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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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영국의 은유 앞에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이 소설은 영국의 대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 스티븐스의 이야기다. 제목은 ‘남아 있는 나날’이지만 소설의 주된 내용은 집사 스티븐스의 과거 회상이다. 달링턴 홀에 들어올 때부터,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집사인지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러한 회상은 여행을 하면서 이루어 진다. 달링턴 홀의 새 주인 패러데이씨가 그에게 준 휴가 덕분이다.

스티븐스가 섬겼던 달링턴 홀은 ‘세계역사에 중요한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항들이 미리 결정되고, 국제회의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세계를 좌우하는 달링턴 홀에 스티븐스는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달링턴 홀은 근대 영국의 축소판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후 국제사회 속 영국과 달링턴 홀은 닮아 있다.

베르사유 조약의 수정을 위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달링턴 홀로 모여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프랑스 사람 뒤퐁을 설득하는 일이였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에 독일의 재무장을 두려워 했고, 1차 대전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원했다. 또한 당시 새롭게 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을 루이스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루이스는 달링턴 홀의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영국인 달링턴 경을 ‘몽상가’, ‘아마추어’라고 비난한다. 회담에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은 당시 지는 영국과 뜨는 미국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는 달링턴 홀의 ‘유능한’ 집사였던 스티븐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달링턴 경이 죽고 미국인 페러데이 씨가 달링턴 홀을 차지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는 점으로 볼 때 미국이 국제사회의 ‘새 주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몰락한 영국에서 여전히 스티븐스는 ‘유능한 집사’에 대해, 새 주인 페러데이씨가 하는 농담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들은 영국과 영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소설 전체는 과거를 서술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제목을 쓴 이유일 것이다. 남은 미래에 대해서 영국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하는 고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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