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어쩐지 위로를 받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이시봉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장마가 와도 산책을 못 가도, 우울할 때나 주눅들 때도, 계속 우리가 함께할 거라는 생각. 그 마음이 무언가를 견디게 해주었다. 나는 이시봉을 품에 안은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 P70
때때로 인간의 역사와 동물 혈통의 역사는 이런 식으로 다르게 기술된다. 인간의 역사는 사건을 중심에 둔 채 쓰이지만, 동물 혈통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방점이 찍힌 채 기록되기 때문이다. 누가 태어나고, 누가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는가? 누가 돌봐주었고, 누구와 짝짓기를 했는가? 죽는 순간, 바로 옆에 누가 있었는가? 그 사실이 핵심을 이룬다. 그래서 이 역사는 사적이고 생략이 많으며 편협할 수밖에 없다. 생존을, 번식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 밝은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인간의 역사 또한 한 꺼풀 벗겨보면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 또한 구구절절 변명은 많지만, 늘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을. 그걸 숨기고 감추기 위해 이따금씩 엉뚱하게도 동물에게 화풀이해왔다는 것을.....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늘 그렇게 투쟁적이며, 피냄새가 진동한다. - P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