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쓰레기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하진의 소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특이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은 6.25전쟁 당시 참전한 중국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인이 쓴 한국전쟁이야기는 그동안 우리가 읽었던 한국전쟁과는 사뭇 달랐다. 주인공 유유안의 입을 통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했다.

 

다 알고 있듯 한국전쟁은 민족상잔의 비극이었고, 그 비극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우리 문제로만 인식했던 한국전쟁.. 그러나 그 전쟁의 상처는 우리 뿐 만 아니라 전쟁에 참전한 다른 나라 군인들과 그의 가족들까지 겪고 있는 문제였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싸우지 않고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와 제주도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이들 중국군의 죄목이다. 그들은 이 죄목으로 인해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이들을 통틀어 "전쟁 쓰레기"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들을 전쟁 쓰레기라 몰아무칠 만큼 중국공산당은 당당하고 떳떳한가? 국민당을 몰아내고 집권한 공산당은, 총 쏘는 방법, 체계가 잡히지 않은 군대를 의복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채 전쟁터로 보냈다. 전쟁 경험이 없는 지휘관들의 무능함과, 적진의 상태를 모른채 엉뚱한 명령만 내린 본국 당원들이 엄청난 숫자의 전쟁 포로들을 양상 시키는데 가장 큰 역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은 어느새 남의 나라 전쟁이 아닌 중국군들 사이에 이념전쟁으로 변해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은 끊임없이 부딪혔고,때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잔인한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이념은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종교며,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기도 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포로송환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충돌은 극심해진다. 전쟁포로가 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무모한 사건을 일으키곤 했다. 적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적에게 항복한것이 아니라 끝까지 투쟁했다는 것을 당에게 증명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쳐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본국송환을 거부한 채 타이완이나 제 3국을 결정하는 포로들도 있었다. 특히 본국을 거부한 포로들이 90%이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본국을 택한 포로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본국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때문이었다. 주인공 유유안 역시 홀어머니와 약혼녀 때문에 본국행을 택한다.

 

역사는 공산주의들이 늘 자기편보다는 적들에게 더 관대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소. 여러분은 그들의 중요한 적이 되어야만 품위있게 살아남을 수 있고. (중략) 이 수용소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이상 여러분은 공산주의자들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소. 왜냐하면 그들은 여러분이 중국을 치욕스럽게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이오. (중략) 여러분은 항의하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저는 언제나 조국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할 거요 '그렇다면 너는 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하지 않았느냐"

 

이 책을 읽으면서 국민당파 대장이었던 한슈의 말이 진실이 아니길 바랬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었고, 포로들이 왜 그토록 극단적인 행동과 두려움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은 사람의 심장을 빼앗아가고 영혼을 갈아먹었으며, 인간성을 말살시켰을 뿐 만 아니라  광기어린 독기만 남겨주었다.

 

유유안 눈에 비친 전쟁포로들은 본국에서도 한국에서 그리고 타이완에서도 완벽하게 환영받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이 점은 포로송환문제를 협상하는 자리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과 중국은 포로송환문제를 시급한 과제로 먼저 협상하자는 미국의 제의에 반대하고 영토문제를 시급한 과제로 선택했다. 중국이 포로들의 귀환을 요구한 이유는 오직 명예때문이었다. 수많은 포로가 발생한것도 수치인데, 그 포로들이 타이완을 선택한것은 중국으로서는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한국민 역시 부족한 물자덕에 인근마을에 와서 먹을것을 가져가는 중국군을 반기지 않았다. 타이완이 포로들을 데려가려는 이유역시 순수한 마음은 아니었다. 군전력상의 문제로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면 타이완 역시 조금은 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포로들은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갔다. 본국으로 돌아온 유유안과 그의 동료 창밍,샨민, 차오린 그리고 지도자인 페이샨의 결말은 씁쓸했다. 특히 포로생활동안 가장 적극적으로 공산당활동을 했던 챵밍과 페이샨의 결말은 조국에 충성한 자들에 대한 보상이 결국 이것인가? 충격이었다.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과 목숨을 맘대로 한다는 문제를 공산당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유유안의 말이 그대로 딱 들어맞았다. 

 

그들은 이념을 지키기 위해 편한곳, 성공할 수 있는 곳을 버리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것만 그들을 기다린건 배신자란 딱지 뿐 이었다. 이들중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유유안 역시 인생의 후회가 없는건 아니었다. 그토록 보고팠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약혼녀 역시 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이후 새로운 사람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타이완으로 건너가 큰 부자로 성공한 같은 포로수용소 출신 바이다지완의 고향방문 뉴스를 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고향마을에 초등학교를 세웠다는 이유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본국송환을 거부했던 대다수 사람들은 타이완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에 은퇴하고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융슝한 대접을 받으며 돌아왔다. 과거 전쟁포로들에게 배신자, 전쟁쓰레기라며 욕했던 사람들이 이젠 그들을 뜨거운 동포애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1980년 전쟁포로들이 복권될때까지 27년동안 전쟁포로 뿐 만 아니라 그 자녀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쓰레기 인생이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진 셈이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반역이란 제목도 배신자란 제목도 다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공산당이념을 종교처럼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믿고 복종했던 페이샨과 같은 사람은 대체 뭔가? 이념앞에서 사람의 목숨은 닳으면 새로 바꿔끼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모른채 끝까지 조국을 선택한 그들의 선택이 눈물나게 미련해보였고,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