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공기 엔지니어이자 작가인 네빌슈트의 소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을 읽었다. 소설이라면 무조건 열린 마음으로 보는 나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도 그렇고!

그렇지만 읽다보니 유쾌한 내용이 아니어서 깜짝 놀랐다. 이건 정말 표지의 배신?


서술자인 노엘은 변호사다. 그는 진이라는 영국 여자의 재산을 관리하게 되는데 이유인즉슨 진의 삼촌이 죽기 전에 혈육인 조카들에게 재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중 진의 오빠가 전사하면서 꽤 많은 재산이 진에게 왔고 진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30세 중반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재산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연금식으로 지급받기 때문에 그것을 인계해주고 관리하기 위해서 노엘이 필요한 것이다. (복잡;;)

그래서 노엘은 진을 만난다. 진은 속기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원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진은 전쟁 중에 포로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1930년대의 일이다. 일본은 말레이반도를 습격했고, 그 때 영국인들을 붙잡아 남자는 포로수용소에 집어 넣고 여자들은 방치했다. 방치했다기 보다 빙빙 돌려가며 학대했다. 동양인들에 비해 처참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걷게 했다. 말라리아나 과로로 줄줄이 급사하는 가운데 진과 몇몇은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 마을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의 끈기와 성실, 그리고 자비와 용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국으로 귀환된 후에도 여전히 삼년동안 살았던 마을을 생각한다.

진이 여러날을 걸으며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며 겪은 일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일은 그네들을 몰래 도와주던 호주 군인 조의 죽음이었다. 조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채 처형당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조가 살아있었다. 조 역시 간절히 진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들은 전쟁 후 6 년째 빙빙 돌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잘 됐다. 만났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랑이야기로만 본다면 이 소설은 재미없다. 이 소설은 전쟁포로였던 진 패짓이라는 한 여자가 억대의 재산을 물려받고나서 한 행동들을 집중해서 봐야 한다. 3년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버려진 전쟁포로를 돌봐주었던 말레이의 한 마을에 우물을 파서 여성들의 일거리를 줄여준 진은 호주로 건너가 호주 여성들을 돕는다. 그녀는 마치 슈퍼우먼처럼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뿜뿜 풍기면서 살아간다. 진의 그런 용기있는 행동들이 너무 멋있으면서도 돈이 있으니까 가능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돈이 있다고 다 그렇게 베풀고 나누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진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멋져서 누구에게든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1권이 더 재밌다. 1권은 가슴이 늘 쫄깃거린다. 포로가 된 영국여자들이 마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일을 걸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말레이반도 곳곳을 걸어야만 했을 때 진이 일본군 병사들과 대적하면서 이뤄낸 결과는 대단했다. 결국 일본군이 진과 사람들을 버린 것이긴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서도 홀로 도망치지 않고 병자와 아이를 돌보며 끝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가진 것을 이용해서 은혜를 갚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2권으로 가면 갑자기 조의 생존 소식을 알게 되고 조 역시 극적으로 살아나면서 6년이란 시간동안 회복하고 오해를 풀고 진을 찾아 영국으로 오는데 이 과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읽을만 하다. 읽으면서 재밌었고, 알게 된 것도 많고. 북반구와 남반구를 넘나들고, 10년의 세월을 넘나들고, 세대와 인종의 차이를 넘나드는 이 소설이 참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노엘의 사랑은 영화 [인턴]이 생각났다. 젊은 날의 눈부심이랄까, 젊은 매력과 활기에 대한 동경이랄까. ㅎㅎ

두 권이라 좀 부담은 있지만 가볍게 읽어보기에 괜찮은 소설이다. 작가 네빌슈트는 1899년생인데 전쟁에 참여하는 엔지니어였으므로 무기도 만들었고 이름도 숨겼다. 네빌 슈트는 필명이다. 주인공이 여자인 것이 작가에겐 다소 어려운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진의 심리묘사는 그렇게 잘 됐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서술자가 중년 남성인 것은 대단히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어쩌면 그도 진 패짓 같은 눈부신 젊은이를 만났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력을 알고나면 이 소설의 배경이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이 참 많다. 이 세상에는 진처럼 용감한 여성이 많아지면 좋겠고, 조처럼 지고지순한 사랑과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진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엘변호사처럼 정직하고 믿을만한 법조인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신 전쟁은 절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