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하는 나날들 리뷰

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2019년 '올해의 책'을 휩쓴 베스트셀러.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조율하는 나날들>을 읽어보았다.

이 책의 작가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미국의 2세대 대만계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정신질환을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 이후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뇌 영상 연구원으로 일했다. 미시간대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2016년 그레이울프 프레스 논픽션상 수상작이자 첫 에세이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정신질환 중에서도 특히 치명적이라고 알려진 조현병에 관해 당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한다.
작가 자신이 조현병 환자이자 뇌 영상 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해온 이력으로 인해 자신이 복용해왔던 온갖 약들의 종류와 부작용 그리고 단순 조현병이 아닌 여러 가지 정신질환에 대한 각종 용어들이 책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서 책을 읽다 보면 생소한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낯선 용어들 밑에는 번역자가 번호와 함께 하단의 각주에 따로 설명을 기재해 놨지만 한번 읽어서는 무슨 약이며 어떤 병인지 조금 이해하기 힘들기는 하다.
작가가 정신병 진단을 받은 처음부터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들, 그리고 수많은 의사들과의 상담과 치료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있는 에세이이다.

내 키는 까치발로 섰을 때 겨우 2층 침대에 닿을 정도였지만, 스튜어트를 보기 위해서 몸을 최대한 길게 늘렸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괜찮아" 스튜어트는 눈을 꼭 감은 채 작은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불편함에 몸을 떨었다. 나는 긴장을 풀라고 말하며 손바닥으로 그의 옆머리를 쓰다듬었다. 중국 자장가를 콧노래로 불러주었다. 그렇게 계속 거기 서서 쓰다듬고 콧노래를 하고 속삭여 주자, 스튜어트는 점점 차분해지더니 이윽고 잠이 들었다. (본문 139 부분 발췌)
작가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진 아이들의 캠프에 선생님으로서 참여해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돌보는 과정이 책에 기술되어 있는데 엄마가 되길 포기했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과정에서 모성애를 느낄 수 있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정신질환이 유전적인 성향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작가는 본인의 이런 정신질환이 엄마로부터 유전되었다고 하며, 본인의 정신질환이 아이에게 대물림될까 봐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는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수년간 환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이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깜박거리는 신호를 몇 번 보거나 이따금 큰 박수 소리가 들릴 때도 있지만,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들이나 으스스 한목소리를 감지한 적은 없다. (본문 p.296 부분 발췌)
멀쩡한 정신으로 사는 나조차 글 쓰는 게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장편도 아닌 에세이를 써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정하고 추가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완성도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작가가 이 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가졌을지 감히 상상조차 안된다.
책에는 전반적으로 정신질환이 조현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증과 우울증 PTSD 같은 다양한 유형의 정신질환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본인의 연구 경험과 병력, 그리고 다른 환자들의 정신질환 증상 등을 예로 들면서 담담한 필체로 글을 써 내려갔다.
필체에서는 담담함과 연구원으로서의 날카로운 분석력이 느껴지는데 정작 읽는 사람은 정신질환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안겨주었던 책이었다.

이 책의 리뷰는 출판사의 서평단으로서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오늘의 한문장] 조율하는 나날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수년간 환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이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깜박거리는 신호를 몇 번 보거나 이따금 큰 박수 소리가 들릴 때도 있지만,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들이나 으스스 한목소리를 감지한 적은 없다

[오늘의 한문장] 조율하는 나날들

영화 속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증언을 맡은 케네스 캐시미어박사는 "조현병은 인류의 가장 심각한 병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이연구된 정신질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조현병 그 자체는 위험한질환이 아닙니다. 

[오늘의 한문장] 조율하는 나날들

여기서 ‘당신들이 누구인지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에달려 있다. 클리닉의 그룹 리더 중 한 사람인 헨리는 ‘고기능 조현병 환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청중 대부분이 10년간 매주 모임에 참여해 왔다고 했다. 나를 작은 회의실로 안내하면서 건넨 그 말속에 자부심이 담겨 있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경계에서 리뷰

세상의 경계에서
미카이아 존슨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책 소개>
380개의 지구 가운데 무려 372개의 지구에서 나는 죽었다. 아니, 이제는 373개로 늘어났다.
특권과 불평등, 정체성과 소속감을 탐구하는 멀티버스
다른 평행우주로 횡단할 수 있는 기술이 개
마블의 멀티버스 세계관을 소설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다. 멀티버스 세계관은 마블의 다른 시리즈뿐만 아니라 도서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듯이 최근 발간되는 신간 도서에서는 멀티버스를 주제로 쓴 작품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디즈니 플러스의 '로키'처럼 주인공 카라멘타는 멀티버스를 여행한다.
주인공은 와일리시티의 엘드리지 연구소에 고용된 '횡단자'이다. 소설 속에서 횡단자들은 과학자들을 대신해서 다중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지칭하며, 이 '횡단자'들은 유색인종 그리고 주로 가난한 지역 출신으로 채용되어 과학자들 대신에 위험을 무릅쓰고 신분 상승의 의지를 불태우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차원의 지구를 넘나든다.

이 책에는 다른 지구의 '나' 넬라인을 임무차 방문했던 175호에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카라멘타가 175호 지구의 운명에 관여하게 된다. 임무에서 와일리시티로 돌아온 카라멘타에게 어느 날 '나는 175호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정체불명의 쪽지를 받게 되고 이 쪽지의 주인공을 찾던 과정에서 카라멘타는 큰 결심을 하게 되는데...

소설에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의 흐름이 멀티버스인 만큼 읽을 때 집중하지 않으면 누가 누구였는지 혼란스럽기 때문에 자칫 정신 줄 놓고 있었다가는 내용 이해가 안 될 수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딴짓하거나 한눈팔면 안 된다.
멀티버스가 열리고 380개의 지구가 존재함에도 여전히 소설 속의 와일리시티는 경제적 여유로움이 세습되는 특권층과 빈곤에 시달리는 계급이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이며, 그 안에서도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주인공은 신분 상승을 꿈꾸며 엘드리지 연구소에서 '횡단자'로 일하고 있다.
사회 및 인종적 불평등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와일리시티의 세계관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사회 문제와 다를게 없기에 작품속에서 비춰지고 있는 갈등의 문제들은 작가가 와일리시티속 계급사회를 빛대어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경고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 책의 서평은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은 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