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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
한요셉 지음, 박지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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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이 책을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보면 괜찮다. 만약 이 책이 하와이 한국인 2세의 디아스포라적 에세이로 소개받고 읽었으면 꽤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얘기다. 백태우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하와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미국 이민 2세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가가 생활하면서 느꼈을 이방인으로서의 삶과, 무기력함 같은 것들도 체험할 수 있었다. 마치 한번도 가보지 않은 하와이라는 공간을 묘사와 설명을 통해 접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묘사와 설명만으로 소설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장르로써의 소설을 읽는다고 말 할 때는 그것이 상상이든 허구이든 일정한 구조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루어낸 하나(또는 여럿)의 주제를 결말에 보기 원하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현실성 없게 말하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현실과 아주 동떨어져 있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소설이라 설명과 묘사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이 추동하는 주제 의식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것을 서사라고 하기도 하고 플롯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여기에 작가의 문체나 생각, 표현 등이 더해져서 그 작품의 고유한 개성을 만든다.


서사이니 플롯이니 하는 얘기를 꺼낸 것은 <핵가족>이 묘사와 설명은 잘 되어 있지만, 그래서 이야기의 방향이 흘러가 결국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납득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려 함이다.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되서 진행되면 결국 독자가 바라는 것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이사건의 연결이라든가, 갈등이 폭발하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것이 얽혀져서 또는 따로 떨어져서 진행되다 소설의 끝에서 결국 맞이하는 어떤 순간 말이다. 만일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와이와 한국에 남아 있는 전쟁의 분위기라든가 두 나라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말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하와이에서 사는 한인 가족 2세의 모습과 한국의 분단을 담아내는 샤머니즘적 상상력을 서사 없이 보여주려 했다면 그건 성공했다. 그래서 여기에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소설의 형편없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디아스포라로서의 작가의 삶에 대해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가치절하 하는 것은 아닐까 잠깐 주저했다. 그렇지만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는 것으로 작품을 좋게 평가하는 것이야 말로 작가에 대한 더없는 모욕임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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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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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집 읽기 전 지문과 지시문이 빽빽한 시나리오집을 생각했다가 담백한 지문과 대사가 담긴 글들을 보고 영화를 다시 한번 본 것 같았다. 사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영상의 표현 방식이 "지식인 변태" 같다고 느끼곤 했다. 이야기의 재미 문제는 아니다. 앵글과 대사, 색감과 호흡이 담고 있는 박찬욱 감독만의 톤이 있다. 고급 포장지에 잘 감추어진 욕망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이런 거창한 설명 보다 박찬욱 영화는 변태(좋은 뜻) 같다고 하면 열의 아홉은 이해했다. 나는 그 세련됨이 싫었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보게 되었는데,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좋았다.

각본집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연기로 표현됐던 해준과 서래의 마음을 지문으로 읽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설명들.


28. 화장실 (밤)

거울 앞에서, 저 예의 바른 형사는 뭘까, 저 맛있는 초밥은 뭘까, 의문을 지워버리려는 듯 열심히 이를 닦고 헹구는 서래.


98. 어물전 - 재래시장 (밤)

... '여보'에 마음 무너지는 해준. 남편 옷 주머니에서 마침내 물티슈를 찾아 꺼내면서 그의 안색을 살피는 정안.


104. 펜션 앞 바닷가 (낮)

... 서래가 돌아본다. 창백한 안색, 습기 때문에 얼굴에 달라붙은 (진짜) 머리카락, 눈에는 눈물이 가득. 해준은 그녀가 끔찍하다, 무시무시한 살인범임을 확신하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감정을 꾹꾹 누르며-


거울 앞에서 고민하는 서래의 모습과 살인범임을 알면서도 너무나 사랑스러워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사랑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적나라한 감정의 표현들을 글로써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각본집을 다시 읽고 든 생각은 왜 서래는 해준을, 해준은 서래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해준은 호미산에 올라가 말하기를 서래가 몸이 꼿꼿해서 좋아한다고 했다. 그 꼿꼿함이란 서래가 말씀과 사진 중 사진을 골랐던 것, 똑바로 보길 원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동질감, 죽은 남편이 산 노인을 돌보지 못한다 말하는 현실주의 등의 다른 말일 것이다. 서래는 잠을 못 자는 해준을 위해 같이 호흡을 맞춰주는 사람이다. 아내와 대비되는 서래의 모습에서 해준은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불면의 이유를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서래 역시 해준을 좋아한 건 그가 가지고 있는 품위 때문이라고 말하는 데, 서래가 말하는 품위란 예의와 다정함의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래는 기도수와 결혼을 결심한 것이 그녀가 뱃속에서 더러운 모습으로 나왔을 때 자신의 말을 들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준 역시 그녀가 피우는 담배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예의 바른, 그래서 해준과 함께 있을 때는 잊어버린 서래의 한 부분을 찾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아가 서래가 말하는 품위란 자신이 넘어버린 어떤 선을 넘지 않은 해준의 태도에 대한 갈망일 수 있다.

꼿꼿함과 품위가 서로를 좋아하게 된 이유라면, 아이러니하게도 해준과 서래는 정확히 같은 이유 때문에 이별한다. 이야기에는 두 번의 이별이 나온다. 첫 번째 이별은 서래가 기도수를 죽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인데, 그가 가지고 있는 품위 때문에, 그리고 품위를 지키기 위한 자부심 때문에 해준은 서래와 헤어지기로 한다. 두 번째 이별은 서래가 해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미결로 남겨 놓는 장면이다. 그녀가 두 번째 남편을 죽이고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해준이 말했던 꼿꼿함의 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좋아하기를 멈춘 적이 없지만 결국에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매듭지어진다. (서래에게는 해결일 수도 있지만.) 이 어긋남에 대해 생각하다 영화의 대사를 바꿔 적어본다. 사랑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서래의 말처럼, 서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한 사랑의 결론이 아니었나.


서래가 돌아본다. 창백한 안색, 습기 때문에 얼굴에 달라붙은 (진짜) 머리카락, 눈에는 눈물이 가득. 해준은 그녀가 끔찍하다, 무시무시한 살인범임을 확신하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감정을 꾹꾹 누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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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를 위하여
루이 알튀세르 지음, 서관모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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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저작은 공자의 말처럼 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붙여놓았는데, 어떤 주석은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적확하게 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저작의 핵심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철학자 중 한명이다. 그의 해석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마르크스 이론을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르크스를 기반으로 확장한 이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해석하기 위해 빌려와 전유한 개념은 인식론적 절단’(혹은 인식론적 단절)과잉결정이다.

 

인식론적 절단은 과거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들을 동반한 새로운 개념과 이론의 정립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청년기 저작 속에서 그가 후기에 보여주었던 전혀 다른 개념들을 살펴보고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는 작업을 한다. ‘인식론적 절단은 단순히 이전의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상을 해석하거나 이론을 재조직하는 작업이 아니라, 대지의 양분을 받아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듯 기존의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전혀 다른 이론적 지평을 여는 작업이다.

 

과잉결정은 마르크스의 모순에 관한 이론을 해석하는 주요한 틀로써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는 주요한 모순들의 관계를 다루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알튀세르는 우리가 마르크스의 모순 개념을 통해 여러 혁명들과 현상들을 해석하고 있는데, 이 해석이 단일한 모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폐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잉결정에 대해 논의하는데, 어떠한 사건과 현상, 그리고 마르크스의 모순에 관한 설명은 어떠한 단일한 힘의 작용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역사들 그리고 미시적인 사건들의 총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 두 개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분석하고 그의 저작들을 오독하고 있던 기존의 해석에 대해 치밀한 반박을 제시한다. 책 속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라는 첫 장의 내용이다. 마르크스가 후반기의 작업들을 이루어내기 위해 수용하면서 동시에 뛰어넘어야 했던 이론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헤겔과 포이허바흐의 사상들이 그것인데, 마르크스는 이들이 제기하는 세계와 인식에 대한 질문 자체를 바꾸면서 자신의 이론을 만든다. 다시 말해, 질문 자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인데, 알튀세르는 이 작업을 마르크스가 자기 자신의 문제설정을 가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개인적으로 즐겁게 읽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질문은 대답을 구성한다. 질문을 하는 방식은 언제나 수많은 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답을 제외한 세계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못한다. 가령 우리가 밥은 먹었어?’라고 물어 본다면 음식의 다양한 종류에 대한 무수한 답을 가지고 있지만, 밥을 먹었는지 아닌지에 관한 대답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볼 수 없다. 알튀세르는 이 지점을 적확하게 포착했다. 질문의 방식의 바뀌면 대답의 방식이 바뀔 것이다. 알튀세르가 수행한 마르크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현대의 사회와 지극히 개인적 일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혹은 저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고 말이다.

 

* 마르크스의 직접 저작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마르크스의 핵심 이론에 대한 지식과 사회·역사적 맥락을 알고 있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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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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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 기시감이 밀려왔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마다 번번히 역자에 이름을 올리던 그 사람이 맞는가 했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해서 틈틈히 읽고 있는 요즘 석영중 번역가의 책이라 알게 되었다.

예상 외로 매우 재밌어서 러시아 문학과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책은 러시아 소설과 거기에 나온 음식, 그리고 역사를 '조리있게' 소개한다.

가령 표트르 대제와 퓨슈킨을 엮고 거기에 러시아 음식이 더해진다.

음식으로 역사를 본다는 건 생소하다.

하지만 생활을 지배하는 음식을 보면 문화를 알 수 있고 문화를 보면 당시 사회가 보이고 문학이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신분, 사회, 경제로 문학을 보는게 아니라 더 미시적인 '음식'으로 문학을 관통한다.

'음식'이라는 기호로 문학을 보게 해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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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독이는 한국의 명수필 : 살며 생각하며 느끼며
피천득 외 지음, 손광성 엮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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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래두고 읽어야 한다.

여기서 오래두고 읽어야한다는 것은 여러번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하나의 수필을 읽고 다음 수필로 넘어갈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글에 담긴 화자의 목소리가 너무 강해서, 다음 글로 넘어가기가 부드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읽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낯선 이유도 있었다.

글을 읽다 발견되는 좋은 수필들을 보면 참 맛깔나게 글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간혹 너무 어려운 투의 문장과 단어를 구사한 글들만 빼면 나는 이 책이 좋았다.

혹여, 이 책이 다음 개정판이 나온다면 (이미 5판째다) 최근에 나온 여러 작가들의 수필도 함께 했으면 더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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