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P13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 P14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아무도 겨울 밭을 억지로 갈진 않잖아.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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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가치는, 추구할수록 고갈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영역에까지 퍼져나간다고 생각한다. - P263

나는 할머니의 말대로 글을 술술 잘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말에 아니라고 답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와 나의 삶이 멀어지면서 할머니가 내게 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때보다 적게 말하면서도 할머니는 내게 그때와 같은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글쓰기가 나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런 내 삶을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마음을 애써 그러쥐고 있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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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망각과 왜곡에 의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가해자들에게는 여지를 주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는 무력감과 차별을 안기는 방식으로. - P213

전쟁범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 그러한 노력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었다. 전쟁범죄를 묻어두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면, 전쟁범죄 가담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면, 아우슈비츠는 SS 대원의 말대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주장만으로 여겨졌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나치의 범죄는 그들의 손을 떠난 뒤에도 철저하게 완성되었을 것이다. - P217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침묵・・・・・・ 그는 그 침묵 속에서 나치가 인간을 파괴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상태는 아우슈비츠를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화학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작가로 다시 태어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기억하기를 선택했다.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침묵을 깨뜨리기로. - P221

‘무의미한 고통‘의 목표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갖가지 방식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안김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박탈하려는 시도였다. - P221

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사회의 인간성에 대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곧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 P237

기억한다는 건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삶에 대해 계속해서 듣는 일이다. 그 목소리를 판단하거나 규정하거나 멋대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듣는 것. - P244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것은 목숨이, 삶이 사라진 자리에 응당 진실과 사죄가 놓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나누고 싶지 않아서, 보고 싶지 않아서, 들어줄 인내심이 없어서, 혹은 깊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무참하게 대하는 사회적인 관성으로 저지른 폭력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비인간성을 우리는 똑똑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 P245

너의 고통은 나의 삶과 무관하다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도 그렇지 못한, 그럴 수 없는 사람들과 어떤 언어로도 분명히 설명될 수 없는 사랑이 존재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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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커다란 말 안에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면면이 담겨 있다. 그 얼굴을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면, 그 사람들의 얼굴을 지워버리기를 잘하는 폭력을 언제고 다시 용인하게 된다. - P210

억울한 사람들의 고통이 누적된 시간이 역사일까.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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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글로 쓴다. 이 이야기가 특별하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나의 진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상처뿐만 아니라 당신의 상처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 P178

고통은 파도처럼 마음에 들이쳤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쉼없이 마음으로 들어와서 자국을 내고,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내 잘못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노력했는데도, 잘해보려고 했는데도 겪어야 하는 상처들이 있다. - P187

불안과 두려움에 두 발을 딛고 선 나의 삶은 언제나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있었다. - P188

따져 묻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함께 느껴주는 행동은 아픈 사람을 자신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 마음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다. 비록 그늘지고 아픈 마음이더라도 그 마음을 억누를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데 억지로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된다. - P197

우리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모두 외로운 어린 여자아이였던 우리는 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고자 했을까. - P199

나는 언제나 소설쓰기가 깊은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처리하지 못했던 슬픔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며 소화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속 기억을 끌어내 어떤 애도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리라 희망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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