿐이다. "도세, 아랫구를 잊었니?" ..... "단자쿠에 적어서 매달아 두렴" 간절한 심정을 담아 시시마루 찾기를 염원한다. 도세는 간절함을 담아 매화 고목에 매달아 놓았다. 간절함이 닿았는지 시시마루는 하야시님의 도움으로 도세에 품에 안긴다. "갈라져도 끝내 다시 만나리...기다리던 님을 만난다, 로군요."단자쿠의 시를 읽은 하야시. 시시마루를 안아들면서 순간적으로 하야시 님의 손가락을 만진 것 같았다. 너무 애틋하면서도 조심있는 그들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만남이 시작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네.마침내." 도세에 마음의 소리는 그에게 닿았다. 그 분만은 만나고 싶다. 하야시 님을, 딱 한번만. 책에 그려진 매화의 꽃이 흩틀어 지는거 같다.. 하야시님을.. 기다리는 도세의 마음이 전해진다.

"조금 전에 중매인이 다녀갔다. 이번에는 인연이 없던 것으로 생각해 달라고 하더구나" 도세가 싫었었지, 상대방이 맘에 안든다는걸 듣고 난 도세. "거, 거절을 하려고 왔단 거예요?" 그날 얄밉게 아랫눈꺼플을 까 내리며 혀까지 낼롬 거렸던 도세. 예의가 아주 바른처자라고 비아냥을 받아 엄마는 도세로 인해 치욕을 겪는다. 도세는 오히려 잘 됬다고 좋아했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이젠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다...사무라이만 아니라면" 미토에 사무라이는 곤궁하다고 미토 출신이 워낙 이케다야를 오고가 많은 정보를 아는 어머니. 어머니의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기에 데릴사위로의 조건도 필요하나 하야시는 가독을 물려받아야 하므로 반대하신다. 미토 번 내부에 천구당과 제생당이라는 파가 나뉘어서 싸우는 불안정한 상황도 우려하는 어머니. 어느날, 이이 나오스케 일미통상 조약 맺었던 그의 가마 행렬에 큰변을 당한다. 하야시가 다이로를 습격한 가신일까 두렵고 혹시 죽을수도 있겠다는 우려속에 세이로쿠와 함께 하야시를 찾아나선다. 그를 찾아나서는 초조한 마음과 두려움이 도세를 덮쳐온다.
세이로쿠 아저씨의 도움으로 하야시를 만난 날. 살아있는 히야시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눈물을 훔친다. 미토 번은 천구당과 제생당이 나뉘어져서 싸우고 있고 히야시는 천구당파로 다이로를 치는 거사에 가담했지만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갔다가 부상을 당해 직접적인 행사에 가담하지 못했다. 사무라이에게는 습격에 가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한스러움과 사무로이로써 죽지못했던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도세는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애틋하지만 만남을 계기로 둘은 부부의 인연을 맺기로 하고 하야시는 도세와 미래를 약속한다. 세이로쿠 아저씨는 도세를 따라 옛부모의 고향 미토번으로 향한다. 도세의 엄마는 이케다야를 이을 후계자가 없자 여관을 접고 자신의 고향으로가서 소소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모든걸 버리고 하야시만을 생각했던 도세의 결혼생활은 시누이 데쓰와 생활하면서 도세의 고향과는 다른 사무라이집안이라 검소하고 곧고 굳은 성격에 도세는 힘든 생활을 해나간다. 천구당과 제생당의 싸움은 결국 제생당의 승리도 천구당의 집안 사람들이 감옥에 가서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천구당의 사무라이들의 치욕스러운 죽음인 참수에 처해가며 감옥에서 나쁜 소식들과 천구당의 패배소식에 도세와 데쓰도 기력을 잃어간다. 다행히 목숨만은 살았지만 하야시를 만나지 못한다.

산이 돌아오지 않으리 맹세하는 괴로운 이별
나라를 위해서라지만 적이 되어 버린 몸.

나라를 위해 주군을 위해가 아니라면
어찌 견딜까 오늘의 이별.

스승의 기록지 끝에 있는 절제된 마지막 그를 향한 마지막 시

님에게 사랑을 배웠네
그러니 잊는 길도 가르쳐 주오.

죽은 스승의 유언으로 알게 된 스미에 존재.
제생당에 딸인 걸 알게 되고
스승의 마지막 유언인 스미 씨의 삼남 요를 양자로 삼게 된다. 나카가와 스미 씨, 즉 이치카와 도세 씨의 아드님을 하야시 도세로 맞음으로써 히토에 대한 진혼으로 삼고자한다는 마지막 소원
을 남기며 마지막 숨을 거둔다.
서로가 다른 파로 죽고 죽이는 핏날의 시대의 스미와 나카지마 우타코는 서로를 결국 포용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으로 전쟁에서 힘
든시기 속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자신들만의 전쟁을 치른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등장인물도 많고 역사적인 내용들이 많아 낯설었지만 책 날개를 보면서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가니 글귀 하나 하나 시의 함축되있는 인물들의 심리가 먹먹해지는 그들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이였습니다.

아사이 마카테의 인터뷰를 통해 마지막 연가의 슬픈 사랑의 마음을 흩날리는 매화향과 함께 글을 전합니다.

“어느 잡지에 나카지마 우타코에 대해 짧은 문장을 쓴 걸 계기로 미토를 방문한 이후 본격적인 집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일종의 운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연가》는 역사소설이지만 단지 사실만 적은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연애소설이면서 여자들의 재생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녀들이 힘차게 살아감으로써 잃어버린 생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그러한 축척 덕분에 우리들도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걸 느낍니다. 여성분들이야말로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예요.”

매화의 꽃말.충실.고결.인내

슬픔과 고귀한 그녀의 사랑이 흩날리는 매화향을 품고 오늘도 덧없이 지고있도다.

#연가 #아사이마카테 #일본소설 #북스피어 #리딩투데이 #리딩투데이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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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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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낙태죄 폐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산부인과 지수의 이야기예요. 산부인과 선배인 희진언니를 따라 칼럼의 초고를 합평하는 모임을 간 지수는 낙태법을 위해 약물적 임신중지법이 관행적으로 시행되어온 공포 이미지 상쇄할 수 있는 여러자료들 약물성 안정성이 입증되있다는 내용을 토대로 낙태법 폐지에 찬성하는 자료를 모으는 자리에 간다. 하지만 지수는 이런 상황을 진행하면서도 불편한 기분, 혼란스러운 상황을 느낀다.

그날 새벽에 느낀 서늘함은 분명, 원래 해수와 나 사이에 있던 적당한 거리감과는 다른 무엇이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그 간극만큼이나 다르게 자라왔고 다르게 살아가도록 예정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동생 해수가 원하는 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려고 기다리던 지수는 응급실로 달려가는 무명 아기1, 무명 아기2를 마주한다.

너와 나 일수도 있는 무명 아기들 처럼 우리는 그렇게 각자 이 세상에 태어나고 각자의 길을 살아간다. 동생이지만 순간적으로 느낀 서늘함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벗어나 하나 하나의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느끼는 거리감을 표시한 것 같다. 이렇게 각자는 서로의 관계이기에 앞서 각자의 소중한 생명이라는 독립체인 것이다.

여성 자신의 삶과 가족과 무엇보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고심 끝에...


희진언니는 헌재 결정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중적인 공감대를 조성하는 것이 이 모임의 주된 목적이었고 언니에게도 자신을 믿고 모인 사람들을 비난과 편견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렇게 극단적인 부분만을 보고 희진언니의 의견에 전적으로 마음을 싣지 못합니다. 그만큼 낙태라는 부분이 여성의 자율권이라는 부분과 생명의 결정권이라는 두 가지의 논란이 계속 팽팽하게 진행되는 부분입니다.

해수 임신했단다. 해수 야는 아가 와 이래 철이 없노?
지수야! 그거 진짜 순간이고, 암것도 아니었다!
지수 니가 더 잘 안 아나? 요즘엔 기술도 발달했을 거 아이가?
다 - 준비된 다음으로 미루는 게 순서에도 안 맞나?

우리는 때때로 당위를 얻기 위해 나의 입장에 맹목적이게 되죠. '낙태죄를 폐지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헌재의 위헌 판결을 얻기 위해 계속 투쟁한다. '임신중지는 여성이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며 '임신중지는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고. 이에 반대되는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장면도 나오죠. 지수는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인물입니다. 아무리 대의를 위한 길이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짚어야 하고, 이런 논제는 복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지수의 엄마 또한 갑자기 덜컥 생겨버린 해수의 아이에 대해서 너무 쉽게 말하면서 아이를 낙태하길 권유하는 이야기를 지수에게 해버립니다.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엄마의 말. 안정적인 후에 가져야 한다는 말. 그렇게 쉽게 아이를, 태아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물건과 같이 취급되는 슬픈 현실을 들어낸다. 지운다는 말, 미룬다는 말로 작디작은 생명체에 우리는 차가운 칼날을 들이 밀 수 있는 존재일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구.
우리도 우리의 도덕적 우위를 잃으면 안 된다는 거.

임신중지가 언제나 예외없이 한 여성의 절실한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라는 고정관념은 그것이 항상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취혀져야만 하는 조치처럼 여기게 만들 수 있다. 피치못할 상황으로 인한 상황을 제외한 임신 자체에 대한 모든 상황을 여성이 짊어지고 가는 안타까움을 작가는 말하고자 했을겁니다.


해수에 결혼식과 뱃속 아이에 대한 작은 인사 한마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더더욱 너, 당신 이라는 고귀한 생명은 누구로 인해 결정되고 판단되는 존재 그 이상이다. 낙태죄가 있고 없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아야 한다. 꼬물거리는 손과 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당신들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영롱합니다. 책 표지 또한 자궁 초음파사진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의미있게 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가 건넨 최초의 인사를요.



단편이지만 다른 글들도 다들 깊은 생각과 사회적인 내용들을 작가는 날카롭지만 담담하고 부드럽게 글을 작성하였다.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라이파이. 부태복.컨프론테이션등 사회적인 이슈들을 각각의 다른 세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주인공들을 너무나 차분하게 풀어내 나가는 놀라운 심리서술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작은책 하나에 이런 많은 세계를 실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가볍지만 가볍지않은 세계에 이야기를 거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을 받아서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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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 마 어휘 한자어 1 놓지 마 어휘 한자어 1
신태훈 지음, 나승훈 그림, 정상은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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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마 시리즈 한자편! 교과한자어와 실생활한자어 같이 배우면 한자어렵지 않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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