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로를 거슬러가며 나는 생각했다. 왜 부부를 재종숙부나 숙모가 아닌 재종숙 부군과 부인이라는 기묘한 호칭으로 일컬었는지, 고씨 삼촌과 아버지가 벌인 일들에 왜 내가 더 긴장하고 송구스러워했는지, 왜 우리는 누군가에겐 관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매정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 P171

빈집과 노인만 남은 마을. 그런 노인조차 죽거나 병들어 서른명도 채 안 남은 마을. 이런 곳에 무얼 보수하고 구축한들 그건 또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이곳은 불모지다. 풀도 사람도 자라지 못하고 그대로 말라죽는 땅. 할머니가 카메라에 담고 있는, 잎사귀를 늘어뜨린 채 생장을 멈춘 풀들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 P246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도 계속해 짐벌을 잡았다. 평생 찍혀본 적만 있었지—그것도 손에 꼽는다고 했지만—찍어본 적은 없었다고, 잘 찍어서 엄마가 어떻게 사는지, 이곳에서 다들 얼마나 건강히 지내는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P247

선생님, 나 한 번만 다시 알려주면 안 될까?

늙으니 머리고 손끝이고 전부 굳었다고 골을 내면서도 할머니는 못하겠단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이걸 또 언제 처음부터 다시...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누르고 누르다 나도 모르게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

응? 왜?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보았다. 문득 헌진의 말이 떠올랐다. 적당히 하라고. 괜한 데 힘 빼지 말고.

헌진의 말처럼, 나는 정말 애먼 데에 힘을 빼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늘 그랬으니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복직에 희망을 걸고, ‘여로가 평안하길 바란다‘는 넉넉한 덕담을 건넬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다시 도래하길 바라고, 희미해지는 우정이 미약하게나마 지속되길 고대하고…… 아둔하고 무모하게.

애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 P250

처음 목공소 지었을 때는 그저 목재 떼어와서 적당히 자르고 못만 박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이렇게 나무끼리 맞물릴 수도 있다는 건 여기 어르신들한테 배운 거야. 느슨해 보여도 이렇게 하면 이 면과 저면이 맞닿아서 더 단단히 지탱할 수 있거든. 시간이 지나도 나무가 뒤틀리지 않고, 녹도 슬지 않고 신기하지. - P257

더디고, 때때로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같이하는 게 더 좋다고, 느리지만 하나하나 일궈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삼촌은 여기가 좋아.

.....좋아서,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 P257

사공 참 쓸데없이 많네.

......왜? 좋지 뭐. 사공이 많으면 배를 산으로도 끌고 간다잖어. - P259

죽은 것처럼 봬도 이렇게 다 살아 있잖아. - P266

뭔데, 뭐가 그리 웃겨. 해조 할머니와 영식삼촌, 관심 없는 척 무심하던 헌진까지도 슬그머니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데스크톱을 둘러싼 채 둥글게 모여 선 이들을 보며 점을 쳐보았다. 이 무모함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우리가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그래도..... - P271

다 여름 한철에만 피는 꽃들이다. 그래서 다들 꽃 이름을 몰라.

언제 피고 졌는지도.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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