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며, 세상을 자기만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화가는 그리는 사람이기 전에 보는 사람이었다.
......그림은 우리를 화가들이 집요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놓은 그 시간, 그곳으로 불러들인다. 거기엔 미술사에 적힌 예술가가 아닌, 진정으로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고자 한 사람이 있다. - P7

걸작들은 망각의 어둠을 견딘 다음에야 ‘발견‘되었고 미술사에 한 자리를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연 것은 그림 그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향한 모험과 발견이다. 그러므로 작품은 바라보고 감탄하고 해석하며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 P8

치열하게 바라보며 힘껏 살아낸 순간들이 우리를 더욱 단단한 곳으로 옮겨놓는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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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이런 거군.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찰나의 자극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영영, 아주 사라진 것 같은 기억들도 사실 어딘가에는 남아 있으려나?"

그러다 문득, 해연은 언젠가 홀로 남을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상상의 배경을 어디로 설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착한 이곳일까, 아니면 떠나온 저곳일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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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을 보며 나는 종종 헷갈렸다. 내가 그를 응원하는지 아니면 질투하는지. 그에게 찾아온 한 방. 과연 나에게도 그런 게 올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지나가버린 건 아닐까?

더이상 달리는 것으로 부모님의 자랑이 될 수도, 달릴 때의 감각을 온전히 즐길 수도 없었다. 늘 가장 빨랐던 나는 그만큼 세게, 우스꽝스럽게 넘어졌다. 고작 겁에 질려 스스로를 옭아매는 방식으로. 내 뒤에 있던 친구들은 이미 저 앞으로 나아가 멀어져 있었다. 사실, 가장 견딜 수 없던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내가 더이상 트랙 위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

진실은 씁쓰름하고 비릿하면서 동시에 중독적인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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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 그거 계속했음 좋겠다. 타투인가 그거・・・・・・ 도망치지 말고.

내 허벅지에 손을 얹은 채,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거 할 때 너 참 좋아 보이더라. - P321

내가 질문하면 엄마가 겨우 답을 하고, 그 답에서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이런 대화 패턴이 언제부터 굳어진 걸까. 기점을 찾는 것마저 아득하다. 확실한 건 그렇게 모이고 모인 의문들이내 안에 결석처럼 굳어 이따금 아릿한 통증을 일으킨다는 것. 아플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질문거리를 찾고, 묻는다. - P348

엄마가 깎다 만 사과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정갈하게 깎인 과실이 내 편에만 놓여 있다. 이럴 때 마음은 참 쉽게도 뒤집힌다. 미워하다가도 불현듯 애틋해지고, 충분하다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해지는, 모녀관계란 원래 이렇게 변덕스럽고 불완전한 것이 아닌가. - P350

강의 막바지에 수강생 중 하나가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묻는다. 나는 이 질문이 늘 어렵다.

주인공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는 소설.

내 생각은 그렇지만, 이번에도 나의 입장 대신 앤 라모트의 문장을 인용한다.

인물 하나하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연민하는 소설이죠. 설사 악당일지라도요. - P355

괜찮아요. 참 힘드셨겠네요. 이렇게 달고 부드러운 말들이 왜 엄마 앞에선 나오지 않는 걸까. 담당자와의 통화를 끝내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엄마가 바라던 건 위로였던 걸까. 그래서 그렇게 성을 내고 돌아섰던 걸까. ‘남‘이라는 말까지 해가며. - P360

있잖아. 우리 둘째가 문덕이 나이였을 때 공장서 일하다 오른손 검지랑 중지가 잘렸어, 프레스에 눌려서. 그때 손가락을 찾을 수 없어서 접합도 못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걔가 그걸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더라. 내가 속이 상해서 왜 숨겼냐고 화를 내니까 걔가 그래. 누나, 무서워서 그랬어. 수술하면 그 돈 다 우리가 내야 하는데, 그게 무서워서 그랬어.

언니는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글을 쓰기로 했다고. 잘려나가고 감추어야만 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기 위해. - P381

어쩌면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수중에 쥐여지는 단돈 몇푼이 아니라 "너희들이 내킬 땐 언제든 머물다 가도 된다"는, "산도 보고 밭도 보고 사는 얘기도 나누며 숨 돌리고 가도 된다"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 P408

그들은 "어색하고 투박하지만 열렬히", 그래서 더 좋을 만큼 서서히 궤를 맞춰나간다. 누구 하나 제대로 찍히지 않은 단체사진 속 마스크 너머로 조용히 그러나 일제히 환한 웃음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은 그정도로도 충분하다. - P408

서로를 돌봄이나 가르침의 대상이 아닌 ‘비빌 언덕‘으로 여기며 함께 어우러지는 곳. 농촌의 미래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유토피아적 발상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세상이 더 나은 쪽으로 조금씩 변해감을 느끼기에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광경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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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거슬러가며 나는 생각했다. 왜 부부를 재종숙부나 숙모가 아닌 재종숙 부군과 부인이라는 기묘한 호칭으로 일컬었는지, 고씨 삼촌과 아버지가 벌인 일들에 왜 내가 더 긴장하고 송구스러워했는지, 왜 우리는 누군가에겐 관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매정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 P171

빈집과 노인만 남은 마을. 그런 노인조차 죽거나 병들어 서른명도 채 안 남은 마을. 이런 곳에 무얼 보수하고 구축한들 그건 또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이곳은 불모지다. 풀도 사람도 자라지 못하고 그대로 말라죽는 땅. 할머니가 카메라에 담고 있는, 잎사귀를 늘어뜨린 채 생장을 멈춘 풀들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 P246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도 계속해 짐벌을 잡았다. 평생 찍혀본 적만 있었지—그것도 손에 꼽는다고 했지만—찍어본 적은 없었다고, 잘 찍어서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이곳에서 다들 얼마나 건강히 지내는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P247

선생님, 나 한 번만 다시 알려주면 안 될까?

늙으니 머리고 손끝이고 전부 굳었다고 골을 내면서도 할머니는 못하겠단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이걸 또 언제 처음부터 다시...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누르고 누르다 나도 모르게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

응? 왜?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보았다. 문득 헌진의 말이 떠올랐다. 적당히 하라고. 괜한 데 힘 빼지 말고.

헌진의 말처럼, 나는 정말 애먼 데에 힘을 빼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늘 그랬으니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복직에 희망을 걸고, ‘여로가 평안하길 바란다‘는 넉넉한 덕담을 건넬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다시 도래하길 바라고, 희미해지는 우정이 미약하게나마 지속되길 고대하고…… 아둔하고 무모하게.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 P250

처음 목공소 지었을 때는 그저 목재 떼어와서 적당히 자르고 못만 박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이렇게 나무끼리 맞물릴 수도 있다는 건 여기 어르신들한테 배운 거야. 느슨해 보여도 이렇게 하면 이 면과 저면이 맞닿아서 더 단단히 지탱할 수 있거든. 시간이 지나도 나무가 뒤틀리지 않고, 녹도 슬지 않고 신기하지. - P257

더디고, 때때로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같이하는 게 더 좋다고, 느리지만 하나하나 일궈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삼촌은 여기가 좋아.

.....좋아서,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 P257

사공 참 쓸데없이 많네.

......왜? 좋지 뭐. 사공이 많으면 배를 산으로도 끌고 간다잖어. - P259

죽은 것처럼 봬도 이렇게 다 살아 있잖아. - P266

뭔데, 뭐가 그리 웃겨. 해조 할머니와 영식삼촌, 관심 없는 척 무심하던 헌진까지도 슬그머니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데스크톱을 둘러싼 채 둥글게 모여 선 이들을 보며 점을 쳐보았다. 이 무모함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가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그래도..... - P271

다 여름 한철에만 피는 꽃들이다. 그래서 다들 꽃 이름을 몰라.

언제 피고 졌는지도.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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