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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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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소설 속에 있다.

다니엘 켈만, 『명예』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는 이 둘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거야.

-율리 체,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메타픽션이라는 용어가 있다. 메타meta는 ‘넘나들다’라는 뜻으로 메타픽션은 허구를 넘다드는 것을 말한다. 영화나 소설 혹은 만화에서 작품 속 인물이 실제이거나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세계가 작품을 만드는 행위 자체일 때 우리는 그것을 메타픽션적이다, 혹은 메타적이라 말한다. 예를들어 영화에서 영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는 영화다>나 <여배우들>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소설을 예로들면 소설 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랑은 왜>나 <외딴방> 같은 작품들이다. 작품이 창작자의 창작 과정을 반영하는 ‘자기반영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켈만의 『명예』도 메타픽션적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9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소설을 쓰는 행위와 소설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다보면 얼핏 완결성이 떨허지는 여러 단편들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인물들과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로의 사건은 얽혀있다. 「목소리」에서 에블링이 받은 전화 때문에 「탈출」에서 랄프 탄너가 자신을 자신이 대역하게 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난다.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의 사건은 「토론에 글 올리기」의 사건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뒤죽박죽 섞여들어가는 사건을 보면서 조세희의 ‘난쏘공’과 영화「스트레인저 댄 픽션」 생각나기도 했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자신이 쓰는 소설에 대해 생각한 것 같다. 현실과 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 작가는 대체 무엇을 쓰는 사람인지 말이다. 특히 소설 속 ‘레오 리히터’는 작가의 대변인 이다. 작가이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단호하게 “우리는 늘 소설 속에 있어.”라고 말하니 말이다.

퍼즐을 맞추는 듯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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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시작 민음사 모던 클래식 37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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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억하는 삶

-존 맥그리거, <너무나 많은 시작>

 

  삶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는다. 여기 삶을 기억하고 싶은 한 남자가 있다. 데이비드가 삶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진을 찍거나 일기를 쓰는 것 외에 기억해야할 사건과 관계된 모든 물건을 수집한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듯 그는 삶의 단편들을 모은다. 그가 자신의 박물관을 만들려는 까닭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그는 전쟁 중에 버려진 고아였고,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그를 데려다 키우게 된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자신의 어머니가 친모가 아님을 알고 그는 생모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가 모은 물건들에는 각각의 사건들이 담겨있다. 소설은 이 물건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의 순서대로 진행된다. 데이비드는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아 50세가 훌쩍 넘어간다. 데이비드는 컴퓨터를 사고 사람찾기 사이트를 통해 어머니와 만나게 된다. 그는 준비된 모든 것, 자신의 탄생부터 지금까지를 담은 자신의 박물관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가 만난 사람은 진짜 어머니가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그가 어머니 인줄 알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둘은 본능적으로 서로가 자신의 핏줄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진실을 말해 버리면 그들이 기다려왔던 이 순간이 너무나 비참해지기 때문에 둘은 침묵한다. 그리고 진짜 어머니와 자식처럼 이별한다.

  데이비드는 마지막에 허무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느낀 허무함은 자신의 진짜 어머니를 찾지 못한데 있다. 그리고 수집한 물건들만으로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여줄 수 없다는 허무가 몰려오지 않았을까. 삶은 몇 가지 물건 만으로 기억될 수 없다. 물건을 보며 추억하며 돌아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당시의 감정과 지금까지의 삶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을 기억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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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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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영국의 은유 앞에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이 소설은 영국의 대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 스티븐스의 이야기다. 제목은 ‘남아 있는 나날’이지만 소설의 주된 내용은 집사 스티븐스의 과거 회상이다. 달링턴 홀에 들어올 때부터,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집사인지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러한 회상은 여행을 하면서 이루어 진다. 달링턴 홀의 새 주인 패러데이씨가 그에게 준 휴가 덕분이다.

스티븐스가 섬겼던 달링턴 홀은 ‘세계역사에 중요한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항들이 미리 결정되고, 국제회의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세계를 좌우하는 달링턴 홀에 스티븐스는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달링턴 홀은 근대 영국의 축소판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 국제사회 속 영국과 달링턴 홀은 닮아 있다.

베르사유 조약의 수정을 위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달링턴 홀로 모여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프랑스 사람 뒤퐁을 설득하는 일이였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독일의 재무장을 두려워 했고, 1차 대전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원했다. 또한 당시 새롭게 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을 루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루이스는 달링턴 홀의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영국인 달링턴 경을 ‘몽상가’, ‘아마추어’라고 비난한다. 회담에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은 당시 지는 영국과 뜨는 미국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달링턴 홀의 ‘유능한’ 집사였던 스티븐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달링턴 경이 죽고 미국인 페러데이 씨가 달링턴 홀을 차지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는 점으로 볼 때 미국이 국제사회의 ‘새 주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몰락한 영국에서 여전히 스티븐스는 ‘유능한 집사’에 대해, 새 주인 페러데이씨가 하는 농담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들은 영국과 영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소설 전체는 과거를 서술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제목을 쓴 이유일 것이다. 남은 미래에 대해서 영국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하는 고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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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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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과 사랑에 대한 에세에

-토마스 드 퀸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이 책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아편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자신이 아편을 왜 시작하게 됐는지, 2부는 아편이 주는 쾌락과 고통에 대해 서술한다. 당시 영국 사람들은 아편을 신경치료제로 사용했다. 하지만 아편의 강력함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일부에서는 아편을 죄악시 했다. 그러던 중 토마스 드 퀸시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으로 두 달 간 잡지에 연재를 하고 큰 인기를 얻는다. 영국에서 약물법이 제정된 해가 1868년이고 드 퀸시가 글을 기고한 해가 1822년임을 볼 때 이 에세이는 아편 옹호론자들의 최대, 최후의 방패였을 것이다.

  1부의 내용을 보면 자신은 위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아편을 처음 시작했다고 밝힌다. 드 퀸시는 통증의 원인이 어린 시절 굶주림에서 왔다는 걸 밝히고 있다. 2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편이 나쁜 것만은 아니며, 좋은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편을 끊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데 그것은 무기력과, 악몽, 환상 등이다.

   책을 관통하는 것은 아편이지만 아편과 함께 사랑이 주제를 관통한다. 아편과 사랑에는 공통점이 많다. 한번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다는 점, 곁에 없으면 불안하다는 점, 흥분과 무기력을 느낄수 있다는 점, 금지될수록 더욱 하고싶다는 점.

  드 퀸시의 일생에서 사랑을 볼수 있다. 1부에서는 첫사랑 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더욱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2부에서는 딸을 잃은 드 퀸시의 슬픔이 더욱 크다. 드 퀸시는 12살 된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다. 드 퀸시의 인생에 있었던 두 번의 사랑과 두 번의 이별이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몰입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랑과, 드 퀸시의 아픔이 없었다면 책이 조금 어려울수 있다. 드 퀸시는 어렸을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아서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곳곳에서 소설가, 시인의 경구를 인용한다. 그래서 역자는 인용한 구절과 책에 나오는 인물에 모두 각주를 달았다. 각주를 보며 책을 읽으려면 내용에서 멀어질 수 있다. 각주는 보지 않고 내용에만 몰입한다면 드 퀸시에 매력에 더 깊이 들어갈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때는 해설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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