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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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너무 놀라서 겟 했다! 오마이갓! 그런데 소설이 아니었다니!!!!! 옴마, 소설가 양반 이게 무슨 일인가요??

우선 이 책은 표지가 넘넘 근사하다.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겉표지를 벗기면 속표지가 나오는데 그때야 비로소 주인공 사무엘 포치의 그림이 등장한다. 마치 그림이 액자 속에 넣어져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이 그림이 끝이 아니었다. 이 그림은 원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전에 다산북스 블로그에서 표지 투표가 있었는데 다른 표지가 골라졌으면 어쩔뻔했을까. 표지의 정성에 감복한 나로서는 이 표지 이외의 표지는 과감히 거부한다!!! (내가 뭐라고 ㅎㅎ)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The Man In The Red Coat

줄리언 반스 Julian Barnes

정영목 옮김 /다산북스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어느 날 그림 하나를 보게 된다. 그것은 벨에포크 시대, 그러니까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서유럽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시기(p.13) 때 활동하던 의사 사무엘 포치의 초상화였다. 존 싱어 사전트라는 화가가 그린 이 그림은 줄리언 반스를 사무엘 포치 찾기 프로젝트에 임하게 만들었다. 실내 가운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잠옷이 아닌 이 빨간 로브를 입은 사내의 어떤 점이 그렇게 궁금했을까. (잘생기긴 했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작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는 많다. 내가 최근에 읽은 작품으로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 그랬다. 줄리언 반스처럼 소설가가 그림이 트리거가 돼서 이야기가 아닌 예술 에세이를 펴내는 것은 드물지만 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도 꼼꼼하게? 좀 놀라웠다.

줄리언 반스는 닥터 포치의 놀라운 일생과 그의 인간성을 말하기 위해 클로드 방데르 푸텐이 쓴 '포치 전기'를 읽었다. 그리고 벨에포크 시대 활동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포치의 일생을 더듬어 나간다. 대단히 흥미로운 얼개가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어려웠다. 아는 작가들이 나오면 반가운 마음에 좀 더 집중이 됐지만 잘 모르는 작가가 나올 때는 좀 어지럽기도 했다. (나의 이해의 문제인지 번역의 어려움인지는 조금 모르겠다)

닥터 포치는 지방 부르주아지 출신으로, 1864년 의학을 공부하러 파리에 왔다. 그는 실력 있는 의사로 성장했다. 의사이면서 작가의 길에 입문했고, 의업과 저술을 겸업하였다. 그러니 당연히 작가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사람 중에 단연 으뜸은 (흥미의 면에서) 오스카 와일드였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가 게이라는 사실을 사실상 처음 알았다. (유명한 사실인데 내가 관심이 없었는지) 재판까지 갔었다고 하니 시대상에 비춰봐서는 불운했을 것 같다. 또, 귀족 몽테스키우가 나오는데 그는 포치와 여행을 같이 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리고 베르나르라는 여배우는 당시 스타였는데 포치랑 사귀었다. 그 여자 사진도 있는데 너무 예뻤다. (물론 나중에 결혼은 테레즈라는 젊고 예쁘고 부유한 여자랑 한다^^;;그리고 여성 편력은 또 어마어마했다. 딸이 빈정거릴 정도;;)

설마 이런 것 때문에 줄리언 반스가 그를 이토록 탐구했을 리는 없고 대체 무엇 때문일까?

당시 유럽 사회는 '아름다운 시절' (벨에포크)이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부패한 시기였다. 상류사회의 생활은 오페라 하우스와 레스토랑으로 이루어진 세계(p.44) 일지 몰라도 무정부주의가 횡행하는 등 안정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에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냥 미(美)만 탐구하는 유미주의일까, 아니면 사회를 비추고 억압되거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앙가주망일까.

소설을 좋아하는 만큼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은 소설이 늘어났는데 사무엘 포치의 딸 카트린 포치가 쓴 [아그네스] 와 아직도 읽어보지 못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설명에 의하면 다소 충격적인 [거꾸로]라는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 안에 엄청나게 많이 언급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세어보진 않았지만 횟수가 상당하다)

또 '모델소설'이라는 장르는 아니지만 분류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패러디라고 해야 할까, 오마주라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참고용? 아무튼 그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가 많은 작품의 모델이 되었다는 시각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제일 읽고 싶은 소설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지식백과에는 위스망스의 소설은 [역로] 라고 번역돼 있다. 아무곳에서도 팔지는 않고 채만식의 동명의 소설이 존재한다)

또, 얼마 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디스 워튼의 소설 두 개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를 사두었는데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미리 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몽키스테우가 푸르스트의 소설을 반밖에 못읽고 죽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하나;;)

에밀 졸라의 소설도 몇 번 언급되는데 왜 맨 뒤에 주요 등장인물에는 등장하지 않는지 (아마 직접 등장하지 않아서?) 궁금했다.

포치는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인데다가 평민이면서도 사교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과학탐구에 골몰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청난 여성편력을 지녔으며 지나치게 자유로웠다. 줄리언 반스는 그의 자율성을 매력으로 여겼는지 몰라도 여성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아무튼 줄리언 반스는 이야기 꾼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실존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소설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내가 영어를 잘한다면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다.

어쩌면 스스로는 안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예술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 기회에 읽게 된 게 너무 다행이고 기쁜 일이었다. 소설가가 말하는 예술에 관하여, 시대상에 대하여, 그가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소설보다 좀 더 섬세하게 엿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중 관련된 한 사람의 이야기로 소설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줄리언 반스가 책에서 알아내지 못했으나 궁금했던 것에 대해 죽 나열해 두었는데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그러면서 저자가 말하길, 이 모든 질문은 소설에서 답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두었다. 몇 년 안에 벨에포크 시대의 소설이 하나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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