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온다. 끈이 끊어질 때가. 아등바등도 인내도, 의지조차도 기력을 다할 때가. - P20

"맹독이든, 병균이든, 슬픔이든, 아픔이든, 여기에서는 모두같아. 모두가 아름다운 눈송이가 되지. 은혜로운 양식이자 생명의 기쁨이 되지. 이 아래에서는 모두가 다 같아지지."
그리고 고요했다. 눈발이 한층 짙어졌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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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굴은
눈물이 차오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 P231

신은 언제나 최악을 묻는다. 인간은 최악을 최선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믿음의 일이다. 신은 영원히 대답하지 않는다. - P236

그 무렵의 여행은 도망에 가까웠다. 사랑의 끝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앞만 있고 뒤는 없으므로 사랑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이 가시밭길이었음,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음을 그때 알았다. - P240

초상의 존재 이유는 거기 있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영원한 타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 얼굴은 무수히 많은 표정이 생동하는 장소이고 분명한 내 것이지만 정작 나는 내가 짓는 표정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얼굴을 그려나갈 수밖에 없다. 순간을 모아 한 생을 만들 수밖에 없다. - P247

인간이란

고통스러운 햇빛과 모진 역풍을 맞으며

죽음을 완성해가는 열매인 것일까.


석양은 가련한 인간을 향해 흘리는 신의 눈물 같다. - P252

기록해두지 않으면 공중으로 허무하게 흩어져버릴 장면들을 엮어 당신에게 꽃다발처럼 건네고 싶어요. 미래의 어느 날, 당신이 제가 건넨 꽃다발을 받아들고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 P273

창작자의 다른 이름은 ‘미래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세상에 그럼에도 무언가를 보탠다는 건 엄청난 낙관의 소산이자 미래 증명 행위다. - P273

폭발음도 없이 한 우주가 잠든 곳,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를 그러모으는 일, 나는 네가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믿지 않을까봐 두렵다, 네가 침잠하는 모든 시간에 언제나 한 사람이 곁에 있었는데도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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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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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흐르기‘ 위한 여행. 백지 위에서는 시로 멀리 가고 실제 삶에서는 비행기를 타든 기차를 타든 멀리멀리 가서 더 멀리가기를 늘 꿈꾸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자 여행이다. "모든 것은 죽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되 그것에 잠식당하지는 않는 것. - P154

어쩌면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의 이름들‘로 한 권의 사전을 편찬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펼치면, 색색의 기억들이 상연되는 극장.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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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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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는 일과 길들여지는 일. 두 꼭짓점을 분주히 오가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간다. - P25

시간은 삶을 무서운 속도로 갉아먹었고 모든 ‘아름다운‘ 순간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되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건 슬프고 고달픈 일이었지. 그사이 너는 작아지고 작아졌어. 내 기억의 유리병에 담길 만큼. - P52

사랑은 상대를 향해 한없이 기울어지는 마음이고 그 기울기가 크면 클수록 존재는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 P55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입술로 이미 죽어버린 것들과 모든 죽어가는 것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살 수 있기를. 모두가 끝났다고 말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 P64

우리 삶의 하루하루를 깨우는 한 방울의 물은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 흘러가버리는 순간순간에 촘촘히 수놓아진 보석들을 발견하는 일이 내겐 기도였다. 내가 걷는 길과 길들이 모두 기도의 장소들이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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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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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고 있다.
수면에서 굴절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중력이 물의 부력을 이기는 임계 아래로.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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