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3 - 박경리 대하소설, 4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희한하게 토지는 새로운 부가 들어가면

그 처음 반권을 넘기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에 딱 그 반권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정말 술술 읽힌다.

이 반권의 수수께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토지13권은 암울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광주학생사건을 시작으로 평사리 아이들이

붙잡히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을 계기로 만고의 역적이 영웅으로

되살아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쓰리다.


* 특히 광주학생사건은 이 일을 계기로

이듬해 3월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운동이고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이다.

이 학생사건 이후에 윤국이는 크게 방황했다.

방황하는 윤국이의 모습에서 길상이의 어릴 적 모습이

얼핏 보이는 듯해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또 다른 암울한 사건으로는

평사리에서 30여년만에 다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우발적인 범죄지만 정월 초하루에 벌어진 사건은

평사리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며 공포였다.

이 일로 홍이가 다치게 되고, 누군가는 그 옛날

최참판댁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시작은 작은 오해와 말싸움이었으나

이내 큰 사건으로 벌어진 모습에

꽤나 또 마음이 쓰렸다.

이 이야기 또한 전혀 없었던 일, 혹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아리고 아린 마음 뒷편으로 이번 편에서는

감옥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를 찾은 명희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그리고 오가타 지로와 조찬하가 얘기하는

조선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 특히 그중에서도

나쓰메를 자주 언급하신 작가님 덕분에

일본 문학이야기가 흥미로웠다.


* 식민지의 나라이나 우리의 온돌을 극찬하는 오가타를 보며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또 한번 감탄했다.

괜히, 나쓰메 소설을 한번 찾아 읽어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고.


* 일본과 조선, 만주와 중국, 러시아까지 오가며

무대가 굉장히 넓은 토지.

가끔은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게 맞나,

내가 작가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주옥 같은 문장들에

죽기 전에 한번은 전권 필사에 도전해보리라!

하는 막연한 다짐을 할 때도 있다.


* 흔들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이 흔들린다.

토지를 13권까지나 읽었지만 늘 드는 생각은

언제쯤이면 이들이 마음 편히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다.

역시 해방이 되어야 하나.

속도가 더뎠던 13권이니만큼

다음 14권은 더 수월하게 읽히길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렌디피티
요기 허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소설 #세렌디피티 #요기허 #아프로스미디어 #협찬도서


*  아프로스 미디어에서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본 책,

『세렌디피티』.

‘운 좋은 발견’, 혹은 재수 좋게 찾아온

우연한 행운을 뜻하는 말이다.

복권처럼 예상치 못한 행운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지만,

이 소설이 내미는 세계는 제목만큼 반짝이지 않는다.


* 책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건 행운이 아니라,

어딘가 깊은 구렁 속을 더듬으며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P시에서 임상 심리 전문가로 일하는 심동만.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직업과 일상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생각보다 훨씬 위태롭다.


* 희귀병인 스틸씨병으로 인한 만성 통증,

그리고 그 병이 남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상처.

외로움과 고독이 깊어지던 밤,

막내동생처럼 생각하던 미영이

깔아둔 데이트 앱을 열게 된다.

그 이름이 바로 ‘세렌디피티’다.


* 그곳에서 동만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다.

파병 미군 ‘케니’.

단조롭고 고독한 동만의 일상에

그는 메시지 몇 줄로 온기를 불어넣는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남자였지만,

그가 건네는 ‘사랑’이라는 말 속에서

동만은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 있고,

어딘가에 필요로 되는 존재임을 느낀다.


*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케니의 오랜 친구라는 조니로부터

케니가 작전 중 무장 조직에 납치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몸값으로 요구된 돈은 10만 불.

동만은 망설임 없이 돈을 보낸다.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


* 하지만 일주일 후, 다시 온 연락.

몸값은 50만 불로 뛰어올랐다.

처음 10만 불을 너무 쉽게 보낸 탓일지도 모른다.

조니는 지금 케니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동만뿐이라며 그녀를 압박한다.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거액임에도,

먼 곳에서 고통받고 있을 케니를 떠올리면

동만은 외면할 수 없다.


* 결국 그녀는 직접,

50만 불을 들고 케니가 있다는

무법지대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 책을 읽는 내내 헛웃음이 났다.

‘저걸 정말 진심으로 믿는다고?’

그것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케니는 비록 인터넷 너머에 있었지만,

그녀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원하던 것을

건네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문득 20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길에서 번호를 묻던 사람들,

하나같이 “마음에 들어서요”라고 말하던 얼굴들.

‘나를 언제 봤다고?’라는 생각에

나는 단 한 번도 번호를 준 적이 없다.

얼굴을 보고도 믿기 어려운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대화 몇 번으로 믿어버리는 현실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왔다.


* 최근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캄보디아 사건,

데이트 앱을 이용한 사기와 로맨스 스캠들.

이 책을 읽으며 그 모든 사건들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이런 범죄가 살인만큼이나 나쁘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빼앗는 대신,

그들은 인간의 가장 아픈 상처를 파고들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린다.


*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외로움이 얼마나 쉽게 함정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의 ‘필요함’이

얼마나 잔인하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믿은 게 문제가 아니다.

믿고 싶을 만큼,

너무 오래 혼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로맨스처럼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스릴러보다 더 서늘해진다.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특별한 악인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외로움과 결핍이라는

너무 현실적인 감정을

정확히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소설은

“왜 속았을까”가 아니라

“왜 믿고 싶었을까”를 묻는다.

사랑을 믿고 싶은 사람일수록,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이야기.

『세렌디피티』는

행운의 얼굴을 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며,

읽고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읽고 난 뒤에도 계속 남는 경고문이다.


#데이트앱 #인질 #로맨스스캠 #로맨스스릴러 #경고 

#외로움 #사기 #심리소설 #책추천 #책리뷰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소설 #시즈카할머니에게맡겨줘 #나카야마시치리 #블루홀6

* 오랜만에 잡아든 시치리 형님의 책.
비웃는 숙녀 시리즈를 읽을까,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를 읽을까 고민하다가
요즘 내란 재판 소식으로 뉴스를 챙겨보는
날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시즈카 할머니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렇게 꺼내 든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
뭐든지 알고 있는 우리 시즈카 할머니는
이번엔 대체 뭘 알려주실까.

* 경시청 수사1과 형사 가쓰라기 기미히코는
최근 윗선의 신임을 얻고 있다.
은혜를 입었던 전 상사가 범인으로 몰린
경찰 살해 사건을 해결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 사건은 결코 그 혼자의 힘이 아니었다.

* 가쓰라기의 비밀 파트너는
법률가를 지망하는 여대생 마도카.
사건이 막힐 때마다 그는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고,
마도카는 특유의 시선으로 사건의 틈을 짚어낸다.
현장을 함께 다니며 은근히 쌓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팽팽한 수사 속에서 잠깐 숨을 돌리게 하는 온기가 된다.
그리고 언제나 결정적인 실마리는,
가장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 문제는 공이었다.
사건을 해결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모든 공은 가쓰라기에게 돌아갔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는 마도카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마도카 역시 사과한다.
사실 마도카에게도 꺼내지 않은
비밀 병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 마도카의 지혜 주머니는 그녀의 할머니,
전직 재판관 고엔지 시즈카.
마도카가 보고 듣고 온 사건의 조각들을 들은 시즈카 할머니는
때로는 노련한 법률가로서,
때로는 손녀를 걱정하는 할머니로서
사건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을 동시에 꿰뚫는다.

* 책에 담긴 다섯 개의 사건은 경찰 살해 사건을 시작으로
노부인 살인, 사이비 종교,
외국인 노동자, 군부 독재까지 이어진다.
겉으로는 모두 살인 사건이지만,
그 속에 놓인 질문은 제각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종교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권력은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시즈카 할머니의 말들은 설교처럼 들리지 않는데도,
읽고 나면 묘하게 마음에 남는다.
지금의 현실과 겹쳐 보이기에
더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각기 다른 사건을 지나며,
크게는 마도카와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반전.
하… 진짜 마녀가 맞았네.
그동안 시즈카 할머니가 던져왔던 말과
시선들이 한순간에 다시 읽히며,
이 할머니가 왜 ‘모든 걸 알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 이누카이처럼 반가운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반갑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인물이
나타날지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마도카와 가쓰라기의 간질간질한 로맨스는
차가운 현장에 온기를 더하고,
손녀를 향한 시즈카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촌철살인을 날리는 재판관 고엔지 시즈카의
모습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사건 너머의 사람과 사회,
‘정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분명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다.
아— 할매요.
사랑합니데이♥

* 출판사 도장깨기 65/95


#출판사 #도장깨기 #시즈카할머니시리즈 #경시청 #형사

#여대생 #콤비 #지혜 #주머니 #비밀병기 #살인사건

#시치리월드 #마녀 #재판관 #할매 #알라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2
강미강 지음 / 청어람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소설 #배롱나무처럼붉은색 #강미강 #청어람

* 바로 이어 읽어본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2권.
흐뭇하게 지켜보던 개차반 세자와
오만방자한 의녀의 내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신비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로 마음먹은 날,
왕은 갑작스레 자리 보전하며 눕게 되고
세자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이어 왕은 오래전부터 점찍어 둔 세자빈이 있다며,
자신만의 ‘삼간택’을 통과한 인물의
기량이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감이 왔다.
왕이 점찍은 세자빈이 누구인지.

* 결국 왕은 일어나지 못한 채 승하하고,
세자는 자연스레 보위를 물려받는다.
선왕의 마지막 날 약을 올렸던 신비는
어쩔 수 없이 궁을 떠나게 된다.
아니, 사람 목숨이야 하늘에 달린 걸 어쩌라고요.
아무튼 꼰대들.

*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그날 끝내 닿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주한다.
신비는 자신의 이름과 태생,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담히 꺼내놓는다.
그 고백은 한 사람의 과거를 넘어,
이 관계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열쇠처럼 느껴진다.

*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왕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던 어머니, 폐비 연씨가 있었다.
아비의 말만 믿고 자신을 버렸다고 여겼던 어머니.
오해와 단절, 그리고 너무 늦게 마주한 진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가 믿어왔던 세계는 조용히 무너진다.

* 신비는 그가 성군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방을 내밀었지만, 그 처방을 받아든 병자는
그것을 독으로 받아들였다.
선왕이 가장 아끼던 것을 스스로
망가뜨리며 자멸해가는 왕.
신비를 위한다면서도 신비가 살아온 길을 부정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머니를 몰아붙이던
아비의 모습을 닮아버린 그를 보며,
신비는 난생 처음으로 병자를 포기하고 궁을 떠난다.

* 그의 선택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 선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분명히 보였다.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못한 채 남겨진
왕은 점점 폭군이 되어간다.
피로 궁을 물들이며 그는 왕이 아니라 상처
그 자체가 된 인간처럼 변해간다.
먹고 마시고, 어머니의 품을 흉내 낸 이를 곁에 두면서도,
신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모순된 모습이 오히려 더 참혹하게 다가온다.

* 그리고 이쯤에서야 확신했다.
이 이야기가 연산군과 폐비 신씨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을.
1권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휘와 생모가 달라 ‘아닌가?’ 싶었다가,
폭군이 되어 하는 일을 보며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이 작품은 연산군을 그대로 다시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연산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을 묻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잔인하다.

* 과거 신비가 받았던 복숭아와,
그것을 건넨 사람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극적인 장면은 아니었지만,
복숭아를 받았으니 오얏으로 갚겠다는
신비의 마음을 끝내 알아주지 못한
왕의 어리석음이 가슴을 후벼 팠다.
나 역시 신비와 함께 마음고생을 한 기분이었다.

* 지 멋대로 ‘삼간택’이라며 시험을 내린 선왕을 보며,
궁에서 난 사내들은 하나같이 다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상대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은 채,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선택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씁쓸했다.

* 보통 연산군 서사는 생모인
폐비 윤씨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작품은 그의 배필이었던
폐비 신씨와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는 정치보다 사랑을,
광기보다 선택의 순간을 오래 붙잡는다.
‘그때 조금만 다른 결정을 했다면.’
그 생각이 끝까지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 1권에서는 흐뭇해서 배알 꼴리게 하더니,
2권에서는 눈물과 콧물을 쏙 빼놓으며 진을 다 빼놓는다.
사극 로맨스를 기대하고 펼쳤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이 사랑은 마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병자의 징그러운 상처도 보듬어주는 신비처럼,
고통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고 짠하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오래 남는다.
한겨울인데도, 붉은 배롱나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삼간택 #과거 #연산군 #폐비신씨 #광기 #폭군
#로맨스소설 #시대극 #로코 #조선 #로맨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롱나무처럼 붉은색 1
강미강 지음 / 청어람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소설 #배롱나무처럼붉은색 #강미강 #청어람

* 오랜만에 애틋한 로맨스가 읽고 싶어
늘 그랬듯 제목과 표지만 보고 주문한 책.
그런데 받아보니, 어머나.
〈옷 소매 붉은 끝동〉을 쓴 작가님의 신작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붉은색’이 들어간 제목.
이번 작품의 붉음은 배롱나무,
즉 백일홍에서 비롯된 듯하다.
또 어떤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실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 여인들이 아파도 남성 의원의 치료를
거부하다 병을 키우는 일이 잦아지자,
평민이나 천인 중에서 선발된 의녀들이 등장한다.
이제 막 간병의녀가 된 신비에게는
살면서 몇 번 오지 않을 기회가 찾아온다.

* 내의녀 자희가 건넨, 믿기 힘들 만큼 좋은 기회.
얼마 전 낙마로 두 다리가 부러지고
오른손조차 쓰지 못하는
세자의 간병의녀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자희의 말이 자꾸만 약장수가 치는 대사처럼 들린다.

* 신비는 동궁전에 들어가 세자와 대면하는 순간 깨닫는다.
자희가 정말로 ‘약을 팔았다’는 사실을.
동궁전의 세자는 병자가 맞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개차반 같은 성격이었다.
툭하면 나가라, 꺼지라 하고
툭하면 애써 달인 약을 엎어버리며
툭하면 문을 걸어잠근다.

* 신비는 이를 병자가 부리는 짜증이라
여기며 묵묵히 받아낸다.
그리고 세자의 틈바구니에 비집고
들어갈 방법을 궁리한다.
조각 같은 외모에 처음으로 미소가 번진 날,
세자는 신비가 준 약을 마신다.
침도 싫다, 약도 싫다, 밥도 싫다.
늘 ‘싫다’와 ‘안 한다’뿐이던 세자의 고집을 꺾은 신비에게
모든 이들의 기대가 쏠리고,
왕은 그 노고를 치하해 상까지 내린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직감했다.
세자는 이미 신비에게 마음이 있다!
얼레리꼴레리~!!!

* 신비가 세자를 움직인 비결은 다름 아닌 오만방자함이었다.
나가라 하면 버티고, 꺼지라 하면 다음 날 또 나타난다.
약을 엎으면 더 넉넉히 준비하고,
문을 잠그면 어떻게든 다시 자신을 보게 만든다.
그렇게 세자는 신비에게 곁을 허락하고,
신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간병을 이어간다.

* 그러던 어느 날, 신비는 원치 않은 내기를 하게 된다.
신씨 성의 관비라는 뜻으로 불리다
그 이름이 그대로 굳어버린 사정을 알게 된 세자는
신비에게 진짜 이름을 알려달라고 한다.
대신 자신 역시 ‘이운’이라는, 휘가 아닌
진짜 이름을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 신비는 이 제안을 기회로 만든다.
동궁전 앞뜰의 배롱나무 가지를 꺾어 화분에 옮겨 심고,
첫 꽃이 필 때까지 세자가 오른손을 움직이면 세자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패배로 하자는 내기였다.
이 내기는 ‘보통의 사내로 살길 바라는’
왕이 지켜보는 앞에서 맺어진다.

* 사실 두 사람에게는 진짜 이름 말고도 숨겨진 비밀이 있다.
세자는 정통성이 부여된 다음 왕이지만,
그 안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가 있을 뿐이다.
늘 성취보다 포기가 빨랐던 아이,
아이인 채로 몸만 자라버린 사내가
빛과도 같은 여인을 만난다.

* 신비 역시 관비가 되기 전의 이력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여인이다.
과거는 지워졌지만,
복숭아를 받았으니 오얏으로 갚아야 한다며
왕이 내린 면천의 기회조차 거절하고 세자의 곁에 남는다.
자신의 장점을 ‘붙임성이 좋고, 잘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왕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여인.
자신이 빚어낸 한 줌의 빛이라도
세자에게 내어주겠다는 여인이
어린 아이를 품은 사내를 만난 것이다.

* 세자와 신비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광대가 승천해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신비가 숨긴 과거는 대략 짐작이 가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2권에서 확인해야 할 듯하다.

* 의녀는 여인의 치료를 돕는 존재였지만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불려가고,
궁녀가 죄를 지으면 체포 역할을 맡으며,
여인으로서 남성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추잡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 세자와 신비의 티키타카와 로맨스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 속 의녀의 처지,
궁중 암투,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될 수 없는
왕과 세자의 관계까지—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이제, 빨리 2권을 보러 갈 차례다.

#배롱나무 #백일홍 #세자 #사극 #로맨스
#의녀 #내기 #로코 #로맨스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