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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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텔레비전에서 저자를 보았다. 푸근한 인상과 재치있는 말솜씨와 유머러스한 저자의 첫인상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런데 클래식 듣는 것을 사랑하고 다독은 기본으로 하시고 독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따고 독일 대학교 교수님이라는 반전에 좀 놀랬던 건 사실이다.

이 책의 제목만 보고서는 산문이나 에세이 같은 감성적인 글과 그림들이 있을 거 같지만 전혀 예상을 뒤엎는다.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느낀, 또는 사회의 현상들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문화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낸 글이다. 절대 속독으로 읽을 수 없었다. 정독으로 단어 하나, 하나까지 곱씹게 만들었다.

슈필라움(Spielraum)은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놀이와 공간이 합쳐진 이 말은 우리 말로 여유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한다.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에 꼭 맞는 단어가 없기에 그 개념에 해당하는 현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문제는 이 슈필라움의 부재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힌다.

그리고 저자는 이 슈필라움을 갖기 위해 여수로 내려온다.  여자만의 미역창고를 개조하여 자신의 화실, 서재 등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가져다 놓고 자신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섬에 있기 때문에 배도 하나 구입하여 '오리가슴'이라고 명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에 '오리가슴'이라고 낙관처럼 그려 넣는다.

'오리가슴'은 '오르가슴'의 한국식 표현입니다. 육체적 오르가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 지적 오르가슴도 있는 겁니다.       -본문 258쪽

그의 글에는 이처럼 뼈있는 유모가 잔뜩 들어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통쾌하게.

역사는 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지만 문화적인 접근으로 보는 관점은 흔치 않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고 난리다.  하지만 그 단어와 개념을 전혀 의심해 보지 못했다. 저자는 산업혁명의 본질은 과학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지식혁명이 있고 그것이 있었기에 산업혁명이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의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낡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모두들 '인공지능'. '디지털 혁명'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인간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겁을 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의 문화적 변동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 있다. 감정에 대해 도무지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다. 거참, 감정이야말로 삶의 본질인데.....          -본문 161쪽

저자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사람같다.  자주 욱하고 화도 낸다. 하지만 공공의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는 사람에게, 얼굴 붉히지 않고 한 말은 촌철살인이었다.

여자를 외모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마 남자들의 본능인 가 보다. 이렇게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지성인인 저자는 여자들에 대해선 외모 지상주의적 관점을 아무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이런 공개적인 인쇄물로 이름만 대면 전국민이 다아는 사람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아주 사적인 감정으로 거리낌없이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읽는 떄  좀 불편했다. 차라리 중국의 국가 주석 시진핑이 싫다고 말했던 것처럼  왜 싫은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꼬집어서 표현한다면 어느정도 납득이라도 가겠는데 말이다.

내 주위에는 자신의 '존귀와 위엄'을 지키느라 그 어떤 정서적 단서도 제시하지 않는 '시진핑식 표정'이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본문 165쪽

심리학적으로 접근할 때 저자는 독일의 심리학자들을 많이 거론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를 했거나 영문의 논문이나 연구를 많이 참조하기에  미국 심리학자들의 말을 많이 인용한다. 그런데 저자는 독일에서 공부했기에 독일 또는 유럽의 심리학을 거론해서 미국이 아닌 독일의 관점을 보는 것도 다양성의 관점으로 참 좋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도 역시 약하디 약한 인간인지라 이렇게 찌질하다라고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저자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정의하면서 지성인의 끝을 보여주는 가 하면, 다른 이의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하는 무개념의 사람들에게 일침을 통쾌하게 날려주는 핵사이기도 하다. 또한 남자들의 허세가 불러 일으키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유머러스하게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주기도 한다.

책의 글밥이 완전히 많지도, 책이 두껍지도 않지만 자꾸 멈춰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천천히 곱씹어 볼 책이다. 다음 책으로 저자의 다른책을 읽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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