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망각과 왜곡에 의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가해자들에게는 여지를 주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는 무력감과 차별을 안기는 방식으로. - P213
전쟁범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 그러한 노력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었다. 전쟁범죄를 묻어두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면, 전쟁범죄 가담자들을 처벌하지 않았다면, 아우슈비츠는 SS 대원의 말대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주장만으로 여겨졌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나치의 범죄는 그들의 손을 떠난 뒤에도 철저하게 완성되었을 것이다. - P217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침묵・・・・・・ 그는 그 침묵 속에서 나치가 인간을 파괴했음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상태는 아우슈비츠를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화학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작가로 다시 태어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기억하기를 선택했다.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침묵을 깨뜨리기로. - P221
‘무의미한 고통‘의 목표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갖가지 방식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안김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박탈하려는 시도였다. - P221
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사회의 인간성에 대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곧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 P237
기억한다는 건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삶에 대해 계속해서 듣는 일이다. 그 목소리를 판단하거나 규정하거나 멋대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듣는 것. - P244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것은 목숨이, 삶이 사라진 자리에 응당 진실과 사죄가 놓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나누고 싶지 않아서, 보고 싶지 않아서, 들어줄 인내심이 없어서, 혹은 깊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무참하게 대하는 사회적인 관성으로 저지른 폭력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비인간성을 우리는 똑똑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 P245
너의 고통은 나의 삶과 무관하다고 가르치는 세상 속에서도 그렇지 못한, 그럴 수 없는 사람들과 어떤 언어로도 분명히 설명될 수 없는 사랑이 존재했다. - P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