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선서 법의학 교실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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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도장깨기를 하는 중이다.
출간일과 상관 없이 그저 끌리는대로
책을 골라잡아 읽었었다.
그러다 문득, 이 출판사가 처음 낸
책이 읽고싶어졌다.

* 2017년에 초판 발행된 책.
도장깨기를 하면서 내가 가진 습관 중
제일 먼저 무시했던 것이
책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여기꺼 다 읽을건데 뭐~' 라는
생각이 있어서 순서도, 내용도, 작가도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내가 사전에 알 수 있는 건 출판사와 제목뿐.

* 그랬는데!! 첫 출간작이 시치리 형님이라니.
거기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하면
이건 무조건 의술이다!!
신나서 책을 펼치자 마자 눈에 들어오는 첫 문장.
"당신, 시신은 좋아합니까?"

* 인사도 나누기 전에 받은 질문치고 꽤 강렬하다.
주인공도, 읽는 독자도 말이다.
여기는 우라와 대학 법의학 교실.
임상 연수장이자 내과의인 쓰쿠바 교수의 지시에 따라
연수의로 법의학 교실에 찾은 마코토.

* 그녀는 첫 질문과 함께 외국인 조교수 캐시에 의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시 읊게 된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그리스 신 앞에서
맹세한 선언으로 의대라는 간판이 걸린 곳이면
어디든 게시 되어 있는 그것.
의과에 몸을 담으면서 누구든 하게 되는 그 선서를 말이다.

* 이 히포크라테스의 진정한 의미를 캐시는
알려주지만 마코토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초로의 노인이라고 할 만큼 작은 체구에
백발이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운 법의학 교실의
터줏대감 미쓰자키 교수이다.

* 마코토는 캐시에게 받은 질문과 동일한
질문을 미쓰자키에게 받게 된다.
"자네, 시신은 좋아하나?"
정답지를 알려준 캐시 덕분에 질문은 잘 넘어가지만
왠지, 이 영감 시신에 미친 영감 같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 현경인 고테가와는 병력이 있는 시신이 발견되면
즉시 연락을 해달라는 미쓰자키의 말을
신탁처럼 받들고 행하게 된다.
늘 칭찬보다는 욕을 더 많이 먹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믿음이 있다.
미쓰자키라면, 절대 쓸데없는 부검은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 사고사로 결정난 사건을 우기고,
생떼를 쓰고, 시신을 중간에 빼돌려서라도
부검을 하게 되는 부검에 미친 영감 같다.
하지만 부검을 하는 그의 손을 보면
또 신이 내린 손, 하나의 예술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쯤 되면 마코토도 독자도 슬슬 미쓰자키 영감에게
물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 그런데 마코토를 법의학 교실로 보낸 쓰쿠바는
은밀하게 그녀에게 미쓰자키가 하는 부검에 관해 묻고
그의 동향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쓰쿠바는 왜 마코토에게 그를 감시하라고 한 걸까?
신의 손을 지닌 영감이 병력이 있는 시신들을
부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쓰자키는 늘 얘기한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가 가진 신념은 서약일까, 위약일까?

* 사건이 거듭될 수록 들어나는 공통점들,
그 몇 가지 사실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모였을 때,
하악!!!! 요상한 쾌감과 함께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역시, 시치리 형님!! 역시 블루홀6!!

* 보통 책이 나온지 5년만 지나도 그 책을 읽으면
옛날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쉽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 속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10년 뒤에 읽어도,
20년 뒤에 읽어도 지금과 같은 재미를 보장하는 책이었다.
대체, 이런 작품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순수한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 내가 하다하다 부검하는 영감탱이를 좋아할 줄이야~
빨리 다음 권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인다.
오랜만에 아드레날린이 뿜뿜하는 책이었다.

* 출판사 도장깨기 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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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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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완'이라고 하면 모두 백조를
뜻하는 단어임은 알 것이다.
그렇다면 '백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떨까?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늘 '백조의 호수'가 떠올랐다.
세계 3대 발레로 손꼽히는 작품.

* 음악도 꽤 유명하다.
발레를 모르는 사람도 그 음악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중가요 속에도 멜로디가 쓰일 정도이니,
이젠 안들어본 사람을 찾기 더 힘들지 않을까싶다.

* 이런 이미지를 품고 있는 '스완'이라는 단어.
그럼 이 단어가 책 제목으로 쓰이면 어떨까?
재일교포 3세에 쓰는 족족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다니는 작가님은 나에게
어떤 백조의 호수를 보여줄지 기대됐다.

* 만약 이 작품을 극으로 만든다면
장면1은 4월의 날씨 좋은 주말,
고나가와 시티가든 스완으로 향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마다 밝은 표정에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사람들.
꽉 막힌 차 속에 무장을 한 세남자로 묘사되지 않을까?

* 구스, 반, 산트라는 미국의 영화감독
이름을 닉네임으로 쓰는 세 남자.
생김새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공통점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세 남자가
스완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장면2는 스완 내부를 보여줄 것이다.
한가롭진 않지만 평화로운 내부.
쇼핑을 즐기려는 사람들과
약속 장소에서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들,
슬슬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로 말이다.

* 그리고 장면3, 사건이 시작된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남자들의 무차별 총기 난사.
흑조 광장과 백조 광장으로 나눠진
정 반대편에서 각자 총을 들고 사람들을 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도 총을 구하기란 쉽지 않아서
딱 두 발씩만 쏠 수 있는 사제 권총을 만들었다.
그 총으로 눈에 보이는 이들은 모두 쏜다.
도망치는 사람도 있고, 이미 시체가 된 사람도 있다.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고, 도망가려다가
주차장에서 접촉사고가 난 차량들도 있다.

* 그리고 스카이라운지.
여기서 범인은 한 여고생을 인질로 잡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다음으로 죽을 사람을
네 손으로 고르라는 아주 잔인한 주문을.
범인과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살아남은 이즈미는
곧 모든 이들의 '비난의 대상'이 됐다.

* 그로부터 반 년 후, 이즈미는 한 초대장을 받게 된다.
생존자들이 모여서 '일요일의 할머니'로 불리던
기쿠노 씨가 죽은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도움이 되면 보너스가 주어지는
아주아주 기묘한 모임.
그 날, 스완에서는 이즈미가 모르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오데트와 오딜은
흑과 백, 선과 악으로 구분될 만큼
대비가 뚜렷하다.
남자 주인공인 지그프리트 왕자와
먼저 사랑에 빠지는 오데트 공주는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 달빛이 비추는 밤에는 본모습으로 있게 된다.

* 흑조이자 악마의 딸인 오딜은 뒤늦게
왕자를 유혹하고, 왕자는 또 홀랑 넘어가게 된다.
상심한 오데트는 선으로, 악마의 딸이자
다른 이의 사랑을 빼앗은 오딜은 악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둘은 보통 1인 2역으로 연기하게 된다.
세상은 정말 명확하게 흑과 백,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 내가 이즈미였다면, 내가 고즈에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나는 그 아비규환 속의 햇살, 냄새, 온도, 습도 등
아무것도 모르니까.

* 출판사 도장깨기 중인데
블루홀6에서 출간된 책은 총 80권이다.
(현재 80번째 책 예약판매중!!)
그 중 스완은 내가 읽은 10번째 책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책을 덮고 나서 느꼈던 그 모든 것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빠순이를 자처할 작가님이 또 하나 늘었다.

* 출판사 도장깨기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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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섬 - 역신의 제단 네오픽션 ON시리즈 24
배준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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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헐적으로 오컬트를 수혈해주지 않으면
목마름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끼고 아껴둔 책을 꺼냈다.
누가 봐도 '저 오컬트 책이예요!!'하는
제목과 표지, 그리고 전건우 작가님의
추천사가 담긴 띠지까지.
아끼고 아껴둔 책을 펼칠때의
그 설레임이란!!

* 대기업 손녀인 수현과 주영,
한아와 은솔은 수현의 요트를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었다.
멀미가 심한 은솔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외딴 섬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걸로 결정한 네 사람.

* 친구인 네 사람이지만 외모도, 성격도 다르다.
이 네 사람 중 주영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간간히 낚시꾼들이 보이는 낯선섬.
여기서 그들은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청각장애,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는
'이모'들과 '이모부'들과 함께 섬에서 산다고 했다.

* 이름도 없고, 나이도 모른다.
그저 그들이 자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른다며 손바닥의 글자를 적는 것으로
그녀들과 소통했다.
그때, 들고 있던 죠리퐁 봉지에서
실종아동의 사진을 본 수현은
지금 여기 있는 아이가 이 실종아동이라며
아이를 데리고 섬을 나가겠다고 고집한다.

* 은솔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겁에 질린듯한
표정으로 토하기를 반복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겠다던 수현은
마을 주민들에게 들키자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저녁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시 섬을 나가려고 할 때,
섬의 먼 곳에서는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데,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수현은 돌아오질 않는다.
찾으러간 주영은 결국 아이를 들쳐 업은 수현과 마주친다.
정신없이 요트를 향해 달리는 와중에
갑자기 고꾸라지는 수현.
배수구에 다리가 빠져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섬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까?
싶을 때, 마을 사람들이 줄지어 달려온다.

* 그렇게 현행범으로 잡힌 이들은
요트에서 기다리던 두 친구와 함께 마을회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주민들에 의해 들려진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수현을 비롯한 그녀들이 아이를 섬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기 때문에 도깨비 신이
화가 났다는 것이다.

* 이상하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에 집착하는 수현과
밤에 수현의 목을 조르는 은솔,
주영을 공격하는 한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주영까지.
그들은 건들여서는 안되는 것을 건들인 것일까?
아이는 정말 실종된 아이가 맞는 것일까?

* 불어닥치는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정신없이 읽게 되는 책이었다.
한 고비 넘겼다 싶으면 다른 고비가 나타나
쉴 틈이 없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휘유~'하는 한숨과 함께
벅참과 아쉬움이 함께 물밀듯이 밀려왔다.

* 먼저 열린 결말,
처음에는 조금 응? 이렇게 끝난다고....?
책을 덜 만든거 같은디....? 했지만,
곧이어 다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인간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작가님의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이런 결말이 꼭 나쁘지는 않으니까.

* 두 번째는 친구들의 관계이다.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 수현에게 집착하는 주영과
수현의 보살핌을 받는 주영을 질투하는 한아를 볼 수 있다.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생각들이 이 섬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수현이 아이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어쩌면
경영 수업을 받는 자신의 처지가 투영되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 하지만 민간신앙에서는 모시지 않는
'도깨비'를 신으로 모신다는 것과,
실종 아동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미스터리 요소가
이야기를 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부분은 매우 좋았다.
에필로그 식으로라도 그들의 뒷얘기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후속편을 위한 떡밥이라고 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좋기도 하다.

* 책을 덮으면서는 아쉬움이 8, 좋았던 것이 2였지만
시간이 지나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면
좋았던 것이 8, 아쉬움이 2로 바뀌는,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휙휙 바뀌는 오묘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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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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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도장깨기를 준비하면서
처음에 어떤 책을 읽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블루홀6의 책은 다 재미있고,
모두 취향저격이였으며,
시리즈도 있으니까.
그렇게 고민만 하던 끝에 결국 나는
이 책을 골랐다.

* '어리석은 자의 독'.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가진 독은
약이 될까, 독이 될까 궁금했다.

* 말 못하는 조카를 거두어 키우고 있는 요코.
다쓰야는 여동생의 아이로
여동생 부부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요코가
거두게 되었다. 거대한 빚도 함께.
아이와 먹고 살아야 하고, 빚도 갚아야 했던
요코는 직업소개소에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생일이 같은 여성과
이름이 바뀌어 엉뚱한 곳에서
면접을 보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요코와 생년월일이 같은 기미.
두 사람은 직업소개소에서 만났지만
어느 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요코는 기미의 사정을 모르지만,
기미도 요코의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숨긴 채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 기미의 제안으로 녹음 짙은 무사시노의 숲속
난바 저택으로 들어가게 된 요코.
가정부 일을 하면서 집 주인들과
유대감도 쌓아간다.
다쓰야는 말만 못했을 뿐이지 당주인
난바 선생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 듯 했다.

* 난바 선생의 의붓아들인 유키오를
마음에 두고 있는 요코는 그에게
다쓰야의 아버지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무언가가 결여된 듯한 눈빛의 유키오는
가끔 새벽에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간다.
유키오를 마음에 두고 이대로 다쓰야와
평화롭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요코는 난바저택의 고문 변호사에게
다쓰야를 양자로 입양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요코와 다쓰야가 저택을 비운 날
난바 저택의 당주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난바 선생의 죽음에도 한동안은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다.
요코가 난바선생의 서재에서 위화감의
의미를 찾기 전까지는.

* 책은 1985년 요코와 기미가 만난 시점부터
2015년 요양원에 있는 요코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서술된다.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서 그녀의 젊은 시절이나,
전래 동화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 하지만, 두 시점의 이야기가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을 찾게 되자,
아! 하는 깨달음과 함께 뒤의 내용이 술술 그려졌다.
크게는 난바 선생의 죽음을 비롯한
과거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 언제부터인가 금수저, 흙수저로 태생부터
계급을 나누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을 벗어나
더 크고 밝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했던
여자의 처절한 생이었다.

* 예상 가능했던 이야기라고 해서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상 가능했기에 더 안쓰러웠다고나 할까.
'하코이모'를 연습하던 다쓰야의 가슴에
살며시 뿌려 놓은 어리석은 자의 독.
그게 독이면서도 한 사람에겐 구원이었다.

* 엄청나게 휘몰아치는 이야기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 이렇게 잔잔한 이야기도 좋아했네.
이번에도 제대로 취향저격 당했다.
다음 책은 뭘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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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 싸롱
고수리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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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딩으로 책이 올라 왔을 때,
내용도 보지 않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고민없이 구매했던 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경성'을 떠오르게 하는
책 분위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 그렇게 바쁜 일정들 틈에서 보관만 하다가
겨우 꺼내 들었던 책.
요즘 이유도 모른 채, 무기력하고
우울해 지는 나의 기분과 상황을
바꿔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 '싸롱'이라 함은 미용실이나 고급 의상실 같은
상점의 의미도 두지만 대저택의 응접실,
과거 상류 가정 응접실에서 흔히 열리던
작가, 예술가들을 포함한 사교 모임이라고 하던데,
왜 여기는 첫 눈이 오면 열리는걸까?

* 붉은 루비 같은 홍월이 뜨던 밤,
첫 눈과 함께 까멜리아 싸롱이 문을 열었다.
반 백 년 만의 홍월과 함께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이
누구일까 생각하며 싸롱 안으로 들어갔다.

*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굴곡이 있다지만
진아처럼 바닥을 기는 인생이 또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 받은 진아는
보육원에서 10대를 보냈다.
19살이 되어 보호가 종료되고,
지원금을 들고 차디찬 거리로 내몰렸다.

* 먹고 살기 바빠서 꿈을 꿀 시간도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도 잘 버티길 바랄 뿐.
출근을 하기 위해 늘 타던 지하철을 탔다.
잠깐 졸았나?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눈을 떠보니 열차는 함박눈이 내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 비현실적인 풍경에 진아는 화가 났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결근을 하게 되면
내일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진아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진아처럼 화가 나질 않나보다.
그래서 진아는 더 화가났다.
열차의 마지막 정착지인 동백역이라는 안내와 함께
기차는 잠들어 버렸다.

* 진아는 마중 나온 사람들과의 작은 실랑이 끝에
결국 열차에서 내려서 까멜리아 싸롱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아를 포함해 까멜리아를 찾은 사람은 총 4명이었다.
설진아, 구창수, 박복희, 안지호.
성별도 다르고 연령도 다른 네 사람이
까멜리아 싸롱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 이승과 저승 사이 중천.
여기서 49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
동백꽃이 피면 싸롱은 문을 닫는다.
진아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마담 여순자, 객실장 마두열,
사서 지원우, 매니져 유이수와 같이
자신의 생을 뒤돌아 보게 된다.

* 하지만 진아는 박복희, 구창수, 안지호와 다르게
자신의 생이 기억나지 않았다.
책에 인생이 지워진 망자.
그게 바로 진아였다.
영혼도 기억상실에 걸릴 수 있나? 싶지만
진아는 그런 케이스였다.
인생 책이 백지인 망자.

* 저마다의 인연이 얽히고 설켜
그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을 살아가게 만들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해
가장 명쾌한 해답을 내린 책이 아닌가 싶다.

* 책을 읽는 내내 목구멍에 뭔가 콱 막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눈시울은 자꾸 붉어지고
결국은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그렇게 까멜리아 싸롱의 손님들과 한참을
펑펑 울고나니 나도 조금은 시원해졌다.
책 속에서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 됐을 때는
내 주변도 고요하니, 그들이 지나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 과거의 인생과 현재의 시점이 휙휙 바껴서
조금 정신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네 명이 전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과거와 현재, 인연을 맺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 내가 중천으로 가게 되는 날,
내 인생 책에는 뭐가 쓰여질까?
나를 지금까지 키운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뒤돌아보기 보다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생각할 계기가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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