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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헌은 소설가이다. 등단해서 책을 쓰는 그녀.
4남 2녀의 4째이며 위로 오빠 셋 이후 딸(헌)은 태어난다. 아버지에 사랑을 듬뿍받고 기뻐했다던 아빠. 하지만 그런 아빠가 헌이는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가족간에 단체 대화방에서도 그녀는 대답없는 관찰자일뿐이다. 딸을 잃고 난 후, 가족은 헌에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대화창에 참여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파 입원을 하게 되 여동생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게 된다.
혼자 있는 아빠. 혼자가 되어버린 헌이.
처음으로 헌이는 아빠를 찾으러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축 늘어뜨린 어깨, 그 어깨 위에 걸쳐진 허름한 점퍼, 구겨진 속 셔츠를 넣어 입은 헐렁한 바지..
생각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자 아버지와 나는 시선이 마주칠 뻔 했다. 나는 얼릉 저쪽으로 고개를 돌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없이 초라하게 보이는 그 모습에 쉽게 아는척을 못하는 헌이. 헌이는 늘 이런식이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그녀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딸에게 한없이 다가온다. 집에 도착할때 쯤이면 마중 나온 아버지는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도 혹시나 헌이 못 알아볼까봐 손을 들어 자신을 표현한다. 부모와 자녀는 이렇게 다른다. 부모는 붐비는 사람들 속 오로지 자녀만을 보지만 자녀는 붐비는 사람들속 비춰진 내 부모의 모습을 본다. 날 향해 손짓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날 향해 손짓하는 타인들의 모습에비춰진 부모의 모습과 나의 상황을 본다. 부끄럽다 창피하다는 식의 표현들에서 우리는 그들의 사랑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네 시장에서 헌이를 따라오던 주인없는 앵무새를 아버지는 참이라 이름 붙이고 말을 가르치며 정을 준다. 너 본 지 오래다! 를 외치는 앵무새. 아버지가 헌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앵무새를 통해 한다. 죽은 참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죽은 고모를 찾는 아버지. 아버지는 밤마다 자꾸 사라지고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눈에는 눈물자국이 있다. 남에게 항상 피해끼치고 싶지 않고 혼자 슬픔을 극복하는 아버지는 제대로 잠도 못자 기억도 없어져 가고 의미없는 했던말도 던진다.
내가 산낙지를 좋아한다고?
너 먹으라는 것이제.
이렇게 왜곡되는 것이 기억인데 내가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을 계속 믿어도 될까.
아버지 입맛 없어서 사드리라했던 엄마 말을 듣고 사왔던 산낙지에 대한 기억이 아버지는 헌이가 좋아하는 줄 알고 있는 기억. 헌이가 사온 산낙지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 속 헌이와의 추억이 잘라진 기억처럼 저장되어 아버지는 그때의 헌이와 산낙지를 같이 기억한다. 함께했던 순간에는 왜곡된 기억, 참과 거짓이었지에 대한 판단 따위는 없는 순수한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이었을 것이다.
거실에 있는 학사모 사진들.
큰 오빠,작은 오빠, 셋째 오빠, ,여동생, 남동생.
헌이의 학사모는 없다. 아버지에게 주지않았다. 이해가 납득이 되지 않는 아빠의 요구를 받아주기가 싫었다. 지금 세월이 흐른 비어있는 헌이에 학사모 빈공간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내가 그토록 들어주지 않은 쓰라림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는 이 마을과 이 집에 스며 있는 오래된 것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왜 필요할까라고 생각했던 생각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의미부여는 아버지에겐 중요하지 않다. 너희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한 학사모 사진이다.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해 세월이 흘러가면서 부모가 되어가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머리로 하는게 아닌 마음으로 해야되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현되지않는 그런 관계로 아버지와 헌이, 부모들과 자식들은 강한 실타래로 엉켜있다.
아버지의 몸에서 나던 소똥 냄새는 한때 우리들의 등록금이 되었다. 여름과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소똥 냄새 나는 손으로 이것은 셋째, 이것이 헌이 거... ...돈을 나누어 등록금을 맞췄다.
그 시대 때에 소는 부를 상징한다. 소 코 뚫는 것도 무서워서 못하던 아버지의 어린시절. 스무살에 결혼하여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소를 관리하고 소를 키우기위해 소 코에 코뚜레 해야한다. 그것도 무서워 벌벌 떨었지만 한번 잃어버릴뻔했던 소를 코뚜레하기로 결심한다. 소야 미안하다. 마냥 풀러놨던 소였지만 이제 잃어버리면 절대 안되는 소이기에 단단히 묶어둬야 한다. 아버지에게 소는 자식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재정적 버팀목이고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임감과 충실함으로 묶인 자신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큰오빠와 나만 이름을 불렀다. 둘째, 셋째 , 여동생이 이삐, 막내라고 했다. 아버지가 자식들 중 가장 의지하는 이는 누가 봐도 큰 오빠다. 아버지가 큰 오빠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하다, 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거 내가 해야 헐 일인데......라는 말. 나는 넷째가 아니라 독립적인 '헌이'였으니까.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도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참 행복했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 양식걱정하며 쌀독이 비어가는걸 보면서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 밥 먹는걸 보면
그게 또 살아가는 힘이라고 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편지 속 아버지가 되어가던 생생한 기록들이 있다. 작고 까맣고 또릿한 눈 속에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 작은 눈빛.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들의 목소리. 작은 손 맞잡고 걸어다니던 매 순간이 아버지는 감사와 환희였다. 아...바, 아빠..
졸졸 따라디니니까 조키도 하고 귀찬기도 햇다. 너를 떨치고 나오면 어디에 잇으나 아빠 아빠 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서 뒤도 도라보고 저 멀리도 보고 그랬다. 다시 너를 보려고 친구들을 두고 집으로 가곤 햇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딸을 데리러 학원에 갔다가 건너편에서 딸을 부르는 바람에 딸은 헌이(엄마)를 향해 건너 오다가 차에 부딪혀 사고를 당한다. 모든 일에 의욕도 없고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에게 위로받지않고 오로지 혼자의 삶에서 멈춰 있었던 그녀.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와 이야기하면서 헌이 또한 아버지에게는 사랑스러웠을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기보다 이제 받아 들이고 감싸준다. 헌이는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를 보호하러 왔는지 내가 보호받기 위해 왔는지 구분이 안 된다.'고. 헌이는
이제 아버지를 보는 순간을 넘어 아버지를 느끼고 아버지가 되어 본다.
삶의 끝자락에 있는 순간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문턱에도 아버지는 헌이를 향해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너희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고맙고 내 자식이였던것에 대해 고맙고 그렇게 매 순간 너희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소중했다는 거.
메마른 입술로 그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자식을 바라본다.
살아냈어야,라고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우리 또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당신이 있어서 감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큰 힘이 당신이라고... 당신의 주름과 당신의 눈물을 우리는 다 기억하고 느낀다고 우리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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