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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 싸롱
고수리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 펀딩으로 책이 올라 왔을 때,
내용도 보지 않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고민없이 구매했던 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경성'을 떠오르게 하는
책 분위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 그렇게 바쁜 일정들 틈에서 보관만 하다가
겨우 꺼내 들었던 책.
요즘 이유도 모른 채, 무기력하고
우울해 지는 나의 기분과 상황을
바꿔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 '싸롱'이라 함은 미용실이나 고급 의상실 같은
상점의 의미도 두지만 대저택의 응접실,
과거 상류 가정 응접실에서 흔히 열리던
작가, 예술가들을 포함한 사교 모임이라고 하던데,
왜 여기는 첫 눈이 오면 열리는걸까?
* 붉은 루비 같은 홍월이 뜨던 밤,
첫 눈과 함께 까멜리아 싸롱이 문을 열었다.
반 백 년 만의 홍월과 함께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이
누구일까 생각하며 싸롱 안으로 들어갔다.
*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굴곡이 있다지만
진아처럼 바닥을 기는 인생이 또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 받은 진아는
보육원에서 10대를 보냈다.
19살이 되어 보호가 종료되고,
지원금을 들고 차디찬 거리로 내몰렸다.
* 먹고 살기 바빠서 꿈을 꿀 시간도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도 잘 버티길 바랄 뿐.
출근을 하기 위해 늘 타던 지하철을 탔다.
잠깐 졸았나?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눈을 떠보니 열차는 함박눈이 내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 비현실적인 풍경에 진아는 화가 났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결근을 하게 되면
내일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진아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진아처럼 화가 나질 않나보다.
그래서 진아는 더 화가났다.
열차의 마지막 정착지인 동백역이라는 안내와 함께
기차는 잠들어 버렸다.
* 진아는 마중 나온 사람들과의 작은 실랑이 끝에
결국 열차에서 내려서 까멜리아 싸롱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아를 포함해 까멜리아를 찾은 사람은 총 4명이었다.
설진아, 구창수, 박복희, 안지호.
성별도 다르고 연령도 다른 네 사람이
까멜리아 싸롱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 이승과 저승 사이 중천.
여기서 49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
동백꽃이 피면 싸롱은 문을 닫는다.
진아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마담 여순자, 객실장 마두열,
사서 지원우, 매니져 유이수와 같이
자신의 생을 뒤돌아 보게 된다.
* 하지만 진아는 박복희, 구창수, 안지호와 다르게
자신의 생이 기억나지 않았다.
책에 인생이 지워진 망자.
그게 바로 진아였다.
영혼도 기억상실에 걸릴 수 있나? 싶지만
진아는 그런 케이스였다.
인생 책이 백지인 망자.
* 저마다의 인연이 얽히고 설켜
그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을 살아가게 만들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해
가장 명쾌한 해답을 내린 책이 아닌가 싶다.
* 책을 읽는 내내 목구멍에 뭔가 콱 막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눈시울은 자꾸 붉어지고
결국은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그렇게 까멜리아 싸롱의 손님들과 한참을
펑펑 울고나니 나도 조금은 시원해졌다.
책 속에서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 됐을 때는
내 주변도 고요하니, 그들이 지나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 과거의 인생과 현재의 시점이 휙휙 바껴서
조금 정신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네 명이 전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과거와 현재, 인연을 맺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 내가 중천으로 가게 되는 날,
내 인생 책에는 뭐가 쓰여질까?
나를 지금까지 키운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뒤돌아보기 보다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생각할 계기가 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